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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NIE] ‘미완의 법’ 김영란법, 한국의 부패 고리 끊을 수 있을까

논란의 중심에 선 '부정부패 방지법'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22일이 지났다. 법률의 적용 대상은 국민 전체 8%에 해당하는 400만 명에 달한다. 적용 대상이 워낙 많고, 법률과 기준에 대한 해석도 다양해 시행 초기 혼란이 큰 편이다. 시행 첫날인 지난달 28일 “학생이 교수에게 캔커피를 건넨 걸 봤다”는 신고가 김영란법 위반 첫 사례로 접수되기도 했다. 김영란법을 바라본 시선은 엇갈린다. 우리 사회가 부패 지수를 낮추고 청렴사회로 탈바꿈하기 위해 불가피한 법률이라는 찬성론과 지나친 통제로 사회활동을 위축시킨 과잉 입법이란 비판이 맞서고 있다. 신문 기사를 통해 김영란법의 취지와 가치에 대해 짚어본다.

‘ 부정부패 막는 계기’ vs ‘과도한 규제’ 논란
“ 이해충돌 금지 부분 삭제돼 자체 완결성 결여”
세계 기준에 맞춰 법 내용·적용대상 보완해야


◆왜 도입됐나=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6월 발간한 ‘한눈에 보는 한국 정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G7 국가 중 이탈리아 다음으로 부패한 나라로 인식돼 있다. “이 나라 정부에 부패가 만연해있습니까”라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이 한국은 77%였다. OECD 평균은 63%, G7의 평균은 59%다.

실제로 우리 사회엔 부정부패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김영란법 제정의 결정적 계기가 됐던 ‘벤츠 여검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1년 검사였던 이모(41·여)씨가 내연관계였던 변호사 최모(54)씨로부터 “동료 검사가 맡은 사건 수사를 재촉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벤츠 승용차와 까르띠에 시계, 다이아몬드 반지 등 5591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았다. 검사가 변호사에게 직무와 관련된 부탁을 들어주고 고가의 선물을 제공받았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사와 변호사가 연인관계였고, 둘 사이에 오간 금품은 알선 대가가 아니라 ‘사랑의 정표’였다는 게 이유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청탁과 뇌물 수수에 대한 경각심,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김영란법의 취지는 ‘공정한 직무 수행을 보장하고 국민의 신뢰를 확보(제1조)’하는 것이다. 법의 적용을 받는 공직자, 언론인, 교수·교사의 자유를 제한하자는 게 아니라 ‘정당하고 떳떳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직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의미다. 최초 제안자인 김영란(60) 서강대 석좌교수 역시 “이 법의 최대 수혜자는 공무원”이라 말했다. 공정하게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환경, 부정한 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근거가 김영란법을 통해 마련됐다는 얘기다.

◆논란 일어난 이유는=김영란법이 비판받는 지점은 ‘불확실성’과 ‘과도한 규제’다. 법령에 따르면 공무원·언론인·교직원 등은 금품수수가 금지되지만 ‘원활한 직무 수행과 사교·의례’에 한해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까지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사회 상규에 따른 금품’은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사교·의례’에 해당하는 활동이 무엇인지, ‘사회 상규’의 기준은 어디까지인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김영란법이 ‘피라미 색출법’으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때문이다. 김영란법이 5000만원이 넘는 금품을 받은 벤츠 여검사, 넥슨의 주식 126억 원어치를 공짜로 받아 해임된 진경준 전 검사장 등 명백한 불법을 저지른 이들을 적발하기보다, 식사비 3만원을 넘겼다는 이유로 일상적인 인간관계를 매도하고 위축시킨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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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행 이틀째인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청 전직원의 이름이 들어간 김영란법 준수
서약서가 청사 로비에 걸려 있다.

특히 ‘직무관련성’을 이유로 교수·교사는 학부모와 학생에게 커피 한 잔, 꽃 한 송이도 받아선 안된다는 국민권익위의 해석에 대해 “지나치다”는 여론이 높다. 교직 종사자를 잠재적 비리집단으로 매도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란파라치(김영란법+파파라치) 등장도 김영란법에 대한 논란을 부추긴다. 법 규정은 모호하고 적용 대상은 많다보니 작은 위반 사례로도 옭아맬 수 있는 틈새가 생긴다. 김영란법 위반 첫 신고 사례였던 ‘캔커피 교수’가 상징적이다.

하지만 김영란 서강대 석좌교수는 “소수의 악당이 저지르는 거대한 부정부패도 있지만, 다수의 선한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부정에 젖어드는 것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소한 사회활동까지 제약하는 과잉 입법이라는 비난도 받지만, 관습화된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방편이란 뜻이다.

◆미완의 법, 완성의 조건은=김영란법 3년에 걸친 입법 과정에서 원안과 상당 부분 달라졌다. 제안 당시 ‘부정청탁+금품수수+이해충돌’ 금지였던 것이, 입법 과정을 거치면서 ‘이해충돌 금지’ 부분이 삭제됐다. 남궁석 국회 수석 전문위원은 “이해충돌 방지는 공직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임에도 관련 규정 전체가 삭제된 상태로 의결돼 자체 완결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도 달라졌다. 입법을 맡은 국회의원들은 ‘부정청탁’의 15가지 유형을 세세하게 적시했지만, ‘선출직 공직자, 정당·시민단체 등이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다. 선출직 공직자인 국회의원은 민원청탁을 받을 수 있게 ‘뒷문’을 열어뒀다는 비판도 나왔다.

김영란법이 완성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미완의 법’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국민권익위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이나 대법원의 판결에만 맡길 일이 아니다. 공무원과 언론인, 교직원이 법망을 피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생활 방식을 바꾸고 행동 강령을 수립해야 한다. 법보다 높은 도덕적 잣대를 스스로에게 들이댈 수 있을 때 김영란법이 완성된다.

법의 내용과 적용 대상도 입법 취지에 맞게 보완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현재 적용 대상인 공직자·언론인·교직원은 물론 건설업·보건의료업 등 청렴도가 떨어지는 민간 부문도 김영란법 테두리 안에 넣을 필요가 있다. 유엔 부패방지협약이 민간 부문 부패에 대한 민사·형사·행정상 제재를 강조하는 것도 참고해야 한다. 영국과 싱가포르의 경우 각각 뇌물방지법·부패방지법을 공공부문은 물론 민간 부문에까지 적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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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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