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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의 과학 오디세이] 과학기술혁신 모델, 선형(linear)에서 삼중나선(triple helix)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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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한국과총 차기 회장

2017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연구개발(R&D) 비중은 작년보다 1.8% 늘어났다. 국회 심의가 남아 있긴 하나, 국가 총 예산안 규모(400.7조원)의 4.8%(19.4조원)다. 절대 규모로도 미국·일본·중국·독일·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다. 지난 10년간 두 배 가까이 늘어, 중국 다음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민간부문 30대 그룹의 R&D 투자(31.8조원)는 작년보다 0.3% 증가해(전국경제인연합회) 2010년 이후의 두 자릿수 증가율이 주춤하고 있다.

네이처와 OECD가 본 한국의 R&D

최근 네이처(Nature)지는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세계 1위(2014년 기준 4.29%)”라면서 정부의 R&D 투자 의지를 높게 평가했다. 아울러 “노벨상 수상자를 아직 내지 못했다”는 ‘불편한 진실’도 언급했다. 이어서 “투자 규모 대비 논문 수가 적어 스페인(R&D 투자 비중 1.22%)과 비슷하다, R&D 투자의 3/4이 대기업 주도로 응용에 치우쳐 있다, 특허 출원은 많아도 기초과학 발전과는 거리가 있다, 정부의 투자도 반도체, 통신 등 응용 분야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알파고 대결 직후 정부가 인공지능에 2020년까지 1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것을 두고 “한국은 아직도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방식을 버리지 못했다”면서, 단일 사례만을 보고 인공지능이 미래라며 즉각 시류에 편승하는 식의 정책 마인드의 한계로 보았다. 세계적인 압축성장의 성공모델을 견인한 한국인의 그런 기상이 이제는 버려야 할 유산임을 일깨우는 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제조업 수출에서 서비스 콘텐츠와 서비스 혁신 비중을 늘려라, 글로벌 가치사슬 확보를 위한 경쟁력을 높여라, 원천 연구 투자를 키워라, 산학연 협력과 국내외 과학·혁신 네트워크 연계를 촘촘히 하라, 중소기업 혁신공정에 첨단기술을 도입하라”에 덧붙여 기술혁신으로 인한 사회 변동에서의 격차(divide) 해소도 도전과제로 꼽았다(2015년 OECD 과학·기술·산업평가서).

프라이스(D. Price), R&D 생산성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

과학정보계량학(scientometrics)의 대부라 불리는 프라이스(Derek J. de Solla Price, 1922-83, 물리학자·과학사학자)는 과학의 지수적 성장과 과학 논문의 반감기 연구 등을 통해 국가의 연구개발 생산성이 그 나라의 흥망을 좌우한다고 설파했다. 그는 과학 논문 저자의 25%가 발표 논문 전체의 70%를 차지한다는 프라이스의 법칙(Price's Law 1963년)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또 연구자들의 생산성을 논문의 수로 가늠하는 것이 꼭 바람직한 기준은 아니지만, 세계 각국의 과학 프로그램을 비교하는 데는 유용한 접근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제조업 신화가 저물고 있다.

이런 기조의 진단은 사실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얘기를 거듭한 게 수십 년이다. 2000년대 들어 정부는 R&D 관리 정책을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바꾼다고 선언했고, 역할 분담에서 정부는 원천·핵심 기술, 민간은 응용·개발을 주도한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현장의 체감도는 아직도 낮다. R&D 기획과 과제 선정·평가 등의 프로세스 관리, 공공 R&D의 사업화 등은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2015년 서울대 공대 교수 26명 인터뷰로 한국 산업의 미래를 진단한 '축적의 시간'(이정동 교수, 산업공학)의 출간을 계기로 나온 조선일보-서울대 공대 공동기획 시리즈(‘made in Korea’ 신화가 저문다, 2016년 4월, 7월) 보도가 진단한 위기 의식은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원천기술의 알맹이가 빠진 양산 기술로 조선·전자·자동차 등 '20년 제조업 신화'가 무너지면서 제조업 공동화가 우려된다. 부품·소재 분야의 수십 년 간 열세로 중국은 물론 동남아 국가들의 추격을 받고 있다. 세계 시장의 수출 1위 품목 5052개 중 한국은 64개이고, 중국은 1610개로 1위다. 대기업 주도의 부품·장비 중소기업의 수직계열화가 기술 기반 벤처형 동력 창출에 걸림돌이다. 기업은 5~10년짜리 로드맵도 없이 당장 돈 되는 사업만 찾고, 산업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신기술도 못 알아본다. 어려울 때 R&D부터 줄여 호황기가 와도 신기술이 없어 고전한다. 단기 성과주의 만연으로 CEO와 기관장에게 미래형 투자는 설 자리가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5년 단위로 '신성장동력'이 바뀌고 있어 글로벌 경쟁력의 기술 축적이 안 된다. 세제와 금융 혜택만 보고 신성장 동력 사업에 뛰어든 기업은 손해 보기 일쑤다. 시류 따라 정권 따라 정책과제가 중단되거나 급조돼 노하우 축적이 미흡하다. R&D 예산과 정책을 총괄한다고 컨트롤타워를 만들었다 없앴다 했지만 부처 간 장벽을 허물지 못했다. 공직사회 순환보직으로 R&D 정책의 전문성과 일관성이 떨어진다.

정부 R&D 과제 기획·선정·평가가 전문성·공정성 미흡으로 부실을 초래한다. 1년마다 단기 실적 중심의 평가 시스템으로 장기적인 독창적 모험 연구는 설 자리가 없다. 연구책임자는 과제를 따는 데, 연구원들은 예산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데 시간을 바치고 있다. 우수 두뇌 유출이 늘고 있어 30대 박사후 연구원 확보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다. 전국에 25개 출연연, 64개 정부 출연연 분원(2015년 6492억원 지원, 9개소는 건설 중), R&D 특구 5개구, 지자체와 정부 지정의 클러스터(산학연 복합단지) 100여개(미래창조과학부) 등이 산재해 있으나 특구·클러스터·산업단지의 성격 구분도 모호하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곳이 여럿이다.

정부 부처의 산하 R&D 과제 기획·평가 컨설팅 기관의 기능에 대한 논란으로 2015년 통폐합이 추진됐으나 부처 반발로 무산됐다(한국연구재단·정보통신산업진흥원(미래부), 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너지기술평가원(산업부),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중기청), 보건산업진흥원(복지부), 환경산업기술원(환경부), 콘텐츠진흥원(문화부) 등; 인력 4800명, 기관 운영비 연간 3800억원). 최근 민간 컨설팅 업체로의 하도급이 늘어나며 R&D 예산이 새고 있다(연간 1000억원 추정).

정부 R&D 과제의 성공률이 너무 높다는 사실은 어떻게 보아야 하나. 예컨대 2015년 7000억원 투입의 정부 원천기술 개발 과제 성공률은 96%(한국연구재단)다. A 등급(52.4%)이 가장 많고, 124개 과제 중 D 등급은 단 한 건이다. 기초연구과제(5000억원 투입 650개)도 C와 D 등급은 극소수다(3.7%). 그런데 정작 기업이 사가거나 사업화에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벤처 생태계 보완을 위한 관 주도의 직접 벤처 투자 정책은 일부 진흥 효과에도 불구하고 정부 자금 운용의 펀드 매니저처럼 운영되고 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베끼기 등으로 건전한 창업 생태계 조성에 애로를 겪는다. 한 해 19조원을 투입하는 정부 R&D의 성과 중 특허의 70%가 이른바 '장롱 특허'로 사업화 성공률이 매우 낮다(한국 20%, 일본 54%, 미국 70%, 영국 71%).

정부 과제의 연구자 선정에 문제가 있다. 기획 전문가의 '셀프 과제'가 선정되고 있어, 2015년 산업통상자원부의 신규 과제(272개) 중 45%(122개)는 분야 선정 위촉 자문위원과 과제 관리 전문가에게 돌아갔고(국회예산정책처), 이들(122개) 중 34%(42개)가 경쟁률이 1대1이었다. 민간 연구 컨설팅 기업이 하도급을 맡아 외양만 그럴듯한 R&D 보고서를 대필해 연구비를 받아가는 일이 생기고 있다. 연구비 관리 시스템은 날로 복잡해져서(2013년) 2만 명의 출연연 연구자들이 잠재적 범죄자 취급을 받는다고 불만이다.

특허 양산에는 성공, 그러나 사업화는 매우 부진

최근 특허 출원이 크게 증가한 것은 일견 진보로 보인다. 하지만 양적인 증가가 무색하게도 사업화가 매우 부진하다. 정부 출연연 보유 특허 중 '장롱 특허'가 72%로 계속 늘고 있다(2013년 66%, 2015년 72%). 2012~2014년 사이 국공립 연구소와 출연연의 국내외 출원 특허(2만7029건) 중 기술료를 벌어들인 특허(4182건)는 15% 정도다(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2010년 이후 출연연이 포기한 특허 수(1만5400건)는 같은 기간 출원한 특허(2만9864건)의 51%다. 해외에 출원한 특허도 형편이 비슷하다. 2014년 산업통상자원부 R&D 사업으로 미국에 출원된 특허(125건) 가운데 한 번도 민간에서 이용되지 않은 특허가 68%다(국회예산정책처). 정부의 R&D 평가 시스템이 '특허 등록'의 양적 개념에 묶여 연구비 낭비를 야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4차 산업혁명 관련 기술 특허를 비교한 결과, 지난 20년간 4대 분야 18개 기술의 특허 출원 비중은 미국(53%), 일본(20%), 한국(17%), 유럽(10%) 순이었다. 그러나 질적 수준과 시장 확보 능력에서는 한국이 크게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한국지식재산전략원). 스마트홈, 웨어러블 기기 등 IT 특허에서 경쟁력이 있는 반면 뇌과학, 유전체연구 등 생명공학 특허 비중은 1% 이하로 사각지대였다. 기술혁명의 격변기를 틈타 이른바 특허사냥꾼(NPE, Non-Practicing Entity)들이 특허 매입으로 소송과 라이선싱에 나서면서 핵심 기술 중심으로 소송 남발 등 특허전쟁이 치열하다.

기술 기반 창업의 ‘죽음의 계곡’

생명공학 분야 특허가 가장 뒤지는 이유를 보자. 최근 노벨상 유력 후보 분야라는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교정(Genome Editing) 기술을 둘러싼 에피소드가 좋은 사례다. 유전자교정 기술 관련 생명윤리법 등 한국의 규제가 강해서 걸림돌이다. 적어도 기초연구에 대해서는 국제적 수준으로 규제를 합리화할 필요가 있다. 출연연에서 연구한 성과의 출원 특허에 대해 벤처기업으로의 실시권 양도도 그렇고, 벤처 기업의 코스닥 상장도 여의치 않다. 원천 특허를 가출원한 경우에도 거래소는 코스닥 상장을 불허한다. 바로 똑 같은 분야에서 미국의 경쟁사는 특허 등록도 하기 전에 나스닥에 상장돼 시총 1조원을 기록하고 있다.

연구개발의 성과가 사업화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기술 기반 벤처 창업은 구호에 그친다. 연간 창업 19만 건 가운데 요식업 등 생계형 1, 2차 산업의 창업 비중이 70% 이상이다. 한국은 비상장 벤처기업에도 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를 적용하고 있어 창업을 저해하고 있다. 재무 지표 중심의 기업 가치 평가로 인해 벤처 기업의 상장(IPO)도 어렵다. 관련 심사위원조차도 왜 탈락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니, 코스닥 본연의 기능이 상실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특허 소송이 급증하는 가운데 패소율이 70%에 달해 한국특허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전반적으로 OECD 평균 대비 규제의 질이 떨어지고 양적으로는 많다. 그로 인한 ‘죽음의 계곡’을 헤어나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CTO들의 전망은...

주요 제조업 기업의 최고기술책임자(Chief Technology Officer CTO)들도 산업 경쟁력의 현재와 미래를 어둡게 보았다(조선일보·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공동, 2016년). CTO들은 산업 경쟁력 하락의 주요 원인으로 중국의 추격, 혁신 역량 부족, 정부의 역할을 들었다. 산업 생태계 혁신 역량 강화를 위한 대책으로는 중소·중견기업의 R&D 역량 강화(29%), 정부의 기술혁신 청사진(17%), 산학연 연구 시스템 개혁(17%), 공대 교육의 혁신(13%)을 꼽았다. 이공계 교육에 대해서는 '과거에 비해 이공계 출신 연구자들의 역량이 떨어진다(54%)'고 답했다('예전보다 낫다’는 19%). 그리고 대기업 기준 스펙에 맞춘 인력이 아니라 열정과 문제 해결 의식을 갖춘 인재를 배출하는 대학 교육의 틀과 사회적 분위기의 혁신을 희망했다.

기초연구 관점에서 본 과학기술혁신의 진단

지난번 조선일보 기획취재 보도가 정부 주도의 대형 사업 실태를 제조업을 비롯한 산업기술 중심으로 파헤친 것이라고 한다면, 기초연구 관점에서는 어떻게 분석할 수 있을까. 우리 정부 R&D 투자는 과학기술기본계획에 근거한다. 현행 제3차(2013년~2017년) 계획에는 선도형 R&D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해 창의적 기초연구를 진흥해야 한다면서 중점 추진과제로 중장기 안정적 기초연구 투자 확대를 꼽고 있다. 기조는 이렇게 짜였는데, 실제 추진 내용은 어떤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OECD 자료(2015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R&D 지출에서 기초연구 비중은 20%다. 그러나 대부분의 OECD 국가에서 대학이 기초연구를 담당(50%-75%)하는 것과는 달리 한국은 대학이 20%, 기업이 60%를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GDP 대비 기초연구비는 세계 1위나, 대학 연구 지원 비중은 매우 낮아(9%), OECD 국가 중 최하위인 러시아 바로 다음이다. 2008년 11%에서 오히려 하락했다. 대학 사회가 연구비 확보에 갈증을 느끼는 이유다. 기업 R&D에 대한 정부의 직접 지원 비중은 6%, 세제 혜택은 8%로서, GDP 대비 정부 지원에서 한국이 OECD 국가 중 최고다. 하지만 기업 R&D가 해외로부터 받는 재정 지원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미국의 연방정부 R&D 지원은 국방 분야가 50%고, 기업체와의 계약에 의한 개발이 주류를 이룬다. 따라서 국방 분야를 제외한 R&D 지원을 살피면, 45%(300억 달러)가 기초연구에 투입되는 양상이다.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 국립과학재단)는 기초와 응용 비율이 각각 83%와 17%다. 연방정부 R&D 재정의 23%를 지원받는 NIH(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국립보건연구원)는 기초와 응용의 비율이 52%와 48%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직접 연구에 사용한 비용만 R&D 지원으로 산정해서, 2016년 NSF 총 예산은 74억 달러지만 R&D 비용은 58억 달러였다.

우리나라 대학 기초연구의 지원

정부 R&D 예산 항목을 기능별, 기술 분야별로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대학 연구비는 기초연구 지원과 국립대학 일반운영 지원비를 포함한다. 따라서 실제로 연구자가 쓰는 기초연구 예산은 기술 분야별 항목에서 기초과학으로 구분된 7.9%로 좁혀진다. 그 이외의 기술 분야는 지정공모 형태로 지원되는 국책사업이다. 게다가 부처마다 국책연구, 기획연구 위주로 지원하고 있어 기초연구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 현장에서 느끼는 애로사항이다.

연구책임자의 일인당 연구비 평균은 4.4억원(미래부, KISTEP, 2015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보고서’)이다. 대학의 전임교수 연구비는 6920만원이다(한국연구재단, 2015 ‘대학연구활동실태조사분석보고서’), 대학의 과제 수혜율은 이공계 59%, 인문계 44%다. 정부 R&D 예산 기초연구비 2.5조원 가운데 bottom-up 방식의 자유공모과제 연구비는 1조원이다. 그런데 각 부처 주도의 기획사업이 목적기초과제로 분류돼 있는 탓에 기초연구 지원으로 통계가 잡히고 있다. 정부 기획사업 중 기초연구로 구분된 사업도 거의 Top-down 방식의 지정 공모형이라 대학교수가 사업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연구비 배분에서도 소형보다는 대형과제에 치우쳐 있다. 1억 미만의 연구과제 수는 54.8%나 지원액으로는 7%다. 반면 10억 이상 규모의 연구과제 수는 5.9%로 총 예산의 60.9%(2016년 18.9조원 중 11.5조원)를 차지한다. 따라서 과제당 평균 연구비는 3.5억원이지만, 10억원 이상의 대형과제를 제외하면 평균 1.4억원이 된다. 10억원 이상짜리 대형과제의 평균 연구비는 36억원이다. 이들 대형과제 연구의 성가는 어떻게 나오고 있는지도 관심사다.

정부 R&D 예산의 증액에도 불구하고 대학 연구자들이 갈증을 느끼는 데에는 역사적 배경도 있다. 70년대부터 한국의 지원 정책은 정부 출연연 설립에 의한 사업화 임무지향형 R&D 위주였다. 그런 상황에서 박사인력의 80% 이상이 대학에 몰려 있었다. 예컨대 92년 과학기술 인력 분포는 대학교수 1만5천여명, 출연연 3천여명, 기업연구소 1천여명 수준이었다. 2010년대 자료에 의하면 박사인력의 총 분포에서 41%가 대학교수와 강사로 돼 있다(한국직업능력개발원, ‘국내박사인력의 양성과 활용실태’). 또한 짚어야 할 것은 전반적으로 189개 대학의 난립과 재정 부실이 R&D 부실화를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대학에서의 과학 연구의 시작 : 19세기 독일의 대학 개혁

역사 속에서 대학의 기능과 역할의 변천은 오늘날에도 의미가 깊다. 기초연구의 토양은 창의성, 자율성, 다양성이다. 그리고 교육과 연구를 통해 그런 자질을 갖춘 학문의 후속세대를 키워내는 일이 중요하고, 대학이 맡은 핵심적 기능이다. 과학사상 전문 과학교육이 제도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말 프랑스의 종합기술학교(Ecole Polytechnique 1795년 설립)의 과학·수학 교육에서였다. 이런 시스템은 12세기 라틴 유럽에서 설립되기 시작한 대학(Universitas)이 교양학부(Liberal Arts)와 신학·의학·법학 학부로 구성된 전문 학부 체제를 벗어나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3학(trivium; grammar, logic, rhetoric)과 4학(quadrivium; arithmetic, geometry, music, astronomy)으로 짜여 있었던 중세 대학의 교양과정부가 일대 변신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 대학이 현대의 연구중심 대학의 원형으로 본격적으로 진화한 것은 19세기 초 독일 대학 개혁에서였다. 독일로부터 조직적인 과학 연구와 더불어 과학-산업이 연결되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 세계로 퍼져나간 것이다. 당시 개혁 초기의 자연과학은 ‘사회적 요구와는 유리된 반실용주의적인 성향’을 추구했고, 인문학은 ‘외부로부터의 간섭을 배제하는 학문의 절대적 자유’를 추구했다. 이런 경향이 바로 상아탑(Ivory Tower)이라는 대학의 이미지를 낳았다. 그러나 ‘학문 그 자체로서의 목적’을 강조하는 학문이념(Wissenschaft Ideologie)은 젊은 과학자들의 반발에 부딪쳤고, 보다 엄밀하고 분석적인 프랑스 과학의 성격을 수용하는 쪽으로 옮겨간다.

독일 대학의 자연과학 수업은 세미나 형태였고, 실험연구에 의해 정밀과학의 우월성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실험과학은 ‘과학 이론의 실용성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지식을 획득하는 우월한 방법’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다. 독일의 대학 개혁은 국가적 혁신 의지와 대학 내의 관념적 철학 전통의 결합 등 사회문화적 요인의 복합적 산물이었다. 그리하여 19세기 중반 경 독일 대학의 과학자는 ‘교육을 맡은 교수인 동시에 유능한 연구자’로 자리매김하고 ‘과학 연구를 통한 교육’이란 현대적 개념이 나타난다.

독일 정부는 해외에 나가있던 과학자들을 적극 유치하고, 왕립물리학·기술연구소 설립으로 도량형 기준을 마련하는 등 산업 기반을 닦는다. 그리하여 대학의 과학자들은 산업체의 자문과 위탁연구를 수행하게 되고, 기업 부설연구소 설립에 의해 산학연 협력도 본격화된다. 독일 대학은 과학 연구의 메카로서 유럽과 미국의 대학 개혁에 모델이었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학생들은 독일 등 유럽으로 유학해 학위를 땄고, 도량형 표준 때문에 독일로 수송해 인가를 받을 정도였다.

기초 연구와 응용 연구 지원을 둘러싼 갈등: 미국 MIT 사례

20세기 초반 현대 산업사회를 탄생시킨 미국에서 기초와 응용 연구 지원의 우선성을 둘러싼 논란은 가장 두드러진 이슈였다. MIT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흥미롭다. 당초 MIT(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 1861년 설립, 1865년 개교)는 하버드 대학이 19세기 중반까지 과학기술 분야 교육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자 로저스(W. B. Rogers)가 보스턴의 유지들과 함께 설립한 산업과학대학(School of Industrial Science)이었다. 남북전쟁으로 개교가 좀 지연됐고, 학교명이 별로 인기가 없어 테크놀로지를 넣은 MIT로 개명한다. 1890년대는 독일로의 미국 유학생이 가장 많던 시기였고, 1888년 루이스(W. K. Lewis)의 주도로 MIT 화학공학과가 설치된다.

이 때 학내에서는 기초연구 지향의 연구중심대학으로 개혁하려는 노이즈(A. A. Noyes) 측과 전통적인 응용과학과 산업기술을 중시하는 워커(W. H. Walker) 측이 첨예하게 대립한다. 노이즈는 학부 교과과정에 열역학 등 물리학 이론을 포함시키는 기초연구 교육이 학생들에게 문제 해결의 방법론과 원리를 터득케 함으로써 산업적 문제풀이에도 창조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워커는 독일 산업의 초고속 발전은 산업계와 대학 간의 유기적 관계의 산물로서 응용과학과 공학 발전이 결정적으로 기여했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그는 응용화학 연구로 산업 생산성을 높이는 데 우선 목표를 두고 화학과 내에 화학공학 프로그램을 신설하고(1905년) 응용화학실험연구소를 설치한다.

이 두 진영의 갈등은 개인 차원이 아니었다. 따라서 그 역학 관계에 의해 MIT의 진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양측의 대립에서 일단 승리를 거둔 것은 워커 쪽으로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승리를 거둔 워커는 “진리는 공공 이익에 기여해야 한다. 그리고 순수과학과 응용과학이라는 용어 사이의 차이가 급격히 소멸되고 있다”고 말한다(1911년). 마치 과학기술혁신의 기초-응용-기술개발의 선형 주기 모델이 오늘날의 삼중나선 모델로 변화될 것임을 예언이라도 하듯이.

MIT 기술 프로그램(Technology Program)을 계기로 기초연구 강화로 반전

1916년 MIT가 보스턴으로부터 찰스 강을 건너 케임브리지로 이전할 무렵 대기업의 지원은 대단했다. 이 해 노이즈는 기초과학 연구의 활성화 시책을 강력 건의하다가 결국 1919년 교수직을 사임하고 만다. MIT는 산학협력 프로그램으로 기술 프로그램(Technology Program)을 시행하며 대기업의 파격적인 지원을 얻어낸다. 그러나 연구과제 선정에서의 기업의 간섭과 타율적인 규제 등으로 MIT를 산업에 종속된 자문기관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에 몰려 역풍을 맞는다. 1923년 신임 총장 스트라톤(S. W. Stratton)은 기초과학과 응용과학의 균형을 취하는 조치를 시행한다. 후임 콤프턴 총장(K. T. Compton, 1930-48 역임)도 기초과학 분야 교수를 늘리고 기초 실험 시설을 대폭 확충한다.

Caltech(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의 출범과 미국 과학계의 3인방

다른 대학도 산학 협력이 학풍의 대세였다. 서부 캘리포니아에서는 목재업 재벌 플레밍(A. Fleming)의 재정 지원으로 헤일(G. E. Hale)이 드룹 칼리지(Throop College) 개편에 나서, ‘화학을 비롯한 과학 분야를 산업에 응용하도록 활성화시킨다’는 목표로 일대 대학개혁을 단행한다. 그것이 1920년에 학교명을 바꾼 Caltech(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의 출범이다. 이 때 MIT로부터 워커와 맞서며 물러났던 노이즈, 그리고 시카고 대학으로부터 밀리칸(R. A. Millikan)이 합류한다.

이들 3인방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과학계의 구심점이 된다. 그리고 이들이 은퇴할 즈음 등장한 신진 세력이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 시대를 주도하게 되는 콤프턴(A. H. Compton 1927년 노벨물리학상, MIT 총장 K. Compton 동생), 부시(V. Bush, MIT 총장), 코난트(J. B. Conant, 하버드대 총장) 등이다. 부시는 OSRD(Office of Scientific Research and Development) 국장(Director)으로서 1945년에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종전 후 미국의 과학연구 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한 보고서 ‘Science, The Endless Frontier’(‘A report to the President on a Program for Postwar Scientific Research’)를 작성한 역사적인 인물이 된다.

20세기 초반 현대산업사회의 출현 과정에서 대학과 산업계의 관계는 인력 양성을 놓고 갈등도 있었으나, 곧 정리된다. MIT에서 물리학과 전기공학 강사를 지내다 1925년 벨 전화회사의 회장으로 부임한 주이트(F. F. Jewett)는 “산업연구는 인력을 소모하는(man-consuming) 반면, 대학 연구는 인력을 생산하는(man-producing) 활동이므로 잘 훈련된 전문 인력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는 대학이야말로 산업계의 증대일로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안”이라고 했다. 대학은 ‘대학들을 재생산할 수 있는 고유 기능’ 때문에 다른 어떤 형태의 기관도 흉내낼 수 없는 조직이므로 산업계는 “그들이 빚지고 있는 대학을 장기적 안목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마땅하다”며, 기업이 인력 양성과 기초연구에 필요한 ‘생산의 2차 비용’을 대학에 지불하는 양상으로 산학 관계가 맺어진다. 산학연 간의 긴밀한 관계는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더욱 공고해진다.

두뇌 유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최근 네이처의 평가에서 가장 아픈 부분은 한국의 연구개발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는 대목이다. “2008∼2011년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인 과학자 중 70%가 그대로 미국에 남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미국 국립과학재단 NSF). 국내 조사 결과도 비슷하다. 2013년 기준 해외 체류 이공계 박사(8931명)는 이런 조사를 처음 시작한 2006년(5396명)에 비해 66% 증가했다. 국내에서 일하는 이공계 박사(9만7000명)도 40% 정도가 기회만 되면 해외로 나가겠다고 한다(과학기술정책연구원).

R&D 투자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늘렸는데, 연구 인력은 해외에서 돌아오지 않으려 하고 오히려 국내에서는 떠나려 한다. 출연연 등 연구소에서는 학생과 임시직 연구원들에게 연구를 맡기는 일이 생기고 있다. 이런 식으로 악화된다면 대학의 기초연구 인력이 갈 곳을 잃고 대학교육의 수준 저하와 국가 연구역량의 퇴보를 우려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새로운 프론티어를 개척해야 하는 시점에서 마지막 보루인 R&D 인력의 공동화는 막아야 한다.

외국에서도 과학기술 인력의 일자리 지원은 심각한 정책과제다. 유럽과학재단(ESF)의 2015년 조사 결과에서도 이공계 박사 인력의 절반 정도가 직업 불만족을 나타냈다. 자신도 과학자 출신인 독일 메르켈 총리는 10억 유로를 투입해서 젊은 과학자들에게 종신 교수직을 제공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7-32년 사이 임용 후 6년까지 지원하고 종신직을 얻은 경우 지원을 2년 더 연장한다는 것이 골자다.

국가혁신체제(National Innovation System NIS) 최적 모델이 있는가?

과학기술 연구개발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국가혁신체제(National Innovation System NIS)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80년대에 등장한 NIS의 개념은 시기에 따라 달라지고 구성 요소도 다양하다. 아이디어로부터 시작해서 연구개발과 생산품의 시장 진입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의 핵심요소들 사이의 계통을 NIS라고 한다면, 자본 유동성, 노동시장 유연성, 정부 역할, ICT, 민간부문 개발 인프라, 지적재산권, 과학기술인력, 마케팅 기법, 창의성 중시의 문화적 토양 등 9개 항목을 핵심요소로 꼽을 수 있다(Global Trends 2025: A Transformed World, National Intelligence Council).

그간의 관련 문헌자료를 리뷰한 최신 연구(2016년 The Fletcher School, Tufts 대학)에 의하면 어느 나라에나 잘 들어맞는 보편적인 레시피는 없다는 결론이다. 그도 그럴 것이 NIS 자체가 그 나라의 고유의 사회문화적 전통의 산물이고, 그 나라의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규범이 제도와 기관의 형성은 물론 혁신의 우선순위와 성과를 가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NIS는 국가의 혁신 목표의 궤적, 기술적 성향과 역량 등에 의해 결정되므로 선진국에서 성공했다고 해서 다른 나라에서도 잘 들어맞는 최선의 실행(best practice) 모델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미국 NIS의 특징은 무엇인가. 미국은 연방정부가 국방(연방정부 예산의 50%)과 공중보건(public health) 분야에 대한 전략적 지원에 집중하고, 주정부는 제각기 중소기업과 연구개발을 지원하는 분산형 NIS가 전통적이다. 그러면서도 관련 주체들 사이에 강한 연계가 이루어진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전통적 NIS 방식이 첨단 분야에 대한 연방정부 지원 부재로 미래지향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고, 이에 반응하여 2009년 오바마 정부는 최초로 연방정부 차원의 국가혁신 전략을 발표한다. 2015년에는 아메리카 이니셔티브의 최신판으로 9개 신성장산업을 선정한다. 여기에 든 것이 정밀의학, BRAIN 이니셔티브, 신기술 제조업, 신기술 자동차, 스마트시티, 청정에너지, 에듀테크, 우주, 컴퓨팅 분야이다. 하지만 의회의 예산 확보에 애로를 겪고 있어 장기적 전망은 확실치 않다는 전망이다.

과학기술혁신 모델, 선형에서 삼중나선으로 진화하다.

전통적으로 과학기술혁신 주기(cycle)는 기초연구-응용-기술개발 단계로 구분된다. 대학은 주로 기초연구를 맡는 것으로 역할 분담이 되고 있었다.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은 선진국의 벤치마킹에 의해 단기적 역주기 경로를 밟은 것이 특징이다. 그 한계는 예고되고 있었고, 순주기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러는 사이 특정분야를 지칭하는 기초과학(basic science) 대신 각 분야의 기초연구(basic research)를 강조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더 근본적으로 기초-응용-기술개발 간의 단계가 단축되고 구분이 불명확해지고 있었다.

그런 변화가 탄생시킨 융합 개념이 삼중나선(Triple Helix, H. Etzkowitz 1993) 모델이다. 과학기술 주체인 대학-산업계-정부가 삼중나선 구조로 얽혀 일체가 되었다는 뜻이다. 기존의 NIS에서는 산학연 협동이 강조됐으나, 과학기술 3개 혁신 주체의 역할과 기능이 복합된 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이 모델은 교육과 우수 연구의 강력한 기반, 민관 투자, 관련 주체간의 혁신 파트너십과 연계를 전제로 하고 있다.

삼중나선 모델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과학기술혁신 주체를 잇는 지원 기관과 제도의 시너지 효과, 공통의 목표와 혁신 생태계 조성, 새로운 교육과 연구의 협력과 연계를 가능케 하는 혁신 정책이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조정 역할이 중요하다. 정부가 미래 지향적인 비전과 조망으로 정책과 규제에서 연구개발 주체를 조정하고 연계할 수 있어야 NIS가 바로 작동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혁신 주체(innovation actor) 간의 신뢰가 R&D 인프라의 핵심가치인데, 높은 수준의 신뢰와 강력한 연대를 가능케 하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법적 기반 구축과 대학의 TTO(Technology Transfer Office) 설립

1980년 미 의회는 입법(University & Small Business Patent Procedure Act, 일명 Bayh-Dole Act)에 의해 대학이 연방정부 예산으로 개발한 혁신성과를 라이선스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연방정부 연구실에서나 또는 협동연구로 개발한 성과에 대해서도 똑같이 허용했다(Stevenson-Wydler Technology Innovation Act 1980년). 이전에는 연구자들이 연방정부에 지식재산권을 이전하도록 해서 상용화가 번거로웠으나 간소화 조치로 기업 투자 활성화를 이끌어냈다. 이들 법안은 당초 대학이 기초연구를 소홀히 하고 응용으로 치우친다는 우려를 낳았으나, 결과는 오히려 미국 대학의 기초연구 생산성을 높이게 된다.

법적 기반 마련과 함께 선진국 대학은 이미 90년대부터 기술이전 지원을 위한 TTO(Technology Transfer Office)를 설립, 지식재산권 보호와 특허 출원에 의한 사업화 역량을 키웠다. 최근 인력의 전문성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미국 연방정부는 NIS에서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목표를 융합하기 위해 America COMPETES Acts(2007, 2010)를 제정, 대학의 기초연구와 과학교육 지원을 강화했다. 주 정부 차원에서는 NSF의 EPSCoR(Experimental Program to Stimulate Competitive Research)를 통해 과학과 공학 교육 지원을 강화했다(2016년 The Fletcher School, Tufts 대학 보고서).

한국의 TLO(Technology Licensing Office)

한국의 기술이전?사업화의 근거 법률은 ‘기술의 이전 및 사업화 촉진에 관한 법률」로서 대학과 출연연 연구자가 각 기관의 TLO(Technology Licensing Office)를 통해 기술이전이나 창업을 할 수 있게 돼 있다. 단 정부 지원을 받은 원천 기술의 이전이나 그것을 이용한 창업의 경우는 기술료를 납입해야 한다.

이러한 장치는 마련됐으나 대학의 TLO인 산학협력단의 전문성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선진국 대학의 산학협력단은 변리사, 기술사, 컨설턴트가 전문성을 확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행정적인 처리 보조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또한 산학협력단에 전문 교수를 둔다 해도 정부 과제 수주 담당으로 본래의 취지와 다르게 운용이 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정부 지원을 받은 연구자가 그 원천 기술로 창업할 수 있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현장 취재에서는 제도가 미비해서 원활히 진행되지 못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공계 대학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가.

오늘날 한국의 4년제 대학 189개에 재학하는 150만명 중 공대생이 25%(38만명), 자연대생이 12%(18만5000명)다. 그런데 한 해 졸업생 50만명 중 30만명이 공무원 채용 시험에 매달린다고 한다. 일본은 대학 재학생 260만명 중 공학 15%, 이학이 3%이므로 우리 이공계 재학생 비율의 절반이다. 4차 산업혁명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새로운 교육 비전에 의한 인재 양성이다. WEF(World Economic Forum, 세계경제포럼)는 ‘교육의 새로운 비전(New Vision for Education)’을 발표하고, ‘인재야말로 21세기 혁신, 경쟁력, 성장을 이끄는 핵심 요소’라 강조한다. 그리고 교육에서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안으로 새로운 에듀테크(Educational Technology)의 활용을 강조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을 위한 링크(LINC Leaders in Industry-college Cooperation) 사업, 창업선도대학 등 대학 혁신 프로그램 추진, 연구기관의 연구원 창업과 연구소 기업 활성화, 우량 기업의 수요 발굴과 청년 인재 매칭의 ‘취업’ 활성화, 청년 창업활성화, 중소기업청의 TIPS(민간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등 동시다발적으로 다수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시적인 교육 행정이 아니라 내실 있게 운영되기를 기대한다. 과학기술 인력 수급 예측은 들어맞았던 적이 없다. 제4차 산업혁명의 격동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 아울러 정부의 공대 육성계획이 인력 수급의 불균형을 초래할 가능성도 검토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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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핀란드 알토 대학교의 ‘실행을 통한 학습’

우리나라와도 교류가 활발한 핀란드의 알토(Aalto-yliopisto)대학교의 예를 들어보자. 2008년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던 노키아의 몰락은 곧 핀란드 경제의 위기였다. 노키아가 GDP의 절반, 국가 총 법인세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핀란드 정부는 이런 위기를 맞아 2010년 기업의 혁신 생태계 구축을 위해 핀란드의 산업, 경제, 문화를 선도하던 기존의 세 개의 대학(헬싱키 기술 대학교, 헬싱키 경제대학교, 헬싱키 미술 디자인 대학교)을 합병해 알토대로 출범시킨다. 그리고 ‘실행을 통한 학습’(learning by doing)을 슬로건으로 창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융합 시스템을 실현한다.

알토대의 툴라 테에리 총장은 합병 이후 줄곧 총장을 맡고 있는 분자유전학 전공의 여성과학자다. 지난 3월 세계연구중심대학 총장 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그와 좌담회를 가졌다.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라고 물으니, ‘젊은이들에게 물어보세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특히 “대학은 연구개발의 결과인 기술과 지식을 기업에 이전한다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대학의 과학자와 기업이 서로 배우며 지식을 공동 창출(co-creation)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기관과 연구기관, 산업계의 경계를 허물어 산학연 공동체가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미국 조지아테크의 TI:GER® 프로그램

미국 대학에서의 최신 모델로 TI:GER®(Technological Innovation: Generating Economic Results) 프로그램이 관심을 끈다. 그 취지는 연구 성과의 상업화에서 장애요인은 기술적 요소보다 법적 이슈와 시장·대중과의 관계라 보고, 그 극복을 위한 학제적 접근을 하고 있다. 강의과목으로 리더십, 혁신,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글로벌 기업에 대한 내용은 물론 비즈니스 윤리가 포함된 것이 흥미롭다.

TI:GER® 프로그램은 두 명의 MBA와 두 명의 법대 학생이 한 명의 박사과정 학생의 연구 상업화를 임무로 강의실과 실험실 과정에 참여한다. 조지아테크(Georgia Tech)의 과학, 공학, 컴퓨터 전공 학생들이 신청해서 초기 연구단계부터 실무적으로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실전 훈련을 받는다. 멘토로서 법률 전문가와 기업 CEO의 수준 높은 자문도 받고, 조지아테크의 비즈니스 인큐베이터(ATDC) 산하 스타트업 회사들과 자문 프로젝트도 수행한다. NSF 등 수많은 기관과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것도 강점이다.

캐나다 워털루 대학교의 Co-op 모델

캐나다 토론토 근교의 워털루대(The University of Waterloo)는 대학 과정에서 기업 현장 체험을 하는 세계 최대의 Co-op 모델로 유명하다. 재학 때 전공에 상관없이 기업 현장에서 체험을 쌓도록 하는데, 2년까지 가능하다. CECA(Co-operative Education & Career Action)에 의해 전 과정을 관리하는데, 엔지니어링 분야는 16개월 이상의 기업 현장 체험을 거쳐 졸업하도록 돼 있다. 당연히 취업 경쟁력에서 강세라서 6300개 기관과 연계돼 있다. 캐나다 전국에 100개 이상 대학으로 전파됐고, EU 국가들과도 협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를 모델로 설립된 대학이 있었으나 다른 과학기술대처럼 획일화됐다.

한국의 과학기술 50년 이후는

우리 과학기술 50년은 참으로 자랑스러웠다. 1953년 국민총생산(GDP) 13억 달러에서 60년 만에 꼭 1천 배로 뛰는 데 과학기술력이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다. 2015년 한국 GDP는 세계 11위, 세계은행 분류상 고소득 국가, 국제통화기금(IMF) 분류상 선진 경제국가다. 한국 특유의 추격형(catch-up) 전략이 주효했고, 그런 추격형 발전의 엔진이 바로 과학기술이었다. 산업기술 개발 중심의 국가연구개발 사업, 주력 산업과 수출 품목에 대한 선택과 집중으로 선진 과학기술 문명 추격에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미션을 결정해 놓고 속전속결로 달려가는 추격형 발전 방식은 한계에 도달했다. 미지의 프론티어 개척의 환경에서는 불확실성과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선도형 마인드셋과 전략이 필수다. 과학기술의 본질로 돌아가 경제 추격을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원천적 탐구와 개척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그에 걸맞은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이중트랙(two track) 전략으로 승부

그렇다고 해서 기존 방식과 시스템을 단기간에 전면 변환할 수는 없다. 추격형 체계가 지닌 강점을 굳이 폐기할 필요도 없다. 답은 간단하다. 투 트랙(two track) 전략이다. 기존의 시스템을 살려가되, 선도형 R&D를 추동할 새로운 트랙을 설계하는 것이다. 새로운 트랙에는 창의성, 도전성, 원초성, 자율성, 개방성 중심의 R&D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 이 트랙에서는 시행착오나 도전 과정에서의 실패를 자연스럽게 학습의 기회로 활용하는 연구 생태계와 문화의 터를 잡아야 한다.

그동안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상위 총괄조정 기구의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조직도 만들어봤고, 규제 권력의 분산과 이동으로 매니지먼트 합리화도 시도했고,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과학기술 행정체제 개편까지 해 왔다. “부가가치가 크고 강점이 있는 성장동력을 발굴해 5~10년 후 경쟁력과 역동성을 높인다, 과학기술혁신본부의 총괄 조정으로 사업별 주관과 협조 부처별 역할을 분담, 범부처적으로 사업을 추진한다, 정부는 기초 기반 기술 개발과 인력 양성을 지원하고, 실용화 기술 개발과 시장 창출은 민간이 담당한다.” 이 문구는 2005년 당시 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신과학기술행정체제 운영 1년의 성과”의 요점이다. 공문서상에 나타난 대로라면 우리는 지금 모든 게 다 잘 풀려 심심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수십 년이 지나도 확 달라지지 않는가. 컨센서스가 형성되지 못하고 실행력이 못 미치기 때문이다. 어영부영하는 사이 제4차 산업혁명이 쓰나미처럼 닥칠 것이라 한다. 그러니 다시 핵심 산업 동향, 일자리 창출, 교육 등 새로운 전략 논의가 사방에서 봇물을 이루고 있다. 정작 그동안 쌓인 적폐는 밀어놓고 신세계 전략으로 연착륙할 수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과학기술계는 정부 R&D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보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수동적 방관자가 아니라 R&D 예산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목표와 방향을 잡는 실행자(actor)가 돼야 한다. 예산을 늘리는 것만으로 과학기술 선진국이 될 수 없음은 깨달았고, 복지 수요의 급증으로 R&D 예산이 증액될 가능성도 크지 않다. 더욱이 R&D 매니지먼트 합리화를 위한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내년부터 R&D 서식 간소화라니 반가운 소식, 그러나 갈 길은 멀다.

갈 길은 아직 멀다. 최근의 개선 조치 가운데 R&D 서식 간소화가 눈에 띈다. 그동안 정부 부처마다 R&D 서식이 달라 행정 낭비가 크다는 하소연이 많았다. 부처 간에 R&D 정보도 공유되지 않아 연구자는 매번 똑같은 서류를 내거나 중복 입력하던 것을 ‘R&D 정보 공유 시스템’ 구축으로 해결한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작업(‘국가연구개발사업의 관리 등에 관한 규칙’ 개정)해서, 공동관리 규정, 시행규칙과 각 부처 훈령 등을 개정한 뒤 연구수행 단계별 7종 서식으로 간소화한다고 한다. 기초연구 서식에서는 사업화 가능성, 기술화 계획, 경제성 분석 등이 삭제된다. 이런 표준 서식이 내년 상반기부터 시행된다니, 연구자들이 더러 시간을 벌게 됐다. 그러나 이 정도로 우리 과학기술의 창조성과 도전성을 살릴 수는 없을 터,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감사의 선진화는...

과학기술계가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감사원의 지적을 받는 사건이 생긴다. 연간 연구개발 과제 수 5만4천여 건(2015년 54,433개 과제) 중 0.4% 정도라고 한다. 아마도 유형별, 성격별로 지적 받는 사업의 빈도도 파악됐을 것이다. 소수의 일탈을 기준으로 갖가지 규정을 강화하고 추가 행정규제로 묶는 것은 연구현장에서 보면 R&D 효율성을 낮추는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감사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과학기술 활동의 성격과 방식이 크게 바뀐 상황에서 시대적, 기술적 변화를 반영해 감사 기법도 첨단기술 활용으로 선진화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R&D 지원 차원에서 간소하면서도 효율적인 감사 체계로 발전시키는 배려가 절실하다.

거버넌스 시대, 정부 위원회 기능은...

우선 현행 위원회 시스템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은 없을까. 정부는 법률과 대통령령에 근거해 설치된 것만도 554개 행정기관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2016년 6월 기준). 대통령·국무총리·중앙행정기관에 설치된 행정위원회가 36개(816명), 자문위원회가 518개(11,036명)로 총 11,852명의 각 분야 전문가를 망라한 방대한 조직이다. 물론 정부 R&D 예산을 집행하는 10개 부처와 9개 처·청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 위원회는 10여 년 전부터 거버넌스(Governance)가 강조되면서 정부와 시민사회가 함께 정책 결정과 추진에 참여한다는 명분 아래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설치했다. 신정부 출범 때마다 줄인다고 하다가 구두선에 그치곤 했다. 과학기술 정책도 소수 공무원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가 없다 보니 각종 위원회와 TF 메커니즘을 갖추고 있다. 그렇다면 전문가 그룹이 의사결정에서 본연의 역할을 하고 책임도 함께 진다는 자세로 일하는 것이 관건이다. 정부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 책무가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삼중나선 모델의 혁신주체가 된다면 선도형 R&D의 제2 트랙 진입은 실현될 것이다.

R&D 프로세스 관리의 투명성 강화로....

미국의 과제 평가 시스템은 동료 평가(peer review)에서 공적인 판단을 개진하도록 운영되고 있다 하니, 벤치마킹할 만하다. 보수도 안 받는다는 이 작업에 참여하는 것이 명예로 여겨지는 풍토가 돋보인다. 이참에 실질적인 국제 교류 방안으로 해외 우수 한인과학자의 DB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필자는 1999년 환경부에서 일하게 되면서 ‘정책 실명제’의 도입을 시도했던 적이 있다. 기술 개발은 됐는데 시장 진입을 하지 못하는 등 환경기술 사업 추진의 한계를 목격하고, 공무원이 정직한 판단에 의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시도로 끝나고 말았다.

이 시점에서 해볼 만한 실행방안은 무엇일까. R&D 기획과 과제 선정·평가, 특허, R&D 사업화 등등의 총체적 프로세스 관리의 투명성을 강화한다면 일정 부분 효과가 있을 것이다. 각 부처의 해당 위원회 활동에 대한 정보를 DB화해서 업무 관계자들이 공유토록 해서, 정책실명제 비슷한 효과를 거둘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하향식(top down)으로 정책의 큰 틀을 바꾸려는 시도보다는 상향식(bottom up)으로 구체적인 현안의 해결사가 되는 접근이 필요한 때다. 물론 현장 상황의 세심한 모니터링과 피드백 체계가 동시에 작동돼야 한다. 과학기술혁신 관련 위원회 활동의 투명성과 실효성을 높여 거버넌스 엔진을 만들고 정책 추진에 대한 국민 신뢰를 높이는 방안을 널리 수렴할 것을 제안한다.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
한국과총 차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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