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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w York Times] 셰익스피어가 땅을 칠 미국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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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그린블래트
하버드대 교수·영문학

20대 후반이었던 1590년대 초 셰익스피어는 한 가지 질문에 골몰하고 있었다. “위대한 국가가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의 지배를 받는 까닭은 무엇인가”였다. 그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희곡 집필에 들어갔다.

당시 영국 상황이 문제는 아니었다. 성군 엘리자베스 1세의 치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의 지성인들은 오래전부터 이 질문에 천착하고 있었다. 성경은 유다 왕국이 어쩌다 폭군들의 연이은 지배를 받은 끝에 멸망했는지 고민한다. 로마제국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제국이 칼리굴라 같은 폭군의 손아귀에 떨어진 원인은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셰익스피어는 영국에서 비슷한 사례를 골랐다. 15세기 영국의 폭군 리처드 3세다. 어린 시절 척추측만증을 앓았던 그는 열등감과 분노로 일그러진 마음을 갖게 됐다고 셰익스피어는 생각했다. 자신의 흉측함을 잘 알았던 리처드 3세는 특권의식과 과도한 자신감, 호통, 여성혐오, 무자비한 괴롭힘에서 위안을 찾았다. 그리하여 합리적 기준으로 보면 절대 꿈꿀 수 없는 자리나 지위에 강박적인 집착을 갖게 된다.

『리처드 3세』는 셰익스피어의 초기 히트작 중 하나다. 정신이 비뚤어진 괴물이 영국의 왕좌를 차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리처드 3세가 나라를 잘 통치하리란 근거는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왕관을 쓰는 데 성공했다. 버킹엄 백작, 헤이스팅스 경 등 주위 사람들이 그와 똑같이 어리석고 파괴적인 행동을 했기에 가능했다. 셰익스피어는 이들을 통해 폭군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유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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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모든 일이 그냥 다 잘될 것으로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나라의 제도가 불변하고 우방과의 동맹도 유지될 것이란 믿음이다. 이들은 리처드가 왕이 되기엔 자격 미달이라고 확신해 집권 가능성을 배제해 버린다. 대신 다른 이에게 신경을 쓰다가 너무 늦었을 때에야 정신을 차린다 허약한 사회 시스템만 맹신하다 비극을 당한 경우다.

두 번째로는 리처드가 끔찍한 악당이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그의 못된 행동을 분명히 목격했으면서도 금방 잊어버린다. 비정상적 상황을 정상으로 인식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는 괴롭힘과 폭력의 위협 앞에 겁을 먹는 사람들이다. “내게 불복종하면 시체로 만들어주지”라고 리처드가 협박하면 금방 꼬리를 내린다. 그가 엄청난 부와 특권을 가진 데다 도덕규범을 무시하고 자기 뜻을 밀어붙이는 데 익숙한 사람이란 사실도 한몫한다.

네 번째는 리처드가 왕이 되면 이득을 볼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다. 리처드가 얼마나 파괴적인 인간인지 알지만 자신만은 안전하게 이득을 취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들은 리처드의 더러운 음모극에 한패가 돼 그가 왕좌를 차지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이용 가치가 다했을 때 가장 먼저 제거되는 사람들이다.

다섯 번째는 가장 이상한 부류다. 억눌린 공격성을 드러내고 입에 담아선 안 될 말을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에게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이들이다. “어리석은 자가 눈물을 흘릴 때/그대들 눈은 돌처럼 굳지/그래서 마음에 들어”라고 리처드는 형을 죽이기 위해 고용한 자객에게 말한다. 이 유형에 해당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볼 필요는 없다. 바로 우리 모두가 이런 유형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악당의 의기양양한 사악함과 인간의 고귀함을 지켜주는 규칙을 무시하는 뻔뻔함, 효과적으로 먹히는 거짓말, 순수한 추함이 갖는 매혹에 반복해서 끌린다. 악당이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을 우리 안의 무언가가 기꺼이 즐기는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리처드 3세』의 클라이맥스에서 다섯 가지 부류 사람들의 행동이 어떤 식으로 얽히는지 잘 보여준다. 바로 선거 장면이다. 군주제에선 이례적인 장면이지만 우리 시대와는 기이하게 맞아떨어진다. ‘암살’이란 단어가 처음 나온 『맥베스』와 달리 『리처드 3세』의 주인공은 폭력으로 권력을 쟁취하지 않는다. 대신 선거를 요청한다. 이어 종교적 경건함을 가장하고 정적을 음해하며 안보 위협을 지독하게 과장한다.

왜 리처드는 선거를 들고나왔을까? 국민의 ‘동의’ 아래 집권했음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몰론 그 ‘동의’는 별것이 아니었다. 리처드의 심복 몇 명과 공무원 한 명이 “영국의 왕, 리처드를 하느님이 보호하신다!”며 찬성표를 던졌을 뿐이다.

그런데도 군중은 침묵을 지키며 수용했다. 무관심과 두려움, 또는 리처드나 다른 후보나 별 차이가 없다는 비극적 착각 탓일 수 있다. 어쨌든 국민이 목소리를 내지 않거나 투표하지 않는 것만으로 괴물은 권좌에 앉을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시대와 장소를 넘어 오늘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래서 초월적인 힘을 가진다. 혼란과 위험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그의 작품을 읽으며 인간에 관한 가장 근본적인 진실을 배운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자. 침묵을 지키거나 투표권을 버리지 말자.

스티븐 그린블래트 하버드대 교수·영문학

◆원문은 중앙일보 전재계약 뉴욕타임스 신디케이트 8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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