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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나는 살해당했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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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하면서 생각해봤는데…….”
 
도화가 수건 한 장만 몸에 걸친 채 욕실에서 나왔다. 물기도 대충 닦아서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망자라지만 그래도 엄연히 남자 앞인데 전혀 부끄럽지도 않는 모양이다.
도화는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내 생각을 읽었는지 비릿하게 웃어보였다.
 
“세상에 부끄러울 일도 많다. 망자 주제에 뭘 어쩐다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그렇다고 성을 낼 수도 없었다. 도화와 말을 섞으면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든다.
 
“됐고요, 아저씨. 갑자기 궁금해졌는데 말이야.”

 
도화가 화장대 앞에 털썩 앉더니 서랍에서 담배를 꺼냈다.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도발적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정말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 내 말은 죽을 당시 일은 그렇다 쳐도 이름이나 그런 것들도 전혀 기억이 안 나냔 말이야. 당신, 나한테 이름도 말하지 않았잖아.”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내 이름은 강형수다. 그러고 보니 도화가 지적하지 않았다면 이름조차 떠올리지 못했을 거다. 나는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도화가 피식 웃었다.
 
“강형수. 남자다운 이름이네. 혹시 사주도 기억해?”
 
사주? 생년월일을 말하는 건가.
 
“태어난 시도.”
 

도화가 덧붙이고는 어느 틈에 불을 댕겼는지 담배 연기를 내게 훅 내뿜었다.
사주는 예전에 연애하던 시절에 궁합을 보고 싶다는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어머니에게 물었던 적이 있어서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뜬금없이 사주라니. 대체 뭘 알고 싶어서 이러는 걸까.
 
“알아, 몰라? 알면 읊어봐.”
 
도화가 채근했다.
나는 주저하다가 사주를 알려주었다.
 
“서른두 살이었어? 나이가 좀 있었네? 어디 보자.”
 
도화가 손가락으로 뭔가를 꼽기 시작했다. 나로선 이쪽으로 문외한이라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도화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서 차마 물어보지도 못하고 잠시 기다려보기로 했다.
 
“재미있네, 당신.”
 
도화가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뭐가 재미있다는 거야?
 
“샤워하면서 생각해봤거든. 아까도 말했지만 최 상사, 그 영감 말이야. 입도 험하고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긴 하지만 아직 노망이 들만큼 정신이 흐린 인간은 아니거든. 엄한 망자를 잡겠다고 난리 브루스를 치진 않는단 이야기야. 그래서 갑자기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졌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무슨 까닭에선지 도화의 얘기를 듣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감점이 격앙되었다.
 
“당신, 생전에 좋은 사람이었어? 아님 개차반이었어?”
 
순간 나는 멈칫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아니, 그보다도 이상하게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나는 좋은 사람이었나?
갑자기 당당하게 대답할 자신이 없어졌다.
 
“내가 처음에도 말했었지. 망자라는 건, 그 사람의 일부만 남는 거야. 이승에 남고 싶은 강렬한 미련. 감정 덩어리. 잉여에너지. 말하자면 온전하게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었던 일부만이 남는 거라고.”

 
혼란스럽다. 도화가 하고 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처음으로 내 자신을 의심하게 되었다. 만약 내가 나란 존재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거라면, 도화가 말한 것처럼 진짜 나쁜 인간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치도록 갑갑해졌다. 나는 정말 어떤 인간이었을까?
 
“당신 말이야. 어쩌면 본인이 죽어 마땅한 새끼였을지도 모른단 생각은 안 해봤어? 칼에 찔려서 벼랑에 버려진다는 거, 흔한 일은 아니잖아. 보통 억울한 일을 당한 망자는 말이야. 오로지 한 가지 감정만으로 채워져서 굉장히 단순하거든? 근데 당신은 안 그렇단 말이지. 그게 내 흥미를 끄는 부분이기도 하고.”
 
나로서는 알아듣기 힘든 아리송한 장광설이 이어졌다.
 
“갑자기 접신해서 공수를 해보고 싶은 충동이 드네.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도화가 일어서서 방 안을 서성였다.
 
“그래, 그럴지도 몰라. 그러면 말이 또 되긴 하네.”
 
이제는 혼잣말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이따금 키득거리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내가 궁금해 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봐, 혼자서 그러지 말고 내게 말을 해줘야할 거 아냐. 대체 지금 뭐하는 거야.
 
참다못해 따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도화가 정색한 얼굴로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사인을 보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다가 도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잠자코 있었다.
 
“당신, 거기 얌전히 있어.”
 
도화가 낮게 속삭이듯 말하더니 가운을 두르고 나서 화장대 옆에 세워둔 신칼 한 자루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발소리를 죽이며 현관으로 걸어갔다. 도화가 잠자코 있으라고 했지만 호기심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결국 경고를 무시하고 조용히 도화를 뒤따라갔다.
도화가 흘끗 돌아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호기심이 당신을 집어삼킬 수도 있어. 그 문, 그게 마지노선이야. 절대 그 선을 넘으려고 하지 마. 난, 경고했어.”
 
그렇게 내뱉고는 천천히 현관문을 열었다.
기분 탓일까. 복도에서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지만 도화의 머리칼이 흩날리는 걸 보면 단순한 기분 탓은 아닌 거 같다. 묘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어쩐지 노린내가 나더라니.”
 
앞장서서 복도로 나간 도화가 칼등으로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입가에는 누군가를 조롱하는 듯한 야비한 웃음이 걸려있다.
 
“이보세요, 영감님. 이런 야심한 시각에 아가씨 혼자 사는 집에는 웬일로 찾아오셨대. 아주 주책이셔.”
 
영감님이라고?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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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로 떠올리고 싶지 않은 무시무시한 인물이 생각났다. 도화의 경고도 있었고 별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호기심이 두려움보다 강했다.
 
나는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어 복도를 내다봤다.
빌어먹을. 예상이 맞았다.
그 영감이다. 그 무시무시한 개들을 데리고 있던 최 상사라는 ‘사냥꾼’이 복도 끝에 서서 흉흉한 안광을 내뿜고 있었다. 당연히 그 커다란 개도 함께였다. 누런 눈빛을 뿌리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놈이 나를 발견하고 짧고 굵게 짖었다.
 
“멍청아! 나오지 말라고 했잖아.”
 
도화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최 상사도 나직하게 읊조리듯 자신의 개에게 명령을 내렸다.
 
“잡아.”
 
아까와 마찬가지로 개가 나를 향해 쏜살같이 달려왔다. 도망쳐야하는데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움쩍도 하지 않았다.
 
“하여간에 피곤한 망자야. 당신, 나중에 이야기 좀 해.”
 

도화가 혀를 차더니 겁도 없이 달려드는 맹견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디서 잡것 따위가 감히 남의 신당에 발을 들여! 썩 꺼지지 못해!”
 
도화가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고함소리는 평소 도화의 목소리가 아니라 굵직한 남자의 것이었다.
매서운 기세로 달려들던 개가 마치 보이지 않는 장벽에 막힌 것처럼 더는 다가오지 못하고 낑낑거리며 몸을 사렸다.
나는 깜짝 놀라 도화를 쳐다봤다. 무엇일까. 장대한 체구의 거한이 희미하지만 도화와 겹쳐보였다.
 
“발칙한 계집애야. 네년이 왜 나서는 거야!”
 
최 상사가 성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거야 내 마음이고, 영감은 왜 남의 업장에서 이 소란을 벌이는 거야? 그 나이를 먹도록 상도도 몰라?”
 
도화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이번에는 본래의 목소리다. 그래도 여전히 거구의 남자가 겹쳐보였다.
 
“흥. 네년도 만신 소리를 듣고 싶으면 사리분별은 할 줄 알아야지. 저, 잡귀에서 나는 썩은 내를 못 맡는단 말이냐? 저런 버러지 같은 잡귀는 성불도 못하게 잡아 족쳐야해. 그건 네년이 더 잘 알지 않냐. 뭣 때문에 저 따위 상문을 감싸고 도는 게냐.”

 
노인네가 기운도 좋았다. 쇠꼬챙이처럼 비쩍 마른 체구인데도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내가 뭘 하든 영감이 뭔 상관이래.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인사동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잘 알잖아. 영감, 블랙리스트인 거. 그쪽의 괴물들, 그렇게 관대하지 않잖아. 안 그래도 구실만 생기길 바라고 있을걸?”
 
“이년! 신 내림도 못 받은 반쪽짜리가 어디서 훈계질이야. 건방이 아주 하늘을 찌르는구나. 네년 신어미를 봐서라도 적당히 넘어가려고 했는데 아주 기고만장이야. 꼭 따끔한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냐.”

 
“웃기고 있네.”
 
영감도, 도화도 그렇고 두 사람 모두 물러서지 않고 팽팽하게 맞섰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개인주의가 만연한 시대라지만 복도에서 이렇게까지 소란을 피우는데 아무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안 들려.”
 
도화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나는 무슨 의미인지 몰라서 도화를 쳐다봤다.
 
“이 건물 사람들, 우리가 떠드는 소리를 못 듣는다고. 저 영감탱이가 이미 손을 썼어. 결계(結界)를 쳐놔서 여기에서 전쟁을 벌여도 사람들은 모를 거야.”
 

결계? 그건 또 뭐지.
 
“참 궁금한 것도 많아. 지금은 그것까지 설명할 틈이 없거든. 빨리 안으로 들어가. 괜히 걸리적거리지 말고.”
 
그때였다.
 
“지금이다, 파군(破軍)!”
 
노인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뭔가 섬뜩한 기분이 들어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언제부터 있었던 걸까. 현실에서는 존재할 리 없는 푸르른 털을 지닌 커다란 개가 아가리를 벌리며 내게 날아들었다. 너무 순식간이어서 미처 피할 틈이 없었다. 꼼짝 없이 당하는가 싶어 나는 절망감에 몸을 떨었다.
 
“멍청이!”
 
도화가 일갈하며 신칼을 휘둘렀다.
깽! 푸른 개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다. 도화가 휘두른 칼에 맞은 것 같은데 피는 흘리지 않았다.
 
“영감, 정말 해보자는 거야? 여긴 내 신당인데, 진짜로? 내 홈그라운드에서 겁도 없이 설치겠다는 거지?”
 
도화가 최 상사를 사납게 노려보며 잇새로 내뱉었다.
최 상사는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나와 도화를 번갈아 응시했다. 그 침묵이 나를 더욱 두렵게 만들었다.
 
“녹존(祿存), 문곡(文曲), 염정(廉貞), 무곡(武曲).”
 
네 마리의 커다란 흉견이 새로이 나타났다. 녹색 털, 하얀 털, 갈색 털, 호랑이 무늬까지, 털 색깔도 제각각이었다. 거기에 아까 나를 괴롭혔던 검은 개와 붉은 개도 등장했다. 방금 나를 물려고 했던 푸른 개와 애초에 노인에 데리고 온 개까지 모두 여덟 마리였다.
 
나는 겁에 질려 도화를 쳐다봤다. 혼자서 이 무시무시한 개들을 어떻게 감당하려는 걸까. 하지만 무슨 자신감인지 도화는 시종 웃음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눈치였다.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걸까.
 
“재미있네? 진짜로 해보자는 거지, 지금.”
 
도화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눈빛은 웃고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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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창작그룹 <화담>대표.    
소설가,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등
 
주요 출간작 >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카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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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웅진 시작), 한국 환상문학단편선(웅진) 기획 및 작품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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