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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수오지심 사용설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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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
논설위원

유난했던 더위 말고도 또 다른 이유의 불쾌지수가 유난히 높았던 올여름이다. 이른바 ‘공복사주(公僕私主)’ 탓인데, 폭염보다 오히려 뭇 백성을 열불 나게 만들었다. 팍팍한 살림살이의 민초들이, 가진 에어컨도 못 틀고 지쳐 갈 때 국가의 종들은 뒷구멍으로 배를 불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종들을 감독할 책임을 지닌 ‘대표종’은 ‘녹조라테’ 강물 속 물고기처럼 ‘헬조선’을 절규하는 젊음들을 오히려 어리석다 꾸짖었다. 주인 된 입장에서 어찌 핏대가 오르지 않고 뚜껑이 열리지 않을 수 있겠나(‘공복사주’란 국가의 종인 공직자들이 사사로이 주인 행세를 한다는 뜻인데, 필자가 만든 말이니 애써 사전을 찾는 수고는 하지 마시라).

모든 종이 다 그 모양은 아닌 건 분명하다. 누런 땀방울로 등줄기를 적시며 묵묵히 뒷마당을 쓸고 있는 종들이 대부분일 터다. 하지만 국민이 맡긴 심부름은 나 몰라라 권한만 휘두르며 앞마당을 어지르는 종들이 곳곳에 있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백성을 ‘개·돼지’로 보고 자신은 1% 상위층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종이 있는 걸로 미뤄 적어도 1%는 넘는다고 어림잡을 수 있겠다.

한 마리 꼴뚜기가 어물전 망신시키기에 충분하듯, 1% 남짓의 그 주제넘은 종들이 나라를 말아먹고도 남음이 있다. 권한이 작으면 작은 대로, 권력이 크면 큰 대로 알차고 당차게 제 잇속 채우는 데 써먹는다. 있는 힘껏 손아귀를 벌려 잡으니 제 권한을 넘어서기 다반사인데도 뭐가 잘못인지 알지 못한다. 그렇지 않고야 스스로 국가의 종이 된 자가 무슨 수로 1% 상위층이 될 요량을 할 수 있겠나. 술김에 속내를 드러내고 만 이 종은 악덕 기업인에게 거머리처럼 붙어 단물 빨던 다른 종들에 비해 반대급부로 줄 권한도 적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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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그가 생각한 1%의 기준이 재물이 아니라 벼슬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마당 쓸어 차관 되고 장관 되면 뜻을 이룬 게 되지 않겠나. 하지만 백성을 개·돼지로 여기는 사람이 개·돼지를 위해 마당을 열심히 쓴다는 건 아무래도 맥락이 닿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고사가 있다. 춘추시대 송나라의 재상 자한(子罕) 얘기다. 밭을 갈다 귀한 옥을 발견해 바치는 농부에게 한 자한의 말이 유명하다. “그대는 옥을 보물로 여기고, 나는 탐하지 않는 마음을 보배로 여긴다. 만약 내가 이 옥을 받으면 우리 모두 보물을 잃게 되니 서로 각자의 보물을 간직하는 게 낫겠다.”

‘자한의 보물(子罕之寶)’이란 말이 여기서 생겼다. 그는 당시 이미 출세 기준 1%의 반열에 올랐지만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참으로 달랐다. 그가 사성일 때 상사인 태재(太宰)가 왕을 위해 별궁을 지으려 하자 자한은 농번기가 끝나길 기다리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태재는 공사를 강행했고, 이에 백성은 태재를 원망하고 자한을 칭송하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 그러자 자한은 인부들을 채찍으로 독려하고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했다. 누가 그 이유를 묻자 자한이 말했다. “송은 작은 나라인데 백성의 저주를 받는 사람과 축복을 받는 사람으로 나뉘면 재앙의 근원이 되는 것이오.”

1% 지망 공직자와 명재상 자한을 비교하는 건 잔인하다. 사실 그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비리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소신(?)을 피력했다고 내쫓겼으니 말이다. 죄질이 더 나쁜 건 그보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다른 종들이다. 그런 종들은 나쁠뿐더러 위험하다. 특히 잘 드는 칼을 장착한 사정 권력을 가진 종들은 더 위험하고, 그가 최고권력자에게 가까이 있을수록 더더욱 위험해진다. 권력의 칼날이 늘 밖으로만 향하는 게 아닌 까닭이다. 사심(私心) 가득한 칼날은 똑바로 날지 않는다. 언제든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때론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배후를 위협하기도 한다.

자한마저도 그랬다. 그가 어느 날 임금인 환후에게 주청을 했다. “칭찬하고 상 주는 것은 백성이 좋아하는 일이니 주군께서 직접 시행하시고, 벌을 주거나 사형에 처하는 건 백성이 싫어하는 것이니 신이 맡겠습니다.” 환후는 듣고 보니 그럴듯해 기꺼이 허락했다. 결과가 어땠을까. 대신들은 자한을 두려워하고 백성은 자한을 따랐다. 어느 누구도 임금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1년도 안 돼 자한은 환후를 내쫓고 전권을 장악했다.

사심 없던 자한도 그럴진대 감춰졌던 탐심(貪心)을 드러낸 칼날이 방향 모르고 춤추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런 칼춤은 흔히 홀로 오지 않는다. 성난 개·돼지들의 울부짖음과 때를 기다렸던 하이에나들의 음험한 이빨을 동반한다. 그런 역사의 반복을 숱하게 봐 오지 않았나. 저주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공직자들이 그래서야 나라 꼴이 제대로 되겠느냐 그 말이다. 정말이지 지금부터라도 각성해 바로 섰으면 좋겠다.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맹자의 그 유명한 말, ‘수오지심(羞惡之心)’이다. “내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한다”는 걸 다 아는데도 효과가 없었던 것은 방점이 잘못 찍혀서다. 무게가 앞에 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스캔들’이 될 뿐이다.


이 훈 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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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