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 올해만 1000개, 이것부터 정리를

지난 17일 오후 전남 영암 대불국가산업단지(대불산단)는 마치 휴일처럼 적막이 흘렀다. 한창 일할 시간이었지만 선박 모듈(선박을 이루는 부분) 제작용 크레인은 대부분 멈춰 있었다. 선박용 몸체 블록이 듬성듬성 쌓인 조선소 앞마당엔 작업 중인 근로자를 찾기도 쉽지 않았다. 텅 빈 왕복 8차로 도로엔 ‘공장 매매’ ‘긴급 대출’ 같은 현수막만 을씨년스럽게 휘날렸다.

동행한 조선업계 관계자는 “3~4년 전 호황기 때만 해도 24시간 쇠를 때리는 소리가 영산강 건너 목포 아파트 단지까지 들렸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공장 가동률이 60% 아래로 떨어져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고 말했다. 선박 배선·배관 모듈을 제작하는 A업체 대표는 “지난 6월부터 일감이 떨어져 직원 50명 중 절반이 무급휴가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 기자재 운반업체 B사 임원도 “폐업 후 운송장비를 매각하려는 회사가 한둘이 아니다”고 했다.

대불산단에서 가장 규모가 큰 현대삼호중공업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1973년 창사 이래 첫 무급휴직을 시행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 수주량은 올해의 70% 수준으로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독 하나를 비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현대삼호중공업과 함께 현대중공업 계열사인 현대미포조선의 대불산단 블록공장은 올해 안에 철수할 예정이다.

선박기자재 업체 264곳이 입주한 대불산단은 국내 최대 조선산업 집적지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2조214억원이던 대불산단의 총매출은 올 상반기 5586억원으로 줄었다. 고용인원도 2013년 1만3000명에서 올해 8400명까지 감소했다.
기사 이미지
실물경제의 위기는 경제 전반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영업이익률 추이와 매출액 증가율을 30대 대기업에서 상위 500대 기업으로 확대해도 우리 경제의 활력이 눈에 띄게 줄고 있음이 드러난다. 500대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98년 5.95%에서 2009년 5.31%로 떨어졌고 2015년엔 4.51%까지 하락했다. 매출액 증가율도 98년 2.33%에서 2009년 5.54%로 올라갔지만 지난해엔 2.17%로 추락했다.

500대 기업의 성장세가 외환위기 직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보다도 악화된 건 최근 수년간 실물경제의 위기가 가속화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외부 요인에 따른 단기 충격이라면 실물경제 위기는 ‘소리 없는 암살자’처럼 서서히 경제지표 전반을 악화시킨다. 실물경제 위기 속에서 가장 큰 부담은 만성적 한계기업, 이른바 ‘좀비기업’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6월 발간한 금융안정보고서를 바탕으로 글로벌 구조조정 전문 컨설팅업체 앨릭스 파트너스가 분석한 한국의 좀비기업은 지난해 이후 급격하게 늘어났다. 2009년 1851개(8.2%)였던 좀비기업은 매년 비중이 1%가량 늘어나다 2015년부터 급증했다. 2014년 2561개(10.6%)로 늘었으며 올해엔 3600개(15%)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사 이미지
업종별로 보면 좀비기업 증가세는 더욱 심각하다. 조선·해운업의 한계기업 비중은 2014년 4분기 17%에서 올 2분기 36%로 치솟았다. 정보기술(IT)·통신업은 같은 기간 11%에서 17%로 좀비기업 비중이 늘었고, 자동차 산업도 8%에 불과하던 좀비기업 비중이 13%까지 늘었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실물경제의 위기가 가속화하면서 지역 경제는 직격탄을 맞고 있다. 자동차(울산)·조선(거제·통영·영암)·해운(부산)·석유화학(여천) 등으로 이어지는 ‘중화학공업’ 벨트가 붕괴 수순을 밟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실물경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과감한 구조개혁과 체질개선, 소프트산업의 육성과 장기 전략을 고민할 ‘전략사령부’가 시급하다고 조언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외환위기 직후엔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금세 회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따뜻한 물 속의 개구리’처럼 성장률이 서서히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회생 불가능한 ‘좀비기업’을 서둘러 정리하는 한편 기간산업에 대해선 정부가 키를 쥐고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송병락 서울대 명예교수는 “글로벌 기업들은 전략형 경쟁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100m 달리기만 하고 있다”며 “국가 차원의 미래 경쟁을 연구하는 싱크탱크나 전략사령부 같은 게 많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리가 강점이 있는 제조업에서 대대적인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았다. 권혁세 전 금융감독원장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불황의 구조화·장기화를 일찍 판단했다면 대규모 구조개혁을 했을 텐데 자금지원 위주로 땜질 처방을 내렸던 게 문제였다”며 “지금이라도 전통적 제조업에서 소프트·혁신산업으로 변화하는 세계 산업의 변화 추세에 올라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동 서울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시행착오를 축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교수는 “대기업들은 투자대비수익률(ROI)을 따져 성과가 없으면 팔고 돈 되는 건 사버리는 방식으로 경영해 왔는데 이런 경영이 우리 사회와 산업의 지식 축적을 방해했다”며 “‘히든 챔피언’으로 불리는 독일 강소기업들이 한 분야에서 실패를 거듭하며 시행착오를 축적한 걸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동현·김기환 기자, 영암=조득진 기자 offramp@joongang.co.kr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