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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 당선작 - ‘비정형(informe)’의 상상력-함기석·정재학·황병승 시의 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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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강일구]

1. 고유성으로 복귀해 가는 비정형의 사유

근대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인간의 생활양식은 점차 합목적적 근대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재편성되어 왔다. 통제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합리적 제도와 질서, 과학적 사고, 표준화와 계량화에 의한 대량생산 시스템 등을 다른 말로 수의 법칙성에 의한 정형화(定型化)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정형화는 인간의 본성을 그 틀 속에 귀속시키려 하는 일종의 폭력이기도 하다. 1990년대 한국 문단에서 대두한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해체라는 말들은 직접 정형의 메커니즘을 공격하는 방향을 취해 왔다. 내가 발견하고자 했던 것은 소모적인 저항을 넘어서는 2000년대 시의 ‘성취’라 할 수 있다. 요컨대 함기석·정재학·황병승 시에 보이는 고뇌와 절망, 새로운 존재의 발굴 가능성 등이 그것이다. 나는 그들이 보인 고유한 상상력의 지평을 조르주 바타유(Georges Bataille, 1897~1962)의 회화 용어인 ‘비정형(informe/formless)’의 개념과 조우시키고자 한다.

바타유는 비정형을 “세상의 사물을 저급하게 끌어내리는(déclasser) 역할을 하는 용어”로 정의한다. 근대의 이성적 합리주의는 인간 내면의 야생적 본성, 세계의 배설적 측면, 자연의 폭력성 등 사물의 추(醜)를 배제함으로써 아카데믹한 인간이 ‘만족’할 만한 세계를 만들어 낸다. 반대로 사물의 형태를 연기나 침과 같은 것으로 변형함으로써 정돈된 형상으로 귀결될 수 없는 불쾌하고 추한 ‘형용사’적 특성을 다시 존재의 본질로 되돌려 놓는 것이 비정형의 임무다. 바타유는 사물 자체를 이성적 위계질서로 보는 다른 ‘유물론자’들과 자신을 구분 짓고 자신의 사상을 ‘저급유물론(base matérialisme)’이라 명명한다. 비정형은 사물을 순수감각적 원형(原形)으로 되돌려 놓는 저급유물론의 핵심 개념이다. 이 글은 ‘비정형’을 통해 정형성을 공격하는 함기석·정재학 ·황병승 등 2000년대 저급유물론적 시의 상상 기저를 추적하고자 한다.

2. 기호의 도식성과 투쟁하는 추(醜)

1990년대 한국 시에 정형성의 대척점에 놓인 그로테스크와 추(醜)가 대대적으로 나타난 이후 이러한 경향은 이성중심적인 사유를 해체하고 공격하는 전위적 표현방식이 되었다. 1990년대 말 그로테스크와 추에 의한 해체 전략은 간혹 비정형의 사유와 결합하게 되는데, 이 분절의 지점을 점유한 것이 함기석의 상상력이라 판단된다. 그는 형용모순과 감각 불가능한 상태의 재현을 통해 억압적 ‘정형성’에 대한 공격적 인식을 보여줌과 동시에 인간의 고정된 정체성을 문제적인 것으로 만든다.


인간들은 날 직선 혹은 밑줄이라고 불러

난 바지 입은 여자로 불리고 싶은데 말야

날 한참 노려보더니

연관공이 말했어. 저건 검은 도화선이야요

형사가 말했어. 피살자의 머리카락이 틀림없습네다

바로 그때





내 위에 눈금을 긋고는

양팔을 휘두르며 1 2 3 중얼거리며 뛰어갔어

그때서야 목수가 장갑을 보며 말했어

거봐요 줄자라니까요

시‘


가 하루는’ 부분

함기석에게 인간의 사회화 과정은 인간 존재를 해석 가능한 기호(sign)로 바꾸어 부르는 것과 같다. “바지 입은 여자”로 불리길 꿈꾸는 여성의 욕망은 그녀가 ‘직선’과 ‘밑줄’이라는 기호로 전환되면서 좌초된다. ‘피살자’로 발견되는 여자는 검은 도화선, 사건의 단서, 줄자 등 이미 인간으로서의 생명력을 잃어 버린 사물로 이해된다. 회복해야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배제된 것’, 즉 개인의 고유성이다. 함기석의 기본 전제는 인간이란 본래 규정될 수 없는 자유로운 존재라는 것이다. 수학적 등식화를 총괄하는 대타자를 뭉개진 곡선의 형상으로 그려낸 점이 이 사실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유령처럼 생긴 곡선의 형상은 파악 불가능한 훈육권력의 속성을 암시한다. 함기석은 기호의 도식이 지닌 폭력성을 드러내고자 한다. ‘사라진 소녀’ ‘하얀 새’ ‘창문’ 등 여러 시에서 인간의 고통과 세계의 표현될 수 없는 ‘여분’을 늘어진 창자, 시체 등 훼손된 육체성을 통해서 보여 준다. 그의 시는 인간이 가진 비정형적 잠재 요인을 드러내기 위해 추와의 결합을 기꺼이 허용한다. 그럼에도 그의 ‘비정형’의 상상력은 주로 정형의 세계를 해체하고 비판하는 데 묶여 있는 듯하다.

3. 감금된 게니우스의 고통

조르주 아감벤(Giorgio Agamben, 1942~ )은 도덕과 질서의 규율에 따르는 주체화 과정에서 ‘표현되어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을 게니우스(Genius)라고 부른다. 정재학의 비정형적 상상력은 바로 제도 장치에 억압되어 있던 게니우스를 발굴하고자 한다. 그의 시에 억압 장치로 등장하는 건 바로 ‘나’를 규율하는 시선이다. 정재학의 ‘나’는 타인의 시선에 발견되지 않는다. 그들 눈앞에 있는 나의 모습은 진정한 의미의 나가 아니라 “당신의 시선”(‘사진에 담긴 편지’)일 뿐이다. ‘낡은 서랍 속에서 1’의 ‘나’를 가두는 것은 타인의 색칠이며, ‘모피 입은 비너스’의 규정된 ‘나’는 “노예, 메신저, 허상”에 불과하다. 이들 시의 화자인 ‘나’는 비어 있으며 왜곡되어 있으며 수동화되어 있다. 그러한 상호 이해에 대한 회의감은 종종 기형적인 눈의 이미지로 반복된다.

사회적 주체로서의 ‘나’가 아닌 진정한 나의 존재가 타인에게 발견되지 못한다는 절망으로부터 정재학의 비정형의 상상이 시작된다. 정재학은 시 ‘세 개의 시계’에서 탈주하고자 하지만 계속 돌아오게 되는 자폐적 ‘방’을 형상화한다. 또한 시 ‘야간약국 가는 길’에서 인간을 한 꺼풀의 ‘비닐’, 한 겹의 ‘종이 헝겊 얼굴’이라는 두께로 표현한다. 그의 해체된 형상들은 정형으로서의 사회적 자아를 부정한다. 그로부터 그는 절대 언어화되지 않는 인간의 육체성과 정체성을 끄집어 낸다. 휘발될 것 같은 자아의 얇은 피부는 그가 도시적 질서 안에서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생존의 두께다. 그 배설물적 형상을 감싸고 있는 불안의 정서는 실존적 감각을 연다. 이는 규율 사회 안에서 소외감을 내장한 도시인의 실존과 맞닿아 있다. 정재학의 시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기괴함’은 타자의 시선과 자기 육체 사이에 박락된 실존적 절규를 내포한다. 그 절규는 형상화될 수 없는 게니우스로서의 ‘나’를 표현하는 것이다.

4. 저급유물론적 타자의 탄생

황병승의 낯선 문법을 이해하려면 그것이 바로 21세기의 도시라는 현대사회의 ‘대지’로부터 자라난 것임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환영과도 같은 네온사인과 영상들, 파편화된 육체성이 그의 감각의 뿌리를 이룬다. 그의 언어에는 난해성에도 불구하고 관념이 삭제되어 있다. 그가 실험하는 비정형의 상상력은 도시 내부에서 발견한 ‘바깥’이며, 진정한 의미의 타자성이다.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나의 항문이 도무지 혐오스럽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입술을 뜯어버리고

아껴줘요, 하며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 봐요

부끄러워요 저처럼 부끄러운 동물을

호주머니 속에 서랍 깊숙이

당신도 잔뜩 가지고 있지요

‘커밍아웃’ 부분


황병승은 자기 시의 주요한 테마로 거듭 ‘동성애’를 다룬다. 중요한 것은 그가 동성애를 다루는 이상으로 신체의 상부와 하부, 인간성과 동물성의 관계를 역전시키는 데 주력한다는 점이다. 이 시는 인간을 바라보는 기획된 시선에서 벗어나기를 시도하며, 우리 자신에게서 배제된 추악이 외부(外部)가 아니라 이미 “서랍 깊숙이/ 당신도 잔뜩 가지고” 있는 본성임을 드러낸다. 황병승이 ‘커밍아웃’시키고자 하는 건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동성애의 욕망 이상의 타자성이다. 그는 ‘입술’을 뜯어낸 위치에서 항문으로 ‘배설하듯’ 대화하며 ‘당신’을 알아 간다. 성(sexuality)과 짐승적 감각을 횡단하여 황병승은 타자를 향해 간다. 시 ‘시코쿠’의 “당신만 죽어 없어진다면 나도 내 자리로 간다!”고 절규하는 대목 역시 타자를 향해 가는 정체성의 운동을 보여 준다. 이러한 성 정체성의 횡단은 인간의 정체성이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운동일 때에만 가능하다. 황병승은 순간순간 정체성이 변화하는 사건 속에서 타인과 관계 맺음이라는 문제를 추적하고 있다. 성이란 결국 타자와 ‘알맞게’ 대화하는 방식을 찾고자 하는 자세 바꿈이다. 타자와의 내밀한 접촉을 예비하는 황병승의 언어는 항상 에로틱하다.

5. 21세기 존재론

2000년대 들어 부각되는 비정형의 상상력은 현대사회의 정형성과 그에 깃든 획일적인 사유를 넘어서 새로운 생성과 발견을 이루려 하는 징후라 할 수 있다. 함기석은 기호로부터, 정재학은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황병승은 성도덕으로부터 억압된 인간의 본질을 고민함과 동시에 이러한 억압을 벗어난 존재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자 한다. 함기석은 교실, 사전과 같은 훈육 장치와 도구를 인간 욕망의 자유로운 실현을 방해하는 기획 사회의 일환으로 파악하고 그것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데 주력한다. 정재학은 타인의 시선으로 발견될 수 없는 정체성의 여분, 즉 게니우스를 보여 주고자 한다. 그는 공허와 불안에 사로잡힌 현대 도시인의 실존적 형상을 비정형의 이미지로 재현한다. 황병승은 도덕적 규율 혹은 성 정체성을 벗어난 인간의 무한히 가변적인 내적 욕망을 그려 낸다. 아울러 그는 ‘나’의 욕망 실현이 독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대면을 통해서만이 가능한 것임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도 모두는 ‘정형’의 억압으로 배제된, 더 나아가 추악한 것으로 선언된 인간 욕망을 구원하고자 한다. 2000년대의 시는 새로운 사유로 나아가는 토대이면서 동시에 절망의 토대이다. 이때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지고 싶다. 인간은 어느 정도까지 인간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박동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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