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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이정출의 요동치는 마음이 그 시대의 풍경이라 생각했다

김지운(52) 감독의 여덟 번째 장편 ‘밀정’(9월 7일 개봉)은 일제강점기가 배경이지만, 최동훈 감독의 ‘암살’(2015) 등 독립군의 활약을 액션 활극으로 그린 영화들과 다르다. 일본 경찰의 조선인 밀정(密偵) 이정출(송강호)이 과연 의열단(義烈團·항일 무장 독립운동 단체)과 일본 중 어느 편에 설 것인가 고민하는 모습을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으로 그린 스파이영화다.

이에 대한 관객의 반응은 엇갈린다. 김 감독이 왜 ‘한국 영화계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라 불리는지를 여실히 증명했다고 찬사받는 동시에, 이야기가 치밀하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김 감독이 이에 직접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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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앙DB]

-‘밀정’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기존의 한국영화들이 독립군 대 일본을 선악 구도로 내세운 것과 많이 다르다.

“독립운동가 김산의 일대기를 담은 『아리랑』(님 웨일스·김산 지음, 동녘)을 읽고 두 가지 생각을 했다. ‘만주 벌판을 달리는 선열들의 호방한 모습을 스크린에 그려 보고 싶다’는 마음과 ‘빼앗긴 나라를 찾으려 했던 선조들의 마음은 얼마나 치열했을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전자를 만주 웨스턴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2008, 이하 ‘놈놈놈’)으로 풀어냈다면, ‘밀정’은 후자를 파고든 작품이다. 나라를 빼앗기고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했던 시대, 그 암울한 공기 아래 분열되는 개인의 모습을 그리려 했다.”

-어떤 분열을 말하나.

“이정출이 열차에서 동료 경찰 하시모토(엄태구)와 의열단의 김우진(공유) 사이에 끼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는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지 않나. ‘다음에 내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그건 상대를 헷갈리게 하는 말인 동시에, 그의 진심이다.

스스로도 자기가 어느 편에 설지 확신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정체성의 혼란을 그리고자 했다. 『아리랑』에도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일제강점기는 한 집이 독립군이면 그 옆집은 밀정의 집인 세상이었다고. 이정출이 비단 특정한 개인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이 영화를 ‘차가운 스릴러’라 규정했는데.

“정확히는 스파이 누아르를 추구했다. ‘제3의 사나이’(1949, 캐럴 리드 감독) ‘추운 곳에서 온 스파이’(1965, 마틴 리트 감독) ‘색, 계’(2007, 이안 감독)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2011,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 같은 스파이영화의 걸작을 보면, 화려한 액션보다 등장인물들의 심리전을 통해 극적 긴장을 연출한다. ‘밀정’ 역시 그러한 스파이영화의 문법을 정면으로 좇는 작품이다.”

-극 중 이정출이 왜 일본 경찰의 밀정이 됐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밀정’에서 중요하게 그리고자 한 것은 ‘이정출이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가 아니라, 의열단과 일본 경찰의 회유와 암투 사이에서 ‘그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향할 것인가’였다. 그 요동치는 마음을 끈질기게 따라가기만 해도 될 것이라 생각했다.

또 독보적인 연기력을 지닌 송강호라면, 과거에 대한 친절한 설명 없이도 실리에 따라 이편저편 오가며 살아온 이정출의 여정을 정확히 표현할 것이라 생각했다.”

-구성진 코미디 연기에 능한 송강호를 비롯해, 배우들이 전체적으로 절제된 연기를 하더라.

“치밀한 심리 묘사의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촬영 시작 전 배우들에게 ‘섬세한 연기’를 해 달라고 했다. 늘 ‘이 안에 상대편의 밀정이 있다’는 생각으로 연기해 달라고. 그러자면 끊임없이 동료 배우의 표정을 몰래 읽는 식의 세밀한 눈빛 처리가 중요하다. 그 작은 표정과 눈빛이 영화에서 파문을 일으키길 바랐다.”

-결국 이정출은 결말에서 어떤 결심을 실행에 옮기는데, 그가 마음을 정한 계기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밀정’은 이정출이 통과하는 마음의 경로를 친절하게 설명하는 대신, 이미지·사운드·음악을 통해 그 갑갑한 상황과 심리를 공감각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다 보니 그 결정적 순간이 언제인지 관객마다 모두 다르게 느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열차 장면에서 식당 칸으로 가는 이정출의 모습을 슬로모션으로 비추는 대목이 변곡점이라 생각하고 연출했다. 그 장면에서,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그저 앞으로만 달리는 열차는 시대를 상징한다. 그 열차를 타고 가던 이정출이 갑자기 그와 다른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거다. 이러한 변화를 ‘슬로모션’이라는 이미지로 담아내고 싶었다.”

-이정출의 결심이 드러나는 결말로 극적 반전이 일어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의열단의 작전이 실패로 결론 나는 경성역 장면부터다. 그것도 의열단 내부의 실수가 작전 실패의 결정적 원인이 된다. 그 안타까움은 뜨겁게 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밀정’은 미술·사운드·음악 등 모든 요소가 보다 적극적으로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느낌이다.

“‘발소리와 캐릭터의 뒷모습 하나하나가 인물의 심리를 표현한다’는 생각으로 후반 작업에 공들였다. 사운드 믹싱할 때 ‘그 장면에서 이정출의 세 번째 발소리를 조금 더 크게 해 주세요’ 하는 나를 보고 ‘뭘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나’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웃음).

내가 ‘아가씨’(6월 1일 개봉)에서 마지막 장면의 방울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하니, ‘그 소리 들려주려고 만든 영화인데, 그걸 못 들으면 어떡해!’ 하고 화내던 박찬욱 감독의 마음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웃음). ‘밀정’도 그렇다. 세공된 이미지와 사운드에 흠뻑 젖어 본다면 이 영화를 좋아하겠지만, 그것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심심한 작품으로 남겠지.”

-역시 한국 영화계 대표 스타일리스트 감독답다.

“나를 가리켜 ‘스타일리스트’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난 내 영화가 스타일리시하다고 생각해 본 적 없다. 일부러 멋 내려 한 게 아니라 ‘그 이미지, 그 음악, 그 형식이 그 작품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취한 것뿐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영화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아이러니’ 아닐까. 내가 살면서 가진 가장 큰 궁금증이 ‘이 세상은 왜 이렇게 아이러니한가’다. 데뷔작 ‘조용한 가족’(1998)부터 그런 부조리를 그려 왔다. 뿔뿔이 흩어졌던 가족이 ‘살인’이라는 악행을 통해 단결하지 않나. ‘밀정’의 이정출 역시 의열단과 일본 경찰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아이러니에 빠진다.”

-불우한 시대가 낳은 분열된 자아 이정출도 결국 어느 편에 마음을 준다.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당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가.

“음…, (한참을 생각하다) 생각의 맵시? 아, 이게 센스와는 다른 건데, 뭐라 설명을 못하겠다(웃음).”

장성란 기자 hairpin@joongang.co.kr
사진 = 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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