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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먼저 온 통일’은 성공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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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이며 통일의 시험장”이라고 했다. 북한 주민을 향해 자유로운 남한으로 오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온 통일’에 성공하고 있을까. 지금까지의 통계로 본다면 그렇지 않다.

 2014~2015년 탈북민의 월평균 가구소득은 149만원으로 남한 주민의 35% 수준에 불과하다. 이제까지 3만 명의 탈북민이 남한에 왔지만 이 중 2000여 명은 남한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남한 소재 탈북민의 55%, 즉 1만5000명가량이 취업해 있지만 4000명은 정부가 임금의 절반을 지급하는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나머지 1만1000명 중에서도 상당수가 공기업·사회적기업에서 일하거나 북한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2010~2015년 남한 전체의 평균 실업률은 3.4%인 데 반해 탈북민의 실업률은 8.3%였다. 만약 정부와 우리 사회의 각종 지원이 없다면 탈북민의 실업률은 50%를 넘을 수도 있다.

 지금과 같은 지원 위주의 정책은 탈북민의 숫자가 수만 명 정도일 때만 작동될 수 있다. 만약 남한에 오라고 한 대통령의 말을 믿고 한 해 10만 명의 북한 주민이 들어온다면 1인 세대 기준 기본정착금 700만원과 주거지원금 1300만원만으로 총 2조원의 돈이 더 필요하다. 여기에다 의료비·교육비·국민연금·취업 관련 비용과 기초생활보장금을 더하고 행정 비용까지 포함한다면 현재와 같은 제도는 지속될 수 없다. 나아가 ‘더 큰 통일’이 갑자기 올 경우 남한의 재정으로 지금 정책을 감당할 수 없다.

 남한 주민과 스스로 경쟁해 취업할 수 있는 탈북민이 다수가 돼야 ‘먼저 온 통일’이 성공한 것이다. ‘앞으로 올 통일’ 또한 잘 준비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려면 탈북민의 인적 자본 수준이 높아지고 그들이 남한의 시장경제 규범에 잘 동화돼야만 한다. 이는 단순히 탈북민 정착 제도를 재점검하는 수준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양질의 연구 성과가 지속적으로 쌓여야 가능하다. 이를 통해 어떤 교육과 직업 훈련을 어느 연령대의 누구에게 제공해야 할지, 가치 규범의 동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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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통일에 300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돈이 들어간 근본적 이유도 동·서독 주민 사이의 인적 자본 격차 때문이었다. 흔히 생각하듯 동·서독의 화폐 교환 비율이 1대 1로 정해졌기 때문에 통일 비용이 크게 늘어난 것이 아니다. 교환 비율이 어떻든 임금을 자유롭게 정할 수 있다면 기업은 근로자의 생산성 이상으로 월급을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임금협약 때문에 서독 근로자 생산성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동독 근로자가 서독 근로자 임금의 60%를 받게 되면서 기업이 파산하고 통일 비용이 급증했다. 하지만 임금협약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동독 근로자가 받는 월급이 너무 작아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다른 방식의 복지 혜택이 필요했을 것이다.

 남북한의 일인당 소득 비율이 100대 3이라는 사실은 남북한 주민의 인적 자본 차이가 동·서독보다 훨씬 더 크다는 의미다. 북한 학생들의 영양 결핍과 잦은 노력 동원도 그 이유가 될 것이다. 더욱이 북한 학교 커리큘럼은 인적 자본 축적에 오히려 해가 되는 ‘주체사상’ 학습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 인적 자본의 격차를 신속히 줄이지 못한다면 ‘더 큰 통일’이 왔을 때 우리는 크게 실패할 것이다.

 인적 자본뿐만 아니라 가치관의 차이도 크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들이 중심이 돼 최근 미국 비교경제학회지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탈북민은 일률적인 평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탈북민 중에서 남한에 와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 교육받지 않은 사람에 비해 경쟁을 더 회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 학생들이 남한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남한 학생들과의 수준 차이를 깊이 느껴 자신감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이대로 둔다면 남한에서의 학교 교육이 경쟁해서 취업하는 것으로 이어지기보다 오히려 경쟁을 포기하고 복지 혜택을 받는 쪽으로 끝날 가능성마저 있다.

 신(神)은 우리에게 ‘먼저 온 작은 통일’을 선물로 주셨다. 서독과 달리 경제력이 약한 남한이 이를 이용해 ‘앞에 올 더 큰 통일’을 준비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기회를 낭비해 왔다. 탈북민이 급증한 1990년대 후반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정부는 한 해에 수천억원의 돈만 썼을 뿐 연구에 기반한 정책 개발은 등한시했다.

 탈북민의 성공적 정착은 통일 준비의 핵심이다. ‘먼저 온 통일’을 성공적으로 이끌지 못하면 통일 대박도 없고 대북 압박도 없다. 단지 말만 많을 뿐이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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