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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좌우 갈리지만 하나서 나와…보수·진보, 남과 북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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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국 스님은 “우리는 화가 나면 감정의 노예가 된다. 그렇게 몇 시간을 보낸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의 일생이 그렇다. 그래서 감정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그걸 알면 종 노릇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주인을 찾아가는 수행법이 간화선이다”고 말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여러분이 사냥꾼이라고 하자. 아무리 사냥을 잘해도 사냥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간화선(看話禪·화두를 궁리하는 불교 수행법)의 물음은 그 짐승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준다.”

18일 대구 팔공산의 동화사에서 ‘간화선 대법회’가 열렸다. 대법당에는 1500명의 청중이 모였다. 앉을 자리가 모자라 법당 바깥의 마루까지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문간에 서서 귀를 쫑긋 세우는 이도 있었다. 이날은 혜국(慧國·68·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스님이 법상에 올랐다. 한국 간화선을 대표하는 선사 중 한 사람이다. 법문은 쩌렁쩌렁했고, 중간중간 박수가 터졌다. 법상에서 내려온 혜국 스님과 마주 앉았다. 그에게 ‘수행과 선(禪)’을 물었다.

혜국 스님은 자신이 처음부터 마음공부를 잘하던 사람은 아니었다고 했다. “저도 처음 간화선 수행할 때 믿음이 안 갔다. 앉으면 3분, 5분도 못갔다. 초등학생 때 딱지치기하던 일, 여학생들이 놀 때 고무줄 끊던 일. 그런 게 자꾸 생각나더라. 내 안에 있는 사진기, 녹음기가 자꾸만 돌아가더라. 정말 속상했다. 그래서 방황도 많이 했다.”

그는 해인사 방장을 하던 성철 스님을 찾아갔다. 21세 때였다. 성철 스님 밑에서 수행을 했다. "하도 수행이 안 되기에 ‘법화경(法華經)’을 연구하는 학자가 되려고 했다. 성철 스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버럭 역정을 내셨다.” 세 가지 물음에 둘을 답하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성철 스님은 앞에 있던 물컵을 들더니 젊은 혜국에게 물었다. "이게 보이느냐?” "아, 스님 보이죠.” "뭐로 보느냐?” "아, 눈으로 봅니다.” 밤이었다. 성철 스님은 방 안의 불을 껐다. 물컵을 들며 다시 물었다. "들었느냐? 안 들었느냐?” "캄캄해서 모르겠습니다.” "아까 보던 눈깔은 어디 갔느냐?” "있습니다.” "그럼 왜 안 보이느냐?” 혜국은 대답을 못했다.

성철 스님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고양이나 올빼미는 캄캄해도 본다. 어두운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에너지를 익혔기 때문이다. 캄캄한 데서도 잘 보도록 내 에너지를 익히면 잘 볼 수 있고, 환한 데서 잘 보도록 에너지를 익히면 환한 데서 잘 본다. 그러니 네 눈으로 보는 게 아니다. 그걸 익히는 주인을 찾아야지. 이놈아! 누가 글을 보고, 누가 법화경을 보는 줄도 모르지 않느냐. 그 주인을 찾아야 하지 않느냐.”

첫 물음부터 막혔다. 이어서 성철 스님은 "억!”하고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고서 성철 스님이 물었다. "몇 근이고?” 그건 소리의 무게를 묻는 물음이다. 그 소리의 실체가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를 묻는다. 혜국은 대답을 못했다. 답은 고사하고 그런 질문을 받는 것조차 처음이었다. 성철 스님은 "세 번째 물음은 물을 필요도 없다. 이놈아, 가서 하루 5000배씩 하라”고 말했다. 그 길로 장경각에 가서 하루 5000배씩 했다. 밥 먹는 시간만 빼고 하루 15시간을 꼬박 해야 5000배를 채운다. 혜국 스님은 “그렇게 7만 배쯤 했을 때 ‘아, 나는 없고 하는 놈이 따로 있구나’라는 게 언뜻 느껴지더라”고 말했다.

그래도 쉽진 않았다. 급기야 그는 장경각에 들어가 자신의 손가락 세 개를 태웠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 무명지였다. 손가락을 태운다고 마음까지 태워질까. “좌선하는데 자꾸만 망상이 올라오고, 그 망상을 따라갔다. 그런 업(業)의 노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종이 아니라 주인이 되고 싶었다. 중다운 중이 되고 싶었다. 돌아보면 어설픈 다짐이었다. 선(禪)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 그래서 손가락을 태웠다.” 1년 반 만에 성철 스님을 찾아갔다가 손가락 때문에 호된 꾸지람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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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동화사에서 열린 ‘간화선 대법회’에는 가랑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1500여 명의 청중이 모였다.

혜국 스님의 답은 시원하고 거침이 없었다. “나는 못난 놈이었다. 만약 내 상좌(절집의 제자)가 손가락을 태우겠다고 하면 반대한다. 나는 달려가 말리겠다. 그 에너지로 공부를 하라고 하겠다. 내가 왜 손가락을 태웠겠나. 절 밖에 나갔다가 어여쁜 여자를 보면 자꾸만 생각이 나니까. 절에 돌아와서도 생각이 나니까. 그래서 태웠다.”

성철 스님이 눈 앞에서 들었던 물컵과 절집에 와서도 생각나는 여인의 정체는 둘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색(色)이다. 그들의 모습과 형상을 떠올릴 때 따라오는 기억과 감정도 불교에서는 색(色)이라 부른다. 그 색이 ‘있다!’고 여기면 집착이 생긴다. 그 집착으로 인해 괴로움도 생긴다. 간화선 수행은 그 색의 정체를 뚫는 일이다. 그게 정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없는 것인지 말이다. 그걸 뚫을 때 비로소 세상도 뚫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간화선 대법회의 주제도 ‘간화선, 세상을 꿰뚫다!’였다.

혜국 스님은 결국 ‘나’를 뚫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뚫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나의 존재원리를 깨닫는 것이라고 했다. “어젯밤 꿈에 불을 만났다면 뜨겁지 않겠나. 아침에 눈을 딱 뜨면 어떤가. 그게 있는 불인가, 없는 불인가. 그렇다. 없는 불이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생각의 정체는 비어있음이다. 그래서 모든 생각은 ‘비어 있는 생각’이다. 그걸 ‘무념(無念)’이라고 한다. 불교의 수행은 결국 ‘무념’과 ‘무상(無相·모든 형상이 비어있다)’을 깨닫는 것이다. 그걸 알면 있음과 없음을 동시에 보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자유로워진다.” 그저 아무것도 없는 ‘허무의 없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혜국 스님은 없음을 통해 피어나는 이 세상을 보라고 했다.

한국 사회를 향한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왼쪽 손을 들어보라. 이제 오른쪽 손을 들어보라. 손은 좌우로 갈리지만 그걸 움직이는 에너지는 하나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를 둘로 가르는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 남과 북도 마찬가지다. 그게 하나임을 알아야 한다. 김정은이 싫고 북한의 정치는 싫지만 북한 사람들은 내 형제로 봐야 한다. 그게 없다면 남북통일은 요원하다. 그런 눈부터 먼저 가져야 현실적인 문제를 풀어갈 수가 있다.”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드는 동화사, 혜국 스님의 설법이 우리의 마음에도 단풍이 들기를 재촉했다.
◆혜국 스님
13세 때 해인사 일타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태백산 도솔암에 들어가 솔잎과 쌀로 생식만 하며 2년7개월간 장좌불와(長坐不臥·잘 때도 눕지 않는 참선 수행)를 했다. 조계종 선원수좌회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 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대구=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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