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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 결혼식에 화환 4개, 골프장 선물 상자 위엔 먼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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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시행 이후 첫 주말인 1일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R골프장의 주차장이 평소에 비해 한산하다. 이날 돌아본 수도권 골프장 6곳 중 5곳은 지난 주말보다 예약률이 10~30% 줄었다(왼쪽 사진). 지난달 29일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근조 화환 두 개가 놓여 있다. 김유경·전민규 기자


1일 오후 6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4층, 서울 지역 검찰청 소속 이모 검사의 결혼식이 열렸다. 지방 방송국 아나운서가 신부였다. 이 검사 측에는 화환 4개, 신부 측에는 화환 6개가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는 검사 또는 검찰 수사관의 결혼식이 자주 치러졌다.

그때마다 화환이 벽면을 거의 다 메울 정도로 많았다. 계단에까지 줄을 세우는 경우도 흔했다. 하객으로 온 한 검찰 간부는 “함께 근무한 후배라서 봉투를 두툼하게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쓸데없이 말썽 일으키지 말자는 생각에 딱 정해진 액수만큼만 넣었다”고 말했다. 10만원 이하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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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김영란법 때문에….’

이날 결혼식장, 골프장, 지역 축제 현장 등 곳곳에서는 이런 양해를 구하는 무언의 대화들이 오갔다. 축하 화환과 축의금이 줄었고, 골프장 상점의 선물 상자에는 먼지만 쌓였다. 강원도의 한우 축제에서는 내빈들에게 한우국밥만 제공됐다.
한편에는 모처럼 휴식과 여가를 즐긴 사람도 있었다. 대기업 홍보팀에서 22년간 일한 김모(49)씨는 이날 경기도 양평군 소리산에서 친구들과 산악자전거를 탔다.

김씨는 “홍보맨으로 일하면서 토요일이면 언론인, 타 기업 홍보 직원, 공무원 등과 골프 치는 게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다. 토요일을 온전히 나를 위해 쓴 것은 10여 년 만에 처음”이라고 말했다. 15년 이상 토요일에는 의사나 병원 직원, 보건·의료 관련 정부기관 직원들과 골프를 쳐 온 제약업체 임원 이모(54)씨는 1일 부인과 함께 강원도 속초로 1박2일 여행을 갔다. 그는 “해방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 대한민국의 주말 풍경을 바꿨다. 법 시행 4일째, 그리고 첫 휴일인 1일 곳곳에서 크고 작은 변화가 나타났다. 어떤 이는 휴일을 되찾았지만, 다른 어떤 이에겐 생업 걱정이 늘었다.

‘조심, 또 조심’ 결혼식장=“더 넣었다가 괜히 폐만 끼칠 것 같기도 하고…” 1일 오전 11시40분쯤 하객들로 북적이는 대검찰청 예식장에서 A씨가 축의금 봉투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봉투 안에는 5만원권 지폐 한 장이 들어 있었다. 그의 6년지기 친구인 신부는 대검찰청 수사관이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다. A씨는 “입법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친구 사이에서까지 이런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게 씁쓸하다”고 했다.

이날 오후 서울의 한 대학 결혼식장에선 정부 부처의 한 사무관이 결혼식을 올렸다. 축의금을 걷고 있던 신랑 측 가족은 “지금 당장 축의금을 일일이 세어볼 수 없어 일단 받아놓고 나중에 정리할 때 10만원 넘는 축의금은 돌려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한 언론사 기자인 B씨(36)의 결혼식장은 한산했다. B기자는 1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한 덕에 지방자치단체 직원, 경찰관 등과 두루 친분을 쌓았다. 하지만 결혼식 청첩장을 200장 정도만 돌렸다. 김영란법 시행 직후의 결혼식이라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잔칫집은 북적대야 체면이 선다고 생각하시는 집안 어르신들께서 다소 아쉬워하셨지만 모시고 싶은 분들만 초대해 올린 결혼식이라 나름대로 화기애애하고 좋았다”고 말했다.

2일 결혼하는 기자 C씨(32)는 청첩장에 ‘축하 화환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그는 최근 일주일 동안에만 “한 주만 당겨서 하지, 왜 법 시행 직후 시점으로 결혼식을 잡았느냐”는 말을 수백 번 들었다.

이런 변화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축하 화환 등을 제작하는 화훼업계다. 이날 서울 양재동 화훼공판장에는 평소보다 소매상들의 발길이 뜸했다. 이곳에 온 P화원 사장 박모(60)씨는 “평소 주말엔 축하 화환 주문이 적어도 5개, 많으면 10개까지도 들어왔는데 이번 주말은 딱 한 개 들어왔다. 결혼식 대목 시즌이라 지난해 같았으면 밤새 일해도 모자랄 판인데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경기도 용인시의 G골프장은 이날 150개 전체 티 타임 중 20개가 비었다. 근처의 K골프장도 총 142개 티 타임 중 9개를 채우지 못했다. 할인 행사를 해서 예약률을 끌어올렸는데도 빈자리가 생겼다. 두 골프장 관계자는 올여름 폭염 속에서도 토요일에는 ‘풀 부킹’이었다고 설명했다. 골프장 내 상점(프로숍)의 매출도 급락했다. 용인시 T골프장 직원은 “주말에는 시상품(접대 골프에서 선물로 사용되는 과일 상자 등)이 하루에 10개 이상 팔리는데 오늘은 한 개도 나가지 않았다. 이런 날은 처음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다 저 잘리는 거 아니겠죠”라며 농담을 던졌다. 씁쓸한 표정이었다.

‘앞으로가 더 걱정’ 골프장=수도권 골프장 6곳을 돌아봤다. 6곳 중 5곳은 지난 주말보다 예약률이 10%에서 많게는 30%까지 줄었다. 예약이 꽉 찬 경기도 용인의 H골프장 관계자도 “단체 손님들이 대거 예약을 취소해 빈자리는 모두 할인 프로모션으로 채웠다”고 말했다. T골프장 관계자는 “지금은 그나마 성수기라 개인 손님이 많아 버틸 수 있지만 이 시즌이 지나면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내빈 없는' 지역 축제=1일 강원도 홍천군에서는 ‘한우·인삼 축제’가 열렸다. 하지만 지난해에 비해 축제를 찾은 내빈과 손님들은 30% 가까이 줄었다. 이날 주최 측은 내빈들에게 5000원짜리 한우국밥을 점심으로 내놨다.

지난해에만 해도 육회를 곁들인 비빔밥과 고깃국, 지역 토산품으로 만든 음식들을 대접했다. 주최 측 관계자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다들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일부러 소박하게 준비했는데, 개막식에만 참석하고 바로 돌아간 분도 많다”고 말했다. 축제장 옆의 한우 판매점도 예상보다 매상이 오르지 않았다. 한 점주는 “평소보다 25% 이상 상품 가격을 내려 판매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홍천에 사는 주민 이모(54)씨는 “김영란법이 분명히 좋은 취지인 것은 맞지만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는 축제까지 위축돼 주민들의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이런 혼란이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성호 상명대 행정학과 교수는 “불분명한 조항들이 많아 각계에서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사회가 굉장히 경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진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뿌리 깊게 박힌 청탁 문화를 도려내는 과정이라 혼란과 고통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다. 김영란법의 복잡하고 모호한 것들을 고쳐 나가면 그런 부분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김영란법과 관련해 서울 지역에 들어온 112 신고는 3건(오후 3시 기준)이었다. 모두 상담성 신고였고, 실제 신고는 없었다. 서면 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지난달 28일 관내 경로당 회장 160명을 초청해 관광을 시켜주고 점심을 무상 제공했다는 이유로 박식원 대한노인회 강남구지회장으로부터 경찰에 고발된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30일 같은 혐의로 다시 검찰에 고발됐다.
 
정현진·홍상지·김나한·송승환·윤재영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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