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노영범의 쏘울루션] ③양극성장애(조울증) “기분이 수시로 오르락 내리락 한다”

3년 전 그는 평생을 근무해 온 회사를 그만뒀다. 불명예스러운 퇴사에 마음의 상처가 컸고 지인들을 만날 용기도 없어졌다. 그에게는 세 명의 자녀가 있는데 셋 모두 학생이라 학비 부담도 컸다. 때로 억울함이 치솟아 처음에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자포자기 상태로 세월만 보냈다. 얼마 후 생활고가 점점 심해졌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과 압박에 몸을 추슬러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무얼 할지 몰라 이전 직장과 관련이 있는 가전제품 대리점을 개업했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평생 책상 앞에서 서류 업무를 해온 그에게 물건을 판매하고 배달하는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조급한 마음에 불만이 누적됐다. 무엇보다 까다로운 고객을 접하면서 화를 내는 일이 잦아졌다. 그래도 악착같이 버텨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에 몰입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곧 한계가 찾아왔다. 무언가에 집중을 하면 열이 달아오르면서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고 쉽게 흥분하게 됐다. 그러다 잠시 후 열이 사그라지면 급격히 몸이 처지고 기분이 우울해졌다. 마음은 답답하고 중심을 잡지 못한 채 자꾸 갈팡질팡하게 됐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잠시 앉아 있는 것도 힘들었고, 본인의 의지로 통제가 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라도 해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 어딘가에 집중하며 밤을 새우는 일이 많았다.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도 불안해하기 시작했다.“별 것도 아닌 일에 마음이 급해지고, 내일이 다가온다는 사실에 숨이 막혀요. 당장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앞날이 잘못될 것만 같고, 기분이 좋았다가 갑자기 우울해집니다.”

정서적 변화만 생긴 건 아니었다. 평생 해본 적 없는 노동을 하면서 땀을 많이 흘렸고, 때론 바빠 소변도 참아가며 일을 해야 했으며, 일을 많이 한 날은 다리가 뭉쳐 통증을 느꼈다. 잘 걸리지 않던 감기를 자주 앓게 됐고, 전보다 추위를 참는 게 힘들어 졌다. 기도가 무언가로 막힌 것처럼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기사 이미지

40대 후반의 이 남성을 그가 놓인 환경을 통해 분석해보자. 실직 후 찾아온 외부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이 남성은 매우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사소한 자극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앞서 걱정한다. 감정은 조그마한 자극에도 요동을 친다. 처음 회사를 떠날 때에는 막막한 현실에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 이겨내기 위해 새로운 일을 시작했지만 장사가 잘 되면 너무 흥분이 돼 기분이 들뜨고, 손님이 조금이라도 줄면 잘못될 것 같은 불길한 마음에 급격하게 우울해지는 상태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질병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삶 속에 은밀하게 숨어있다. 따라서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는 환자가 살아온 삶을 면밀히 추적해 단서를 찾아내고 거기서부터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가야 한다. 마치 탐정처럼 말이다. 환경 변화에 따른 육체적, 심리적 반응을 고대의 치유사들은 어떻게 기록했을까? 『상한론(傷寒論)』에 이런 내용이 있다.

“내 몸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에서 과한 활동과 넘치는 감정을 조절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땀이 나도록 움직이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하며, 마음이 조급하여 소변을 자주 보러 간다. 감정은 예민해져서 자주 분노와 짜증을 표출하며 몸은 한기에 민감해 져서 추위를 자주 느끼고, 과하게 많이 움직인 결과 다리가 자주 뭉치는 상태가 일상적으로 발생한다. 또한 무언가에 집중하고 몰입을 할 때 얼굴로 열이 달아오르고, 목 안이 건조하고 음식 냄새에도 민감해져서 거부감을 나타낸다. (傷寒, ?浮, 自汗出, 小便?, 心煩, 微?寒, 脚攣急, 反與圭支湯, 欲攻其表, 此誤也. 得之便厥, 咽中乾躁吐逆者, 作甘艸乾姜湯與之)”

조울증은 기분 장애의 대표적인 질환으로 기분이 들뜨거나 과민해지는 조증과 반대로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하거나 감정이 우둔해지는 우울증이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양극성장애’라고도 한다. 일이 순조롭게 풀릴 때에는 기분이 좋고 자신감에 고양되었다가도 이내 좋지 않은 상황이 올 것이라 믿고 초조해진다. 또 일이 어려워지거나 문제가 발생하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감정이 흔들린다.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일에 몰입하거나 쾌락에 빠지기도 한다.

여기서 보이는 심리적 반응의 핵심은 무엇일까? 바로 ‘과민성’이다. 이러한 심리적 바탕에는 타인의 칭찬과 인정을 얻기 위함이 놓여있다. 불안한 상황에 직면하면 집중적으로 몰입해서 이를 극복하려고 애태우고, 안정적인 상황에서도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애를 쓴다. 그러므로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 걱정과 염려로 인해 변덕이 심하고, 주위 사람의 말에 잘 흔들린다. 감수성이 풍부하게도 보일 수 있고,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의 기복이 나타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에게 왜 이러한 ‘과민함’이 자리하게 되었을까? 그의 과거로 돌아가 보자. 초등학교 시절 그의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어린 나이었지만 엄마와 동생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슬픔도 참고 지냈다. 그러나 3년 후 엄마가 재혼을 하게 됐고, 이후 그는 조부모 손에서 자랐다. 부모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서러움은 유년기와 사춘기에 그를 지배했다. 마음은 늘 불안했다. 사람은 한 순간에 불행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버텼고, 다행히 대학을 무사히 마쳤으며 사회로 진출했다. 직장을 다녔고 가정도 꾸렸지만 어린 시절 마음을 짓눌렸던 무거운 불안함은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직장을 관두면서 그의 무의식 속에 내재돼 있던 불안감이 한꺼번에 몰려온 것이다.
기사 이미지

치료를 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기분의 ‘업 앤 다운’을 자주 경험하는 사람 역시 과민함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항상심’이다. 주변 환경의 변화에 좌지우지 되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에 주의를 집중해야 한다. 내 자신이 아니라 타인 혹은 주변 환경에 주의가 과도하게 쏠려 있으면 자신의 삶은 공허해진다. 삶 속에서 환경 변화는 언제 어디서든 다양하게 올 수 밖에 없다. 작은 바람에도 크게 일렁이는 파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 깊숙이 흔들림 없는 고요함을 유지해야 한다. 인도의 철학가 마하리쉬는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끊임없이 외부로 향하면 허상이다. 반대로 마음을 굳건히 하여 내면을 지킬 때 본연의 참 자아를 찾을 수 있다.”

그렇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거짓된 생각, 허상을 제거하는 것이 마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다. 참 자아를 둘러싼 허상들은 삶을 버텨내기 위해 만들어 낸 상상의 산물이다.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공포를 느끼고 조급해하는 등의 감정들은 살아오면서 겪었던 수많은 경험들이 머리에 저장되면서 지금의 일과 무관한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면서 시작된다. 자아를 둘러싼 허상을 자신의 참모습으로 착각하면서 삶을 불행으로 끌고 간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불행했던 과거의 기억들을 털어내야 한다. 그 다음으로 ‘10초 여유’를 권하고 싶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빨리 빨리 하려는 조급함에서 벗어나 한 템포 늦추는 행동을 해야 한다. 쉬운 말로 ‘워워’ 하라는 뜻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몰려올 때면 ‘패스! 패스!’라고 마음 속으로 외쳐라. ‘그래!  이 또한 거짓이고 지나갈 거야’라고 반복해서 되뇌어라.        

불행했던 유년시절의 어두운 그림자도, 직장을 그만두며 받은 상처도, 새로 시작하는 사업에 대한 불안함과 실패하면 안 된다는 압박감도 결국 본인이 만들어낸 거짓 자아다. 그는 스스로 이를 인식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허상을 과감히 걷어내는 작업을 통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훈련을 반복했다. 결국 인생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고,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찾게 됐다.

-----------------------------------------------------------------------------------------
 
기사 이미지
[노영범의 쏘울루션]은 현대인이 겪는 여러 마음의 질환을 다루고, 고대 의학서인『상한론(傷寒論)』을 통해 해결 방법을 찾아본다. 총 10회에 걸쳐 연재될 예정이다. 저자인 노영범 한의사는 30년 노영범 부천한의원 대표원장으로 활동하면서 공황장애, 우울증, 주의력 결핍 등 신경정신질환 전문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한의계를 움직이는 파워엘리트 21인’으로 선정된 바 있고, 2007년부터는 한국소비자보호원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