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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황석영에게 어려울 때 생활비 보태주고, 이문열에게 북한의 부친 소식 전해주고

흔히 ‘진보 진영의 황석영, 보수 진영의 이문열’이라고 대립 표식을 붙이는 우리 문단의 대표 소설가 황석영(73), 이문열(68)씨가 ‘평화 오디세이 2016’ 여정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2003년 10월 중앙일보 지면에 고(故) 정운영 논설위원 사회로 “이제 우리 누구를 편들지 맙시다” “소모적 편 가르기, 중간 목소리 다 죽여요” 등 화제 만발의 대담을 한 뒤 뜸했던 두 작가는 10여 년 만에 무릎을 맞대고 ‘형님, 아우’의 우애를 과시했다. 5박6일 내내 단짝으로 서로를 챙기며 화통한 입심과 ‘주력(酒歷)’으로 좌중을 휘어잡은 문단 형제는 평화 오디세이가 찾아 나선 이 땅 화합의 등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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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사진 왼쪽)·이문열 작가는 여정 내내 단짝친구였다.

‘황 구라’라는 별명답게 현란한 말솜씨로 기선을 잡는 황석영씨는 여장을 푼 첫날 벌써 이문열씨를 여유로 품었다. 서로의 문단 데뷔 시절을 돌아보며 “얘가 문예반이라면 난 양아치였죠”라고 비유했다. “6·25 때 길바닥에서 손을 놓쳐버린 동생 같다”고도 했다. 최근 수술을 받은 이 작가 등을 주무르며 “건강하게 몸을 지켜 이제부터 더 큰 작품을 써야 한다”고 다독였다.

이문열씨는 황석영씨를 깍듯하게 ‘황 선배’라 불렀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자꾸 반대편으로 갈라놓으려는 두 사람이 실제로는 어려운 시절마다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한편이 되었던 과거를 회상했다. “2000년대 초 한 신문에 쓴 칼럼 내용을 문제 삼은 시민단체가 집 앞에서 제 작품집을 불태우는 ‘책 장례식’을 치렀을 때 황 선배가 현대판 분서갱유에 분개하며 저를 옹호하는 칼럼을 써주셨죠.”

불법 방북 후 외국을 떠돌던 황 작가는 1993년 미국 뉴욕에서 만났던 이 작가와의 일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궁핍하던 내게 꽤 많은 달러를 생활비에 보태라며 쥐여줬어요. 이 형 아버님이 6·25 때 월북해서 그 뒤로 가족 모두가 고초를 겪은 건 알려졌지만 그의 소설에 늘 아버지의 그림자가 회한처럼 비치고 있다는 건 아는 이만 알죠.” 아버지를 꼭 한 번 보고 싶다는 이문열씨의 소원을 들어주려 백방으로 노력한 황 작가는 이미 재혼해 자식 여럿을 둔 부친 근황을 받아 전해 줬다. 재회를 포기하고 통곡하는 이 작가 손을 잡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여보, 당신 아버지가 월북했을 때 지금 당신보다 젊었어. 부친을 용서하고 놓아드리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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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이틀 같이 밥 먹고 얘기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참석자 가운데 황·이 작가 형제와 동참하는 이가 늘어났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은 황 작가 말에 따르면 “다 내 계보로 들어왔어” 지경에 이르러 통음하며 나라의 장래를 토론하는 사이가 됐다.

중앙일보·JTBC 특별취재단 단장: 이하경 논설주간, 중앙일보: 이훈범·김동호·강찬호 논설위원,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고수석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정영교·서재준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김현동 기자 JTBC: 신예리 보도제작국장, 정용환 정치부 차장, 신득수 보도제작국 차장, 김재식·홍승재 영상취재기자, 프리랜서 영상취재 곽민서·진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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