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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 디지쿠스] 컴컴한 극장의 ‘폰딧불이’ 휴대폰 벨소리와 매한가지…몰상식한 행동 이제 그만

햇빛이 유리창에 쨍그랑거릴 정도로 맑고, 잠자리가 졸음에 겨운 듯이 나는 한가로운 가을. 하지만 세상은 여유가 없이 각박하고 분주하다. 경제가 어려운 탓이 가장 크겠지만 디지털 시대의 생활이 복잡해진 이유도 적지 않다.

장애인구역에 주차한 차를 신고했더니 ‘이웃끼리 칼부림’을 언급하는 경고장이 붙었다. 버스기사가 귀성 차편을 준비 못한 휴가 군인을 태워줬더니 ‘남자라서 특혜 줬다’는 비난이 돌아왔다. 이런 뉴스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잘 몰랐다. 지금은 인터넷과 스마트폰 때문에 사회 구석구석이 조명된다. 특히 혐오와 예절 문제가 자주 거론되는 것은 사건 하나하나가 특이해서가 아니라 세상이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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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흔한 갈등은 남녀 문제다. 원래는 데이트 비용 문제로 뜸을 들이기 시작했었다. 젊은 남녀가 만나서 설레고 사랑하기에도 정신없을 텐데 밥값과 커피값을 누가 낼 것인지 따져야 하는 사회가 됐다. “쩨쩨하게 여자더러 나눠 내자고 한다”는 주장과 “남자가 봉이냐. 왜 혼자 부담해야 하느냐”는 반론은 모두 씁쓸하다. 남녀 문제가 본질은 아니었다. 하지만 취업조차 어려운 젊음, 데이트 비용조차 버거운 현실에서 시작된 남녀 문제는 서로에 대한 혐오 문제로 커가고 있다.

자전거 문제는 취미의 다양화로 생긴 문제 중 하나다. 자전거 동호회와 자동차 동호회 회원들이 자전거의 병진주행(차로에서 자전거가 나란히 주행하는 것)을 두고 다툰 일이 많았다. 나란히 가는 자전거들 때문에 도로가 좁아지고 위험해진 자동차 운전자들이 여기에 불만을 터뜨리며 갈등이 커졌다. 취미생활의 범위와 공동체의 안전 문제가 서로 부닥쳤다. 최근에는 전동보드, 전동휠, 세그웨이 등 개인용 이동수단이 늘면서 도로의 교통 예절은 훨씬 더 복잡해졌다. 이제 전동보드 이용자가 자전거 전용도로에 들어오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 용어 중 ‘자라니’라는 말이 있는데 자전거와 고라니가 합쳐진 말이다. 자전거 이용자가 늘다 보니 자동차 운전자를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서 나온 일종의 ‘도로의 무법 자전거’를 뜻하는 신조어다. 도로를 역주행하거나 골목에서 튀어나오는 무개념 자전거를, 운전 중 느닷없이 뛰어드는 고라니에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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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심수휘 기자]

웹툰에서 처음 비롯된 ‘폰딧불이’는 원래 어두운 밤 스마트폰을 보며 퇴근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딧불이에 비유한 말이다. 그런데 요즘엔 컴컴한 극장에서 휴대전화를 켜서 메시지를 보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자기만 본다고 조심스럽게 열어 본다지만 휴대전화 불빛은 뒤에 앉은 사람들을 짜증 나게 만들기 마련이다.

과거에는 영화 볼 때 벨소리는 끄는 것이 상식이었다. 이제 영화관에서 벨소리 울리는 몰상식한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스마트폰 시대의 예절은 좀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한다. 벨소리를 끄는 것만이 아니라 불빛까지 가려야 상식적인 행동이다. 벨소리만 끄면 에티켓의 절반만 지킨 것이다. 상식과 예절의 범위가 달라지고 있다.

‘아주라’는 야구 동호인들에게는 유명한 용어다. “아이에게 줘라”라는 뜻의 경상도식 표현이다. 파울볼이 관중석에 날아왔을 때 아이에게 주자는 선의의 뜻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점차 구호가 되고 문화적 예절로 강요되더니 이제는 심지어 권리처럼 여기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선의가 갈등이 됐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은 인터넷의 유명한 격언이다.

디지털 시대에는 미묘하게 세상살이가 달라진다. 과거의 상식과 예절이 변하고 개인의 취미와 사회 안전이 갈등한다. 선의를 해석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다. 그러다 보니 사소한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세상살이가 각박해서 여유가 없는 것인지, 여유가 없어서 세상이 힘든 것인지 알 수는 없다. 분명한 것은 때로 너무 사소한 문제가 인터넷 세상을 뒤흔든다는 사실이다.

얼마 전 밤에 4호선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는데, 열차 안에서 안내방송이 나왔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시고 아름다운 한강의 저녁 노을을 보세요. 일상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세요.” 참 낭만적인 열차 기관사였다. 해 저무는 창밖의 한강은 참 아름다웠다. 지금도 가을 하늘에 잠자리가 날고 햇살이 눈부시다. 우리에겐 여유가 필요하다.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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