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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의 맛집] “공장지역 한 가운데 프랑스 식당, 결혼기념일에 발견한 의외의 선물”

| 패션디자이너 김석원의 ‘렁팡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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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앤디 앤 뎁’을 이끌고 있는 패션 디자이너 김석원, 윤원정 부부는 결혼기념일마다 남들은
잘 모르는 장소를 찾는다. 낡은 공장지대 사이에 조그맣게 둥지를 튼 깔끔하고 모던한 프렌치 레스토랑 ‘렁팡스’를 알게 된 이유다. [김경록 기자]

 
 
입맛은 정말 제각각인데 남들이 어디서 뭘 먹는지에 유별난 관심을 갖는 건 어쩌면 맛 자체보다는 타인의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가 궁금해서일지도 모른다. 10월 5일부터 새로 시작하는 ‘멋 좀 아는 식객의 맛집 재발견’은 이런 궁금증을 해소시켜줄 새로운 유형의 맛집 소개 시리즈다.
각 분야에서 나름 확고한 영역을 구축하고 있을 뿐 아니라 멋스런 삶을 사는 8인의 명사들이 각각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 달에 한 번 본인이 즐겨 찾는 맛집을 소개한다.


젊은이들 모여들며 성수동에 이색 공간 생겨나
격식보다 편안함 강조한 인테리어 마음에 쏙
구운 망고 곁들인 돼지등심요리 아내가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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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1번지인 강남을 떠나 성수동으로 사무실을 옮긴지 벌써 14년째다. 서울에서 보기 드문 공장 허가 지역이라 인쇄, 자동차 수리, 금속, 구두, 가죽, 그리고 반도체까지…. 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과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는 성수동이 나는 처음부터 싫지 않았다. 강남보다 훨씬 저렴한 임대료가 한 몫 한 건 사실이지만, 성수동이 가진 다양한 숨은 매력들에 더 끌렸다. 이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오래된 적벽돌 건축들이 군데군데 아직 남아있어 언젠가는 뉴욕 맨해튼 웨스트쪽 미트패킹 디스트릭트처럼 이 건물들의 가치와 감성을 알아줄 날이 있으리라 막연한 기대도 있다.

더불어 그런 건물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변화를 바라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워낙 다양한 공장들이 일찍부터 생활터전으로 자리 잡았던 지역이라 이들을 비집고 새로운 문화·트렌드가 싹트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한데 몇 년 전부터 도전과 파격을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이 하나 둘 성수동으로 모여 들기 시작했다. 그들이 멋진 이유는 여느 동네와는 다르게 성수동을 자신들이 변화시키는 대상이 아니라 기존 성수동의 분위기와 공생한다는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세련된 인테리어와 값비싼 간판보다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성수동 색깔에 맞게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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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 치즈와 넛츠류를 올린 앤다이브. [김경록 기자]

올 여름에도 아주 흥미로운 곳을 발견했다. 오래전부터 결혼기념일이면 아내와의 특별한 저녁을 위해 레스토랑을 뒤진다. 이미 유명해서 남들 다 아는 곳 말고, 아내가 생각도 못했던 의외의 식당을 찾는 게 목표다. 건축가 김수근 선생이 지은 ‘공간’ 사옥 내 이탈리안 레스토랑 ‘다이닝 앤 스페이스’나 종로골목 귀퉁이에 숨은 정창욱 셰프의 ‘비스트로 차우기’ 등은 그렇게 찾아낸 곳들이고 계획대로 아내는 나의 서프라이즈 디너에 만족스러워했다. 다이닝 앤 스페이스는 한국 최고의 건축가가 설계한 만큼 공간의 아름다움이 뛰어났고, 비스트로 차우기는 마치 ‘종로 골목 구석에 이런 곳이?’ 라고 놀리듯 전혀 기대 못한 곳에 숨어 있어서 매력적이었다.

이번에 찾아낸 곳도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레스토랑이다. 인터넷을 뒤지다 성수동 공장들 한가운데 프렌치 레스토랑이 오픈했다는 누군가의 포스팅을 보고 깜짝 놀랐다. 게다가 우리 사무실에서 걸어서 5분 거리였다.

하루 종일 뜨거웠던 여름 해가 노을 속으로 녹아들고, 미처 일을 끝내지 못한 기계음과 힘 있는 망치소리가 골목 사이를 울릴 때, 와이프에게 “일단 따라 오라” 하고 앞장섰다. 파랗게 칠한 벽과 문에 작은 간판이 보인다. 렁팡스(L’enfance). 프랑스어로 ‘어린 시절’이란 뜻이다

실내는 아담했다. 작은 바와 홀, 주방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짙은 흑갈색 테이블과 정형화 되지 않은 여러 타입의 클래식 나무 의자, 올리브 그린컬러의 가죽 붙박이 의자 등 요란하지 않은 가구들에서 차분함이 느껴진다. 벽면에 걸린 큰 거울들 덕분에 공간이 확장돼 보이는 효과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건 정형화된 프렌치식당의 격식 있는 세팅이나 부담스러운 인테리어가 아니라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따스한 분위기였다. 자리에 앉아 창가에 드리워진 하얀 면 커튼 사이로 바라보는 성수동의 느낌은 또 새롭다. 성수동 공장들 사이에서 내가 지금 있는 이 공간이 무척 특별해진 느낌이다.

결혼기념일도 축하할 겸 식전주로 샴페인과 함께 전채요리인 앤다이브를 주문했다. 작은 배춧속을 한 장씩 뜯어놓은 듯한 앤다이브 위에 고트 치즈와 넛츠류가 올라가 있고, 그 위에 자몽·건포도가 들어간 소스를 한 스푼 얹어 샴페인과 먹으면 식전 입맛 돋우기엔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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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를 곁들인 돼지등심과 구운 망고. [김경록 기자]


그리고 기대했던 메인요리! 버섯을 좋아하는 나는 버섯 파스타를, 고기를 좋아하는 와이프는 고수를 곁들인 돼지등심과 구운 망고를 주문했다. 이미 샴페인 한 병을 다 비웠기에 레드와인은 글라스로 주문했다.

생면에 양송이버섯, 포르치니 파우더가 함께한 파스타는 버섯 향과 소스가 적절히 면에 스며들어서 따뜻할 때부터 차가워졌을 때까지 오랜 동안 와인과 함께 하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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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면에 포르치니 파우더를 듬뿍 얹은 양송이버섯 파스타. [김경록 기자]

돼지등심요리는 뼈와 함께 구워져 나와 마치 양고기 같은 비주얼이다. 얇게 썬 고기에 구워서 맛이 더 깊어진 망고 한 조각을 얹어 입 안에 넣으면 고수 향이 살짝 어우러지는 게 동남아 향취도 연상되면서 매우 이국적이고 신선했다. 고기 맛에 푹 빠진 아내는 뼈째 들고 먹는 과감한(?) 행동까지 보이며 꽤 만족스러워 했다. 메인요리를 즐기는 동안 술은 ‘조금만’ 먹자고 글라스 와인을 시켰던 건데, 음식이 맛있어서 계속 주문했더니 어느새 와인 한 병치 가격을 훌쩍 넘어버렸다.

레스토랑에서 나오니 어느덧 성수동은 적막할 만큼 조용해졌다. 공장들 불빛도 하나 둘 꺼지고, 낮에 느낀 활기와는 거리풍경이 사뭇 달랐다. 어색할 정도로 조용해진 거리를 걷다보니 낮에는 잘 안 보이던 다양한 거리 풍경이 서서히 눈에 들어왔다. 그날 우리 부부는 저녁 늦게까지 와인에 취해 성수동을 거닐었다.


 
렁팡스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2가 272-41 (연무장길 106)
● 전화 :  02-465-7117
● 영업시간 : 점심 12시~15시 (라스트오더 14시) / 저녁 18시~23시 (라스트오더 21시). 월/일요일 휴무
● 주차 : 협소, 인근 공영주차장 이용
● 메뉴 : 버섯파스타(2만원), 앤다이브(1만4000원), 돼지등심(2만8000원)
● 드링크 : 하우스 와인(잔 1만5000원 병 6만5000원), 레드 15종(5만원~26만원), 화이트 10종(5만원~21만원), 스파클링 4종(5만원~1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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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원
패션 디자이너. 아내 윤원정과 함께 부부의 영문 이름을 딴 브랜드 ‘앤디 앤 뎁(ANDY & DEBB)’을 17년째 이끌고 있다. 언제나 포마드를 이용한 2:8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는 젠틀맨. 업계에선 오래된 자타 공인 미식가. TV 맛프로 ‘수요미식회’에도 가끔 얼굴을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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