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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2016 참가자 릴레이 기고 <9> 국가 장기전략의 리더십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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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림
법무법인 세종 러시아변호사
국제법 박사

4년여 전부터 러시아 정부의 극동정책이 본격화되면서 필자는 직업상 한국이 러시아에 진출하는 경제적 측면과 방법론을 검토하게 됐다. 다양한 극동 관련 자료들을 뒤지다 엉뚱하게도 필자는 치열했던 연해주 독립운동사와 그 속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에게 마음을 사로잡혔다. 그러다 한인 주거촌 근처에서 발견되는 발해의 흔적들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고는 이젠 발해 지도들까지 수집하고 있는 ‘심각한 오지랖’을 자책하기도 했다. 그런데 송기호 서울대 교수가 ‘평화 오디세이 2016’에서 한 차량 강의가 큰 위로가 됐다. 선진국들은 새로운 물류사업이 등장하면 그 지역에 대한 인문·역사서들이 동난다는 것이다. 즉 필자는 ‘정상’이라는 거다.

다양한 분야의 석학과 전직 관료들의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6일의 일정은 정말 1분1초가 아까웠다. 그리고 오디세이 용광로의 감동이 채 가시지 않은 얼마 전 러·일 철도연결사업 보도에 충격을 받았다. 마침 지난주 필자는 여시재-중앙일보-채텀하우스 공동 주최의 포럼 참석 중 러시아 두마 외교상임위 부의장 클리모프 의원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어 바로 물어보았다. 진정성은 없으면서 주변국들을 자극하기 위한 ‘정치적 수’라고 생각했던 터라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경제성도 없는 사업이라는데 러·일 철도 연결을 제안하는 의도가 무엇인가? 추구하는 구체적 이익이 있는 것인가?”

클리모프 의원의 답은 이랬다. “국가 전략사업의 경제성에는 숫자로 따질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회복한(!) 크림반도에서 본토까지 다리를 건설하고 있는데 수요에 비해 막대한 비용과 기술적 난제들까지 따진다면 답이 없는 사업일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 엔지니어들은 값을 매길 수 없는 기술 획득을 하고 있다. 또 이 다리는 200년은 족히 버텨줄 것이다. 그때는 푸틴 대통령도 없을 것이다. 지도자는 다음 세대를 위한 다리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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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 일행이 지난 8월 찾은 러시아 자루비노. 한반도와 중국 동북3성이 인접해 한·러 경제협력의 요충지로 꼽힌다. [사진 김현동 기자]

러시아가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린 게 우연이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어 클리모프 의원은 유의미한 역사적 사실 하나를 알려주었다. 독·러 가스관사업 때 많은 서독 엔지니어가 자체 기술과 장비를 가져와 소련 관료들과 일했는데 이것이 당시 소련 관료들이 처음 서방 세계에 눈뜨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소련의 붕괴는 경제 제재나 물리적 압박과 같은 외부 작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 세계를 이미 보고 이 체제가 무너져도 자신은 더 잘살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기득권들이 소련 붕괴를 방치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던 한 러시아 주지사의 3년 전 말과 맥락이 통하는 설명이었다.

‘세기의 거래’라 불리는 독·소 가스관 협정은 1970년 체결됐다. 이후 최악의 냉전 중에도 소련의 가스 공급과 서독의 대금 지불은 성실히 이행됐다. 서독 내의 엄청난 반대 속에 시작되었지만 이후 양국 간 많은 경협사업을 낳았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독일이 통일 전야를 맞았을 때 소련은 독일 통일을 지지하는 이해당사자가 돼 있었다. 당시 동독 주둔 소련군의 물리적 힘이 통일을 막기 충분했지만 소련은 서독 주도의 통일 독일과 활발한 경협을 원했고 그러한 선택을 했다. 진실로 한반도에서 재현되기를 바라 마지않는 역사의 한 장면이다.

오디세이에서 나눈 얘기들, 클리모프 의원과의 대담을 곱씹어 보며 출발선 언저리에서 번번이 좌절된 남북·러 가스관사업과 철도사업을 떠올려 보았다. 안 되는 수만 가지 현실적 이유에 다 동의하다가도 한 가지, ‘후세대를 위한 지도자의 비전과 결단력’ 항목에서는 고개를 흔들게 된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비교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모든 국책사업은 최소 20년 후를 내다보며 추진하는 러시아의 지나친(!) 장기 전략 마인드(이 때문에 한국 기업들은 늘 속 터져 죽지만), 많은 비난과 오해에도 ‘세기의 거래’에 도전했던 서독 정부의 사명감, 러·일 경협 전담부처를 신설하고 국책은행 JBIC를 극동 진출사업 가이드 기관으로 위임하며, 가스관·철도 사업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아베의 담대함과 집요함까지….

이러한 것들을 우리는 언제쯤 기대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우리가 국내 정쟁 이슈에 함몰돼 있는 이 순간, 한국의 북방 미래 지형은 매일 좁아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한참 앞서가고 있는 중·일의 극동 진출에 가속도가 붙으면 내년 말 우리 대권 후보들은 나름의 북방 플랜을 제시할 여지조차 없을지도 모르겠다. 러·일 간 철도·가스관 연결 사업이 구체화되기 전에 우리가 서둘러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경협안을 러시아에 제시해야 한다.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대한 긍정적 역할과 함께 한국에 새로운 경제영토를 열어 줄 러시아의 전략적 가치를 이대로 놓아 줄 수는 없다.

이태림 법무법인 세종 러시아변호사·국제법 박사
사진=김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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