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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환상 편의점 #7. 미래 안약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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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애원에도, 멱살을 쥔 사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죽거리며 말했다.
 
“내가 너 같은 새끼들을 좀 알지. 그렇게 말해놓고서도 또 살금살금 기어들어오거든. 저 낙서도 네가 한 것 맞지?”
 
“아닙니다. 제발 좀 놔주세요.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노숙자 주제에 급한 일이 뭐가 있어?”

 
남자는 실랑이하는 와중에, 손에 든 스마트폰 화면을 힐끗 보았다. 아! 7시 55분이 됐다. 이제 5분 내로 로또를 사지 못하면 기회는 물 건너간다. 번호를 기입하고 슈퍼주인이 바코드를 인식시키고 돈을 치르는 과정만 해도 2분은 족히 걸리리라.

물론 다음 주에도, 그 다음 주에도 로또 판매는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그때까지 남자가 지금 가진 5천 원을 안 쓰고 보관할 수 있느냐는 거였다. 가지고 있던 돈은 이리로 오는 동안 차비 등으로 다 쓰고 마지막에는 그나마 지갑도 잃어버렸다. 그 후 이틀을 꼬박 굶다시피 했다. 이제 허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일주일 동안 쉴 장소도, 잠을 잘 장소도 없었다. 땅을 파봐야 십 원짜리 동전 한 개도 안 나온다.
 
‘이게 마지막 기회인데…….’
 
그런데 이자는 왜 이토록 나를 핍박하는가? 그저 쓰는 사람도 없고 문이 열려 있던 화장실에 좀 오래 앉아 있었을 뿐인데. 노숙자는 화장실을 쓸 자격조차 없나?

오래 억눌러온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적으로 치솟았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자, 남자는 눈이 돌아갔다. 팔을 허우적대던 중에 손에 뭔가 잡혔다. 구석에 세워져있던 청소용 걸레의 마대 손잡이였다. 그는 그것을 사내에게 있는 힘껏 내리쳤다.

비명과 함께, 멱살을 잡았던 손이 풀렸다. 남자는 정신없이, 온 힘을 다해 사내를 내리치고 또 내리쳤다. 그러는 사이, 마대 끝부분에 쇠로 만들어진, 걸레를 고정시키는 부분 모서리로 사내의 미간과 인중을 찍었다. 사내의 눈이 뒤집히더니 뒤로 쓰러졌다. 남자는 그런 줄도 모르고 마대 자루를 팽개친 다음 슈퍼마켓으로 냅다 뛰었다. 그가 들어오자 슈퍼 주인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왜 이제야 와요? 안 오시는 줄 알았네. 너무 늦었어요. 3분 남았어.”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번호를 기입했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5, 8, 9, 34, 35, 36. 표시를 마친 그는 거의 덮치다시피 달려들어 주인에게 내밀었다.
 
“에이 참, 나한테 번호를 알려주는 건 고사하고 판매 시간에 걸려서 계산이 안 될 수도 있어요.”

 
슈퍼 주인은 못마땅한 듯 바코드를 찍었다. 삑! 억겁 같던 몇 초가 지나고 로또 기계에서 손바닥만 한 종이가 쓱 밀려나왔다. 주인은 종이를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남자에게 건넸다. 남자가 떨리는 손으로 받아가려고 하는데, 주인이 로또 용지를 쥔 손을 놓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자, 그가 말했다.
 
“계산을 하셔야지.”
 
“아, 네, 네. 계산.”

 
남자는 주머니를 뒤졌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분명 접어서 넣어둔 오천 원이 잡히지 않았다. 주인의 표정이 점점 나빠졌다.
 
“아니, 이 사람이… 절박하고 진실해 보여서 별 이상한 거 하자는 대로 다 해주려고 했더니만. 내가 지금 로또 방송 보려고 집에도 안 들어가고 기다리고 있었잖아요. 돈 없으면 이거 못 줘요.”

 
순간, 오천 원이 어디에 있을지 떠올랐다. 아까 시비 걸던 사내와 드잡이하다가 화장실에 흘린 게 분명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흘렸을 만한 곳은 화장실뿐이었다.
 
“잠깐, 잠깐만요. 어디 흘렸는지 생각났어요. 금방 돈 가져올게요.”
 
그러는 사이, 판매 시간은 끝났다. 만약 슈퍼 주인이 로또 용지의 번호를 봤다 해도 소용없었다. 남자는 서둘러 옆 건물 화장실로 뛰었다. 문을 여는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주저앉을 뻔했다.

아까 싸우던 사내가, 눈을 허옇게 뒤집은 채 화장실 바닥에 대자로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미간이 푹 파이고 입술도 터져서 피가 낭자했다. 설마, 죽은 건가? 남자는 재빨리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가 이 화장실로 들어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건물에서 화장실까지의 경로에는 딱히 CCTV도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 얼른 오천 원을 찾아서 여길 뜨면 된다.

화장실을 뒤지려던 남자는, 쓰러진 사내의 주머니에서 반쯤 밀려나온 장지갑을 보았다. 조심스럽게 지갑을 꺼내 열어보니, 만 원짜리 지폐가 그득했다. 됐다! 그는 쾌재를 불렀다. 그깟 오천 원짜리 이제 못 찾아도 상관없었다. 남자는 지갑을 점퍼 안주머니에 넣고 서둘러 슈퍼로 달렸다. 한데, 슈퍼마켓 앞에 다다른 그는 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카운터에 슈퍼 주인이 안 보였다. 그자가 로또 용지를 차지하려고, 그걸 들고 어디론가 가버린 것이다. 슈퍼 문도 잠긴 상태였다.
 
“안 돼. 안 된다고!”
 
남자는 문 앞에 서서 정신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훔친 것이긴 하지만, 그에게는 이제 십만 원이 넘는 돈이 생겼다. 일주일을 버티기에는 충분한 금액이었다. 즉, 일주일 뒤에 다시 미래 안약을 써서 로또 구매에 도전해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반쯤 공황상태에 빠진 남자에게는 그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미래에서 본 숫자에 대한 생각과 천신만고 끝에 구입한 로또. 또 그걸 들고 자취를 감춘 슈퍼 주인에 대한 분노만이 가득했다.

남자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건물 앞 주차를 막으려고 쌓아둔 벽돌 더미가 눈에 띄었다. 그중 하나를 집어 들고 유리로 된 슈퍼 문을 두드려서 깼다. 그는 깨진 틈으로 손을 넣어 잠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남자는 혹시나 슈퍼 주인이 카운터에 로또 용지를 두고 가지 않았나 싶어,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카운터 위를 훑어보고 금전 출납기도 열어서 안을 들여다봤다. 슈퍼 주인이 가게 안쪽에서 나온 건 그때였다. 그는 바지 지퍼를 올리고 있었다. 남자를 기다리는 사이, 급하게 요의가 느껴져서 화장실에 다녀온 참이었다. 남자와 슈퍼 주인의 시선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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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당신 지금 뭐 하는…….”
 
말하던 슈퍼 주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남자가 한 손에 쥔 벽돌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지, 진정해요. 진정하시라고. 이거 드릴 테니까 진정…….”
 
슈퍼 주인은 주머니에서 로또 용지를 꺼내들고 양손을 내밀었다. 그에게 다가간 남자는, 왼손으로 로또 용지를 받아 쥐자마자 오른손에 쥔 벽돌을 슈퍼 주인의 머리에 힘껏 내리쳤다. 주인은 억하고 주저앉았다.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엎드리는 그를, 남자는 벽돌로 계속 찍었다. 이놈도 그의 마지막 기회를 빼앗으려 한 놈이었다. 도무지 용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벽돌 모서리가 양손으로 채 못 감싸고 드러난 숨골 부위에 박혔다. 훅, 하고 숨을 몰아쉰 슈퍼 주인의 손깍지가 풀리더니, 힘없이 양쪽 바닥에 떨어졌다. 남자는 벽돌을 품에 넣고 뒷걸음질 쳤다. 텔레비전에서는 이제 막 추첨이 시작되는 참이었다.
 
“첫 번째, 빨간색 볼, 빨간색 볼 9번입니다. 첫 번째 볼은 빨간색 9번. 두 번째, 두 번째로 빨간색 볼입니다. 빨간색 5번!”
 
남자는 잠깐 멍하니 서서 텔레비전을 보았다. 그러다 퍼뜩 현실을 깨달았다. 이 동네는 재개발 예정지로 발표됐으나 개발이 계속 미뤄져 슬럼가처럼 변한 주택가였다. 그래서인지 토요일 저녁임에도 행인이 없었다. 그렇다 해도, 언제 손님이 찾아올지 몰랐다.
 
‘이 광경을 누가 보면 끝장이다.’
 
남자는 서둘러 슈퍼를 나와서 달리기 시작했다. 번호가 두 개까지 적중하는 걸 봤다. 그러니까 당첨은 확실했다. 그는 부랴부랴 현장을 떠나느라, 이어진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다.
 
남자는 현찰이 있었고 잠재적으로 거액이 될 종이쪽지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식집조차 가지 못했다. 당첨금을 찾기 전에 경찰에 체포될까 두려워서였다. 나올 때 보니, 작고 영세한 슈퍼인 까닭인지 CCTV는 따로 없는 것 같았다. 현장에 딱히 증거를 남긴 것도 없었다, 아마도.

흉기로 쓴 벽돌도 들고 나와서, 산에서 조각낸 다음에 뿌려버렸다. 화장실에도 다시 찾아갔다. 시비 건 사내를 내리쳤던 마대 자루가 떠올라서였다. 사내는 그때까지 누워 있었는데, 안색이 허옇게 질린 게 누가 봐도 끝장난 상태였다. 남자는 발끝으로 걸어 들어가 마대 자루를 쥔 다음, 뒤도 안 돌아보고 달리고 또 달렸다. 그는 밤새 슈퍼마켓이 있던 동네를 등지고 뛰다가 걷다가 했다.

한동안 그는 붙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그래서 이상한 점 한 가지를 깨닫지 못했다. 그 사실이 떠오른 것은, 잘 곳을 찾아 헤매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어느 시민공원 벤치에 누운 직후였다.
 
“아!”
 
남자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그가 본 미래에서는 분명히 슈퍼 주인이 화이트보드에다가 로또 당첨번호를 적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어날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번호를 적었어야 할 슈퍼 주인을, 그 시간이 되기 전에 남자가 벽돌로 죽였기 때문이다. 제 손으로 미래를 바꿔버린 것이다.
 
‘설마, 아닐 거야. 그 가게 주인의 미래만 바뀌었겠지. 그 사람이 죽었다고 해서, 로또 번호까지 바뀔 리가 없잖아. 안 그래?’
 

남자는 애써 이렇게 스스로를 달랬지만, 불안하고 초조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앞의 두 개 번호까지밖에 확인하지 못한 게 너무도 마음에 걸렸다. 스마트폰은 그사이 꺼둔 덕인지 배터리가 한 칸 남아 있었지만, 요금을 못 내서 정지된 지 오래라 인터넷을 할 수도 없었다.
 
‘와이파이! 와이파이가 터지는 데로 가면 되잖아.’
 
남자는 스마트폰의 무선 인터넷 기능을 켜고 공원을 나와 주변을 돌아다녔다. 패스워드가 걸리지 않은 와이파이 신호를 잡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얼마간 다니다가 신호가 잡히는 지점을 찾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인터넷 브라우저를 실행하고 검색창에 ‘로또’라는 단어를 쳐 넣었다.

신호가 약해서인지 결과가 뜨는 게 늦었다. 아직 로딩 중인데 갑자기 스마트폰 화면이 어두워지면서 경고 메시지가 떴다. 배터리가 5퍼센트 남았으니 충전하라는 메시지였다. 이제 꺼지면 다시 충전할 장소를 찾으러 가기도 어려웠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잠시 후, 마침내 숫자가 적힌 로또 당첨볼 이미지가 나타났다. 화면이 어두워져서 잘 보이지 않았다. 남자가 숫자를 확인하려고 눈살을 찌푸리는데, 스마트폰이 꺼져버렸다.
 
“아악! 으아, 이런 씨발!”
 
남자는 발악하듯 소리치면서 스마트폰을 내던져버렸다. 미치고 팔짝 뛸 것만 같았다. 뭔가 손에 다 들어왔는데, 단단히 붙잡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가는 기분. 그때도 그랬다. 10만 원만 더, 30만 원만 더 때려 박으면 몇 배로 돌아올 것 같았다. 분명히 확실한 미래를 잡았다고 생각했건만 그 미래는 번번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갔다.
 
‘진정, 진정하자.’
 
경찰에 붙잡히는 사태는 무조건 피해야 했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강원랜드에 머무르던 5년 동안 남자의 인적이 말소된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그의 이름으로 된 연락처나 집 주소는 물론 가족도 없는 셈이었다.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신분증도 분실했는데, 다행히 운전면허증은 남아 있었다. 주민등록증은 지갑에 넣어뒀고 면허증은 스마트폰 케이스에 끼워둔 덕이었다. 앵벌이 시절 주차 대행을 할 때, 가끔 면허증을 보여 달라는 손님들이 있어서 그런 것이었다. 당첨금을 찾으려면 신분증이 반드시 필요했다.
 
‘이제 어떻게든 번호를 확인해야 하는데…….’
 

남자는 성질을 못 이기고 스마트폰을 던진 것을 후회했다. 스마트폰을 주워들고 보니, 액정이 완전히 깨져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인터넷으로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어디선가 충전을 해야 하는 까닭이었다.
 
‘편의점에 가서 급속충전을 할까? 아니, 그럴 바에는 로또를 파는 편의점을 찾아서 바로 당첨번호를 확인하는 게 낫지. 그런데 편의점에는 무조건 CCTV가 있잖아. 혹시나 내 행색이 이미 알려져서, 수상하게 여긴 점원이 신고하기라도 하면…….’
 

최악의 경우는 당첨금을 찾기도 전에 체포되는 사태였다. 하다못해 당첨금을 찾아 통장에 넣어둔 뒤에 잡히면, 출소한 뒤에 그 돈을 쓰면서 여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을 죽였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니까 사형 당하지는 않으리라. 30년? 20년? 초범이니까 운이 좋다면 10년을 선고받을지도 모른다. 당첨금으로 실력 좋은 변호사를 산다면 그보다 형기를 줄일 수도 있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남자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벌써 옥살이를 할 생각부터 하고 있다니... 아무리 돌이켜봐도 증거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안 잡힐 수도 있다. 번호를 확인한 다음에, 돈을 찾아서 강원랜드로 가 몇 배, 몇 십 배로 불릴 것이다. 1등 당첨금이 단 10억이라 해도 수 십 억으로 만들 수 있다. 정 불안하다면 그 돈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면 된다. 어차피 건사해야 할 가족도 없지 않은가.
 
‘그래, 일단 급선무는 당첨번호를 확인하는 거야. 만에 하나 미래가 바뀌어서 번호도 바뀌었다면,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자수하는 편이 낫다. 적어도 그 안에서는 공짜로 먹고 잘 수 있잖아.’
 
고심 끝에 마음을 정한 남자는, 우선 근처의 로또 판매점을 찾아보기로 했다. 어느새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공원에도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였다. 일요일이 됐으니까, 이번 주 당첨번호를 적어둔 판매점이 분명 어디엔가 있을 터였다. 남자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채찍질하면서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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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소개  
    명지대학교 문예 창작학과 졸업
    단행본 <문답 무용>, <파이널 에볼루션> 출간
    <도전!웹 소설 쓰기>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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