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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돈 주고도 옷을 입힐 수 없는 비욘세, 내가 만든 재킷 입었죠

미국 진출한 ‘토종 디자이너’ 박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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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희 디자이너는 직접 그린 그림으로 프린트를 개발해 옷을 만든다. 그는 “큰물에서 놀고 싶은 마음에 큰 그릇을 채워 나가다 보니 지방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뉴욕으로 진출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 그리디어스]

2014년 11월 인스타그램 비욘세 팬 페이지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검정색 바이커 재킷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비욘세를 찍은 파파라치 사진이었다. ‘비욘세가 그리디어스의 프린트 가죽 콤비 바이커 재킷을 입고 있어요’라는 설명과 함께 #비욘세 #그리디어스라는 해시태그가 함께 붙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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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박윤희가 디자인한 ‘그리디어스’ 바이커 가죽 재킷을 입은 팝가수 비욘세의 모습.

뉴욕 패션 편집숍의 바이어가 즉각 이를 캡처해 서울 신사동 그리디어스 사무실에 보냈고, 이를 보자마자 그리디어스 디자이너 박윤희(38)씨는 환호를 터뜨렸다. 브랜드 시작 3년 만에 이룬 작은 ‘성과’였다. 비욘세는 인스타그램 팔로어가 무려 8500만 명이나 되는 초특급 스타이고, 특히 그의 독특한 패션 스타일은 늘 화제를 몰고 온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이후 브리트니 스피어스, 패리스 힐튼도 그의 옷을 사 갔다고 바이어가 전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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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해외 유명 스타가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입은 건 이때가 처음은 아니다. 벨기에에서 활동하는 서혜인·이진호가 이끄는 ‘혜인서’ 머플러를 팝가수 리애나가 둘렀고, 일본에서 공부한 ‘99퍼센트이즈’ 디자이너 박종우의 옷은 저스틴 비버와 레이디 가가가 좋아한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박윤희 디자이너는 순수 국내파라는 점이다. 지방에서 학교를 나와 12년간 오브제·한섬 등 국내 패션기업에서 일한 뒤 2011년 창업했다. 이달 초 한국콘텐트진흥원이 신진 디자이너를 육성하기 위해 지원하는 ‘컨셉코리아’ 3인의 패션쇼에서 내년 봄·여름 컬렉션을 선보인 그를 뉴욕 현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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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컨셉코리아’ 패션쇼 중 ‘그리디어스’가 선보인 2017년 봄·여름 컬렉션. 강렬하면서 여성스러운 스타일이 특징이다.

그리디어스라는 브랜드 이름이 독특하다.
“욕심 많다(greedy)와 환상적(fabulous)이라는 영어 단어를 조합해 만들었다. 여자는 누구나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지 않나. 그런 욕망을 이해해 아름답게 보일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
비욘세 소식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처음에는 내 옷이라는 생각을 아예 못 했다. 누가 내 디자인을 카피했나, 이런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나보다 내 브랜드를 판매하는 바이어 등 미국 친구들이 더 흥분했다. ‘비욘세는 돈을 주고도 옷을 입힐 수 없는 빅스타’라며 축하해줬다.”
미국에는 어떻게 진출하게 됐나.
“브랜드를 만들 때부터 해외 진출을 계획했다. 국내 시장은 너무 작기도 하고, 자본력 부족한 신생 브랜드가 정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했다. 디자인이 독특하다면 해외에서는 오히려 틈새 시장을 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뉴욕의 각종 패션박람회를 노렸다. 2012년 처음 참가했을 때 뉴욕의 작은 패션 편집숍을 운영하는 바이어의 눈에 띄었고, 거기에 입점하게 됐다. 그 이후로 세계 각국에서 온 바이어 눈에 들었고, 그 결과 유럽과 두바이·멕시코·중국 등에서 고루 팔리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가 된 계기는.
“촌(부산 감만동 출신으로, 스스로 이곳을 촌이라고 표현했다)에서 자라 고급 패션을 접할 기회는 없었지만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는 건 좋아했다. 부산에서 예술고등학교를 나와 부산의 한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아마 의류학과를 졸업한 어머니의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 옷을 직접 만들어 입혀 줬고, 비비언 리나 오드리 헵번 같이 예쁘게 차려입은 배우가 등장하는 영화를 늘 집안에 틀어 놨다. 전공을 살려 1998년 대구의 의류회사에서 2년간 일한 뒤 서울에 올라와 오브제와 한섬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왜 연고도 없는 대구에서 시작했나.
“오브제에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모집공고에 키 1m68㎝ 이상이라는 조건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디자인실 막내는 피팅 모델 역할을 겸해야 해 패션업체 대부분 신체 조건을 명시했다. 내 키(1m63cm)는 그에 못 미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킬힐을 신고 면접장에 갔다. 실력을 보여주려고 남들은 한두 개 가져오는 포트폴리오를 8개나 챙겨 갔지만 떨어졌다.”
실력을 증명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으니 억울하지 않았나.
“억울해할 여유가 어딨나.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98년이었다. 어디든 취직을 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더 컸다. 대구의 패션 브랜드 도호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인턴이라도 하겠느냐고 해서 바로 시작했다. 석 달 동안 월급이 40만원이었다.”
요즘은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려고 재수, 삼수도 한다.
“꼭 일해 보고픈 분야가 있다면 일단 거기에 발을 들여놓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 난 원하는 회사에 취업하지 못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앞으로 내가 갈 길에 비하면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커피를 타는 일마저 행복했다. 경력을 쌓은 뒤 다시 도전하면 된다. 삼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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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인·이진호의 브랜드 ‘혜인서’ 머플러를 두른 팝가수 리애나(왼쪽). 박종우의 ‘99퍼센트이즈’ 바이커 재킷을 입은 저스틴 비버. [중앙포토]

그는 도호에서 2년간 착실히 경력을 쌓고 스스로의 실력을 증명한 덕분에 2000년 오브제에 경력 디자이너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도호에서 무엇을 배웠나.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일은 옷 만드는 것이라는 걸 확신하게 됐다. 명색이 디자이너이지, 작은 회사이다 보니 청소부터 포장, 재고 정리, 매장 판매사원 일까지 다 시켰다. 지금 내 사업을 하면서 필요한 모든 건 그때 다 배웠다.”
 
지방대 출신 여성은 일자리 시장에서 핸디캡이 될 수 있는데.
“글쎄. 물론 촌에서 올라왔다는 이유로 설움을 겪기도 했다. 사투리 듣기 싫다고 고치라던 상사도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사투리를 안 고쳤는지도 모르겠다(그는 억양이 억센 부산 사투리를 쓴다).”
원하던 회사에 들어갔고, 그 이후엔 더 큰 회사로 옮기기까지 했는데 창업을 결심한 이유는.
“오브제에서 6년 일했고, 한섬의 ‘시스템’ 브랜드에서는 디자인팀장을 했다. 단기간에 작업하는 국내 패션 브랜드에 소속되어 있기보다는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디자인하고 싶었다. 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했다.”
 
의상의 강렬한 프린트가 인상적이다.
“시즌마다 그림을 직접 그린 뒤 이를 프린트해 원단을 만들고 다양한 디자인으로 풀어 낸다. 서로 다른 소재를 어울리게 잘 섞고, 컬러 배색도 잘한다는 평가를 듣는다. 비욘세의 바이커 재킷도 가죽 재킷에 숫자를 프린트한 원단을 섞었다. 국내에서는 배우 고준희를 비롯해 트렌드에서 앞서가는 연예인들이 주로 입는다. 남과 다른 옷, 기존 브랜드에서 보지 못한 스타일을 찾는 사람들이 주요 고객이다.”
 
앞으로 목표는.
“유럽의 명품 패션 하우스 같은 브랜드를 만드는 게 꿈이다. 또 뉴욕에서 단독으로 패션쇼를 하는 것도 목표다. 샤넬이 초창기 살롱에서 부인들에게 옷을 맞춰 줬던 것처럼 고급 맞춤복도 만들고 싶다.”
 
팝가수 리애나의 황금빛 드레스, 중국 디자이너가 2년간 만들어

새로운 것, 독특한 것을 갈구하는 할리우드의 트렌드 세터들 눈에 아시아 출신 패션 디자이너는 매력적인 존재다. 한국과 중국·일본의 신진 디자이너 옷에는 익숙하지 않은 데서 나오는 참신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박윤희·서혜인·박종우 같은 한국 디자이너들뿐 아니라 중국·일본의 신진 디자이너들의 옷도 인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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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뉴욕 메트로폴리탄 갈라 디너(이하 메트 갈라)에 중국 디자이너 궈페이의 드레스를 입고 나온 팝가수 리애나가 대표적이다. 패션계의 오스카상 시상식으로 불리는 메트 갈라는 가장 영향력 있는 패션 행사 중 하나다. 리애나는 1m가 넘는 긴 트레인(치마 뒷자락)의 황금빛 이브닝 드레스(사진)를 입어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중국 베이징에 스튜디오를 둔 궈페이는 리애나로부터 드레스 제작을 의뢰받고 무려 2년간이나 수작업으로 드레스를 완성했다고 한다. “중국 황제를 연상시키는 극상의 화려함” “거대한 오믈렛”이라고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궈페이는 단숨에 가장 유명한 중국 출신 디자이너로 떠올랐다.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의 주인공 세라 제시카 파커는 중국 디자이너 장후이산의 옷을 좋아한다. 올해 한 시상식장에 금실로 자수를 놓은 파스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나와 주목받았다. 그런가 하면 레이디 가가는 일본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로기케이 옷을 자주 입는다. 2006년 오사카 디자인대학 출신의 디자이너 두 명이 창업한 이 브랜드는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구조적인 디자인이 특징이다.
 

뉴욕=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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