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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끌어들여 한·중·일 3각 지형을 4각 틀로 넓히자…박 대통령을 1순위 귀빈 초청한 러시아 “극동엔 한국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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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연방대학교 APEC 정상회의장에서 열리고 있는 ‘평화 오디세이 2016’ 1차 세미나. 다음달 초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2차 동방 경제포럼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참석하는 만큼 보안이 삼엄한데도 러시아 정부는 오디세이 일행에게 흔쾌히 장소를 내줬다.

“동북아 지도를 바꿔야 한다. 한·중·일 삼각형 대신 러시아를 포함한 사각형으로 가야 한다. 중국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이 ‘아이디어 뱅크’란 별명답게 이런 화두를 던졌다. 그의 말처럼 평화 오디세이 참가자들은 연해주에서 러시아의 외교적 가치를 새롭게 인식했다. 한국은 외교적으로 북핵 문제와 한·미 동맹에다 갈수록 높아지는 대중국 의존도라는 3대 제약을 안고 있다. 정부는 한·중·일, 한·미·중 같은 지역 협력구도로 이런 제약을 해소하려 해왔다. 하지만 미·중, 중·일 갈등이 격화되면서 이런 노력도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러시아를 포함시킨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반도 주변 4강 중 과거사 문제가 없고 동맹 딜레마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러시아와 관계를 증진하면 동북아에서 우리의 전략적 입지가 넓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미국·유럽연합(EU)의 제재로 서쪽 채널이 막힘에 따라 러시아는 극동지역에서 활로를 찾으려 한다. 이 지역에서 가장 부담이 없고 경제적으로 윈-윈이 가능한 파트너가 한국이다. 더욱이 인구가 1억 명인 중국 동북 3성의 경제력이 인구 620만 명에 불과한 극동러시아 지역을 잠식해 가는 상황이다. 러시아는 이런 ‘중풍(中風)’을 막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극동 진출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도 제약이 있다. 우리가 러시아를 다룰 때 늘 북한을 생각하듯이 러시아 역시 한반도를 미·러 관계의 틀 속에서 보기 때문이다. 미·러 관계가 악화될수록 러시아는 북핵이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문제에서 북한·중국 편을 들 우려가 높아진다. 한국 역시 미국이 러시아를 강력히 제재 중인 상황에서 경제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런 제약만을 의식해 관계 개선을 포기하기엔 러시아는 한국에 너무나 중요한 존재다. 오디세이 3일 차인 10일과 마지막 날인 13일 잇따라 열린 두 차례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은 ‘가깝고도 먼’ 러시아와의 관계 증진 방안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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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범식 서울대 교수는 “러시아가 극동에 관심을 갖는 건 국가적 위기감의 산물”이라며 "이대로 극동을 내버려두면 러시아 강역은 유럽 지역으로 쪼그라들고 극동·시베리아는 중국에 넘어갈 것이란 관측까지 있다”고 했다. 이어 “그래서 러시아 일각에선 한국인에게 러시아인과 같은 지위를 부여해 극동 진출을 유도함으로써 중국의 팽창을 막자는 구상까지 있다”고 했다.

신 교수는 그러나 “한국이 북한을 흡수 통일하겠다는 욕구를 버리지 않는 한 러시아는 한국과 협력을 확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한을 공존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점을 러시아에 먼저 납득시키고, 한·중·러, 한·일·러 같은 소다자(小多者) 협력 구도를 발전시켜 우리의 입지를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한·중·러는 러시아의 천연가스를 만주·서해(해저터널)를 통해 중국·한국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에너지 협력이 가능하다. 한·러·일은 연해주와 동해, 일본 관서 해안을 각각 연계해 북극 항로를 공동 개발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극동에서 대중국 의존도를 줄이게 된다. 한국도 대륙 진출의 돌파구를 열면서 남북관계에서도 새로운 카드를 확보하게 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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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오디세이 2016’ 세미나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는 빅토로 고르차코프 연해주 입법의회 의장.

그러나 이런 구상이 실현되려면 한국은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대러 외교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러시아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성원용 인천대 교수는 “러시아 지식인들에게 ‘어느 나라가 매력 국가냐’고 설문조사를 했더니 ‘중국’이란 응답이 80%에 달했다. 한국은 50%에 그쳤다” 며 “한국이 러시아에 매력적인 존재가 되려면 우선 러시아가 우리와 다른 체제(국가자본주의)임을 진심으로 인정해야 한다. 러시아도 중국 못지않게 ‘관시(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규형 전 러시아 대사도 “1998년 러시아가 국가 파산을 선언했을 때 국내외의 많은 기업이 철수했지만 현대그룹만은 남았다. 이를 통해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현대는 러시아에서 급성장할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조윤제 서강대 교수는 "러시아가 내각에 극동개발부를 설치한 것처럼 우리도 대통령 직속의 극동개발위원회를 만들고 남북경협자금을 활용해 대러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종민 전 문화부 장관도 “기술이 강한 한국과 기초과학이 발달한 러시아의 특성을 살려 한·러 공동과학기술연구원을 만들면 양국 간 협력이 빠르게 증진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신중론도 있었다.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탈냉전 이래 미·러 관계는 최저점, 중·러 관계는 최고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구도에서 러시아와 중국은 자연히 ‘반미’로 뭉치게 된다. 이는 우리의 대러 운신 폭을 좁히는 악재라는 것이다.

이를 해소하려면 무엇보다 한·러가 실현 가능한 영역에서 최대한 협력을 증진하며 ‘신뢰’를 축적해야 한다고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신범식 서울대 교수는 “북한이 핵개발을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한·미 동맹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한·미 동맹이 우리 안보의 기초임을 초당적으로 합의한 뒤 이를 러시아에 솔직히 밝히면 그들은 오히려 환영할 것”이라고 정공법을 주문했다.

신 교수는 “러시아는 글로벌 차원에선 미국과 대립하면서도 극동에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의 협력을 바라는 이중적 상황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이런 구도를 활용해 한·미 동맹의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러시아와 협력을 극대화하면 러시아도 만족할 것이란 얘기다.

이석배 블라디보스토크 총영사는 “러시아 외교는 일단 입장을 정하면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참호 외교’이자 상대방의 약점이 보이면 물고 늘어지는 ‘하이에나 외교’”라며 이에 대비한 전략을 짜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장도 “러시아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존재지만 미·중 갈등을 과대평가해 러시아를 너무 ‘비싸게’ 살 필요는 없다”고 지적했다. 대북제재 이행 등 러시아에 요구할 건 요구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과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대북제재는 긴장만 부추기는 조치”라며 러시아에 그런 요구를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제재하면서도 대화가 가능하다. 미국이 이란과 그렇게 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제재 이후 어떻게 할 것인지 출구전략도 마련해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도 “대북제재를 일단 개시한 만큼 지금 해제하는 건 안 된다. 북한의 태도가 바뀌도록 확실히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러나 북한이 핵 동결에 합의하면 정부는 러시아와 손잡고 극동지역에 제2·제3의 개성공단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노동자 관리는 러시아 당국이 맡고, 임금은 북한 노동자에게 지불해 평양 당국의 수탈을 막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해 가자는 것이다.

중앙일보·JTBC 특별취재단 단장 : 이하경 논설주간 중앙일보 : 이훈범·김동호·강찬호 논설위원,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영교·서재준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현동 기자 JTBC : 신예리 보도제작국장, 정용환 정치부 차장, 신득수 보도제작국 차장, 김재식·홍승재 영상취재기자, 프리랜서 영상취재 곽민서·전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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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와 기사를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