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수업 현장 클릭] “외워라” 대신, 단서 주고 “생각해봐”… 엉뚱한 답도 칭찬받았죠

서울국제고 수학·경제 융합 수업
 
기사 이미지

서울국제고의 융합수업 모습. 수학과 경제 교사가 함께 들어와 ‘합리성’을 주제로 교과 내용을 재구성해 영어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우상조 기자

수능을 30여 일 남겨둔 지금, 여느 고3이라면 기출문제 풀이나 자습에 열중할 때다. 하지만 12일 방문한 서울국제고의 고3 교실은 달랐다. 20명 남짓한 학생들이 다섯 모둠으로 나눠 앉아 퀴즈를 풀듯 수업에 참여했다. 교탁 앞에 선 교사는 두 명, 박진희 수학 교사와 유명현 경제 교사가 ‘합리성’을 주제로 융합 수업을 진행했다. 확률·통계·내시 이론 등 어려운 용어가 속속 등장했지만, 학생들은 필기조차 하지 않은 채 수업을 즐기고 있었다. 교사의 설명과 학생 간 토의까지 100%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수학에선 확률·통계, 경제에선 내시 이론
‘합리성’ 주제로 여러 교과 재구성해 수업
학생들 “공부라는 생각 안 들고 재밌어요”


‘Man is a rational animal(사람은 합리적인 동물이다)’ 수업이 시작되자 유 교사가 빔 프로젝트로 스크린에 띄운 문장이다. 유 교사가 “Do you agree with this statement(이 말에 동의하나요)?”라고 묻자, 학생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자 교사들은 여러 상황을 연이어 제시했다. 뺑소니 사고에 휘말린 택시 기사가 법정에서 진실을 말할 확률을 계산하라고 했다. 이어 ‘청소를 오늘 하면 40분, 내일 하면 50분간 해야 한다. 오늘과 내일 중 언제 할지 선택하라’는 질문도 던졌다. 모둠별로 1만원씩 주고, 다른 모둠과 돈을 어떤 식으로 나누고 싶은지 각자의 의견도 물었다. 피트니스 클럽에 장기간 등록할수록 할인율이 높아지는 조건이라면, 몇 개월치를 한꺼번에 지불하겠냐는 질문도 이어졌다.

교사들은 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경우의 수, 확률 등 문제풀이가 필요한 순간에만 수학을 담당하는 박 교사가 잠시 개념을 설명을 했을 뿐이다. 답은 각 모둠에서 토론을 통해 해결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엉뚱한 답을 내 놓을때 오히려 적극 호응해 자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청소를 오늘 할 것인가, 내일로 미룰 것인가’를 선택할 때, “계속 미루면 결국 엄마가 해준다”고 답한 남학생에게 “대단히 똑똑하다”고 칭찬하는 식이다.

놀이처럼 자유로운 대화가 한동안 이어지던 때, 유 교사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Man is a rational animal. But are you rational(사람은 합리적인 동물이죠. 그런데 너는 합리적이니)?” 분위기가 반전됐다. 수업 시작 때와 달리 학생이 쉽게 답을 하지 못했다. 우유정양은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관념적으로만 생각해왔는데, 막상 내가 수업 시간에 선택한 것들을 떠올려보니 하나도 합리적인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방승윤양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제시해준 상황마다 즉흥적으로 선택했지, 수학적으로 정확히 계산하고 따져 결정하지 않았다”며 “경제학에서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가정을 일정부분 수정해야 할 것 같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수업을 마친 유 교사는 “학생 스스로 깊게 생각할 수 있게 돕는 게 융합수업의 진정한 효과”라고 말했다. 학생들에게 모든 내용을 알려주고 암기시키는 게 아니라, 단서를 제공하고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게 수업의 목표라는 얘기다.

교사들은 융합수업을 기획할 때 가장 신경 쓸 부분으로 주제 선정을 꼽았다. 하나의 주제에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는 식으로 과목별 내용이 녹아들어야 제대로 된 융합수업이라는 설명이다. 유 교사는 “주제가 적절치 않은 데 여러 과목 교사들이 들어와 지식을 나열하기만 한다면 수업이 산만해지고 학습 효과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교사 간의 충분한 논의도 필요하다. 융합 수업은 단원별 내용을 순차적으로 알려주는 식이 아니다. 수업 주제와 관련된 해당 과목에서 전부 찾아 재구성해야 하고, 이를 다른 과목과 연결짓는 방식으로 수업을 재구성해야 한다. 박 교사는 “때문에 단독으로 수업할 때보다 준비 시간이 3배 정도 더 든다”고 밝혔다.

서울국제고 수업은 기본적으로 교과별로 진행되고, 융합수업은 교사가 필요성을 느낄 때 자율적으로 구성해 진행한다. 오낙현 교장은 “국어와 역사, 윤리와 과학 등은 한달에 2차례 이상 융합수업을 할 정도고, 다른 과목 교사들도 적절한 주제를 찾으면 적극적으로 융합수업을 구성한다”고 밝혔다. 학생들의 반응은 뜨겁다. 우양은 “융합수업을 들을 때면 공부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그냥 내용으로 확 빨려들어가는 느낌이다. 주어진 내용을 반복해 외우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어 재미있다”고 말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