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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요구하는' 평화협정', 진정한 의도

기자
정영태 사진 정영태
6.25 전쟁의 비극을 겪고 난 이후, 한국은 휴전(정전)체제하에서 전쟁과 폭력을 거부하는 소극적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남북한 갈등을 민주적으로 조정하고 남북한 교류협력을 활성화 하고 제도화하는 적극적 평화를 실현하고자 노력한 바 있다. 한국은 군사적 억제력 강화로 북한의 남침위협에 대비하면서도 남북한 교류협력을 통해 상호간 신뢰를 구축하여 단계적으로 한반도 평화의 최종과정인 정치적 통일을 달성하고자 애써 왔다.
 
남북대화 단계적으로 확장
군사대화 상대적으로 제한

 
 남북한의 교류협력은 우선 쉬운 분야(경제, 사회 문화 분야)부터 시작하여 점차적으로 어려운 분야(정치, 군사 분야)로 확장해 나가자는 것이 역대 한국정부가 일관되게 견지해 온 입장이었다. 6. 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비군사적 차원의 남북한 교류협력은 많이 확대되었으나 군사적 차원의 대화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수준에 머물러 왔다. 1990년 9월의 제 1차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군축제안이 있었고, 1991년 12월 제 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한이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즉 「남북기본합의서」 서명도 있었다. 남북한은 기본합의서의 불가침부분에서 군비통제 추진을 위한 기본원칙에 합의하였고 1991년 12월 31일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도 이루어 졌다. 하지만 제 8차 고위급회담(1992.9.15∼18)에서 불가침의 이행 및 준수를 위한 부속합의서를 채택한 것을 끝으로 북한의 핵개발 문제로 인해 남북한의 본격적인 군비통제 논의는 완전히 중단되고 말았다. 남북한의 직접적인 군사적 논의는 시늉만으로 끝난 셈이다.
 
남북 ‘평화개념’ 인식차이
북한 ‘미제국주의’ 배격 추구

 
 남북 간에 군비통제논의가 지속되지 못한 이유는 북한은 한국과는 다른‘평화개념’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북한은 사전적으로는 한국과 차이가 없는‘평화개념’을 소유하고 있다. 북한 과학원 어문학 연구소 사전연구실이 편찬한 ??조선말 사전?? (평양: 과학원출판사, 1962)에서는 평화란 “전쟁, 폭력충돌 등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의미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 측면에서는 완전 딴판이다. 김일성 저작집에서는 “평화는 제국주의자들을 쓸어버리지 않고서는 진정한 평화에 대하여 생각할 수 없다. 평화를 쟁취하기 위해서는 (...) 침략과 전쟁의 주된 세력인 미제국주의의 공격을 집중하여야 한다”고 함으로써 ‘미제국주의’ 배격이 곧 ‘평화’로 치부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 정권하에서도 북한은 끊임없이 ‘미제국주의’ 대결구도를 강화해오고 있다. 김정일 정권이 내놓은 선군정치의 명분도 ‘미제국주의 대결전’에서 찾고 있다. ‘군관, 장령용 학습제강’(2004년)에서도 북한은 “반제군사전선은 나라와 민족, 사회주의의 존망을 판가리하려는 우리 혁명의 기본전선으로, 제일 생명전선으로”되었고 “오늘날 날강도 미제와의 힘의 대결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나라와 민족의 생사운명을 판가리하는 사생결단의 대결로 되고”있다고 강변하고 있다. 북한 당국이 되풀이 강조해오고 있는 ‘대내외 혁명전선’은 ‘반미군사전선’을 축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된다.
 
미군철수 지속 요구
외교적 공세 강화
한미동맹 무실화 의도

 
 휴전협정 이후 지금까지도 북한 당국이 끊임없이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하면서 한반도에서의 미군철수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해 오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평화 관련, 북한의 주장들은‘미제국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타승’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거부하는 어떠한 평화노력(‘부르죠아’ 평화주의)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신념을 깔고 있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미국을 거부하는 이 같은‘평화 신념’을 구현하기 위해 대남 또는 대미 평화협정 제의를 지속적으로 반복해 오고 있다. 1954년 6월 15일 「제네바 정치 회의」최종회의에서 남북 간 평화협정 제의를 시작으로, ‘북미 평화협정 체결’( 1974. 3. 25)과 ‘북미 평화협정 체결 및 남북불가침 선언’ 동시체결을 위한 3자회담 제의(1984. 1. 10)로 이어졌다. 특히 1990년대 들어와서는 북한은 그들의 핵협상 수단을 활용해서 보다 구체적이고 과감한 평화협정을 위한 대미 외교를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외무부 대변인 담화(1996. 2. 22)를 통해서 ‘대미 잠정협정’을 제의하였고 이듬해에도 ‘새로운 평화보장체계 수립을 위한 북미협상을 제의(1997. 4. 28)하고 나왔다.
 핵실험을 거듭하면서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요구는 더욱 노골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그들의 핵실험을 미?북 평화협정 체결을 강권하는 수단으로 삼는 적극적인 외교적 공세도 보이고 있다. 북한의 요구로 미국이 4차 핵실험 몇일 전에 미?북간 평화협정에 관한 의견을 비밀리에 교환한 것으로 전해진 배경이 그것이다. 이제 북한의 핵무장이 현실화됨으로써 한국은 북한의 군사적 핵 위협 뿐만 아니라 북한이 한미동맹관계를 무실화 하려는 도전에 직면할 전망이다.
 
북미 직접협상 전략
북한, 핵무장도 외교수단 활용
한미 군사관계 위기 우려

 
 북한은 남북 평화협정 제의로 출발하였지만 점차적으로 미?북 양자 평화협정 제의로 몰아가고 있다. 북한은 미국이 한반도 평화를 방해하는 주요인이며 미국 또는 미국의 영향력이 제거되어야 한반도 평화가 달성될 수 있다는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직접협상을 통한 ‘평화협정 체결→ 유엔사 해체 및 한미동맹관계 변화→ 주한미군의 기능과 역할 변화→ 주한미군 철수’ 등의 순서로 목표를 달성하려는 북한 고유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북?미 안보대화’라는 직접적인 대미 ‘투쟁의 틀’을 우선적으로 구축하려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북한은 한반도의 주요 군사문제 즉,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과 주한미군 문제 및 남북한 군축 문제와 관련한‘협상전투’를 통해서 한?미 군사관계를 변화 또는 약화시키고자 한다. 이제 이러한 외교적 수단으로 북한의 핵무장이 적극 활용되기 시작했다는 현실은 우리에게는 분명 위기라는 사실을 곱씹도록 하고 있다.
 
정영태 동양대학교 군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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