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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갈라진 한반도를 넘어오라…하산의 들녘은 우리에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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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평화 오디세이’의 지난해 여정은 압록강과 두만강의 조·중 국경지대를 답사하는 길이었는데, 이번에는 연해주 일대를 돌아보는 길이었다. 나는 작년에도 초청을 받았으나 응하지 못했고 올해도 사양할 수가 없어 여정에 동참하기로 했다. 막상 응하고도 작가란 원래 혼자서 노는 게 업인지라 낯선 이들과 어울려 여러 날을 함께하기가 쉽지 않은 일인 데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의견을 주고받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다. 동참한 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난 정부의 정치·경제·외교·통일·문화 등의 고위직 관료를 지낸 이들과 여야 정치인들, 기업가들과 각 분야 학자들 그리고 경험이 풍부한 실무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내게는 몇몇 낯익은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처음 만나는 이들이었다. 어쨌거나 이렇듯 다양한 분야의 각기 다른 식견을 지닌 분들이 ‘평화’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함께 길을 떠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방북 이후 오랜 망명 투옥의 방황을 끝내고 귀가했을 때 우리 공동체를 덮친 외환위기 사태와 이후 전 세계가 냉전 이후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로 재편성되는 과정을 동시대인들과 더불어 체험했다. 그리고 어려움 가운데서도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다가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미국의 중동전쟁과 대한반도 정책이 전환되는 어긋난 시간을 겪어야 했다. 나는 이 기간에 유럽에 체류했고 많은 동아시아 전문가를 런던과 파리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남북문제를 한반도에 국한시키거나 민족주의적으로 접근해서는 풀기 어렵다는 깨달음이 있었던 시기였다.

한국은 고도의 경제성장을 지속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객관적 위상은 중견국가 정도에 머물고 있다. 따라서 강대국과는 달리 정부의 의지를 세계 체제 내에서 관철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또한 높은 무역 의존도 때문에 대외정세의 변화에 매우 민감하다. 현재 전 세계적인 저성장의 공황기에 접어든 세계 체제는 생존 조건에 따라 대륙별로 권역이 나뉘면서 문화·경제적인 협조 체계와 영향력은 보다 다양해지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동아시아공동체 담론에 대한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정책은, 전자가 경제 중심으로 포괄적이었던 반면에 중·일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한 측면이 있었고, 후자는 차츰 벌어지는 북한과 미국의 불화 가운데서 정세를 과소평가하고 자기 역량은 과대평가한 측면이 있었다. 그 후 두 차례의 보수 정부는 일차적으로 대북관계를 동결시키고 냉전화함으로써 미국의 주도권 아래 머물게 되면서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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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러 3국 접경지 인 하산역 일대 를 살펴보려던 계획은 러시아 의 불허로 무산됐다. 하지만 크라스키노 전망대에 오르니 바다 너머로 하산의 들녘이 보였다. 평화 오디세이 2016 참가자들 뒤로 왼쪽 이 러시아 하산이며 오른쪽은 중국 훈춘(琿春) 방향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평화에 대한 갈망이 지역 차원에서 확고하게 뿌리내린 유럽과는 달리 동북아는 무엇보다도 지역적 실체가 모호해 과거의 유럽만큼 심각하지는 않되, 위협적인 중·일의 패권 경쟁과 그에 따른 구심점의 부재가 불안정 요소로 잠재해 있다. 유럽연합의 현재 위기는 중동전쟁으로 노골화되었지만 유럽 스스로 통합의 가치를 세우지 못하고 신자유주의 세계 체제 속에 안이하게 편승하려던 결과이며 이는 유럽 내부에 남아 있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업보이기도 하다. 또한 자본의 반복성 또는 강박성에 의해 유럽 통합의 역사가 동북아에서 재현된다고 할지라도 이를 좌우할 나라는 중국, 일본 또는 미국이지 한국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한국이 북한을 ‘평화의 장’으로 포섭해 내지 못하는 한 변하지 않는 현실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세계 속에서 한국의 정치·경제·문화적 발전을 저해하고 스스로의 생존을 제약하는 근본적 위기의 요인이기도 하다. 현재의 세계적인 공황과 한반도가 부딪힌 정치·경제적 한계를 극복하고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도 국가 경영에 대한 비약적인 상상력과 기획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것은 방향을 돌려서 ‘유라시아 대륙’으로 나아가는 길이라는 것을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주장해 왔다. 한반도 북방에는 극동 시베리아와 만주와 몽골에 이어서 중앙아시아에 닿는다. ‘초원 길’은 고구려 이전부터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길이었다. 고대 사서에서도 고조선의 신시처럼 이들 다양한 민족과 문화와 교역이 기록되어 있으며 사실 고구려와 발해는 ‘유목연합’이었던 셈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두만강 하구의 하산(북·중·러 접경) 지역을 답사하려던 기획이 취소되는 바람에 훨씬 북쪽의 자루비노 항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수년 전까지 속초에서 이어지던 이 항로가 금강산 관광 길이 막히면서 사실상 한산한 지역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나는 청년 이순신이 무과에 급제해 처음 부임했던 직임이 두만강 하구의 녹둔도 만호였음을 기억해 냈다. 모래톱으로 이루어진 녹둔도는 강의 흐름이 바뀌면서 연륙되어 러시아 땅이 되어버렸다. 수년 전에 압록강, 두만강 국경지대를 한 달 동안 답사하면서 보았던 금삼각 일대를 떠올렸다. 북한, 러시아 그리고 겨우 오솔길 하나가 중국 영토로 맞닿은 그곳은 과거의 패권을 겨루던 역사가 어떻게 또 다른 가능성으로 전환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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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하바롭스크 공항에서 만난 북한 근로자들. 3년 만에 북한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엊그제의 일도 쉬이 잊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특성을 떠올리며 북핵 문제의 연원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겠다. 우리는 분단 이후 내전이면서 국제전이라는 한국전쟁을 겪었고 이로써 유럽에서 극동에까지 이르는 세계적 냉전 체제가 완성되었다. 1990년에 냉전이 해체되고 동서독이 통일되면서 동유럽의 사회주의권이 붕괴된다. 남과 북은 유엔에 개별 국가로 가입한다. 이는 분단의 고착화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남북의 교차승인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즉 러시아, 중국은 남한을 승인하고 미국, 일본은 북한을 승인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남한과 외교관계를 가지게 되었으나 미국과 일본은 북한을 승인하기를 유보했다. 이를테면 냉전의 지속이 된 셈이다. 기대가 좌절되면서 홀로 남게 된 북한은 협상의 강력한 수단으로 ‘핵 개발’을 추진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을 개시했다. 한마디로 생존을 위해서 체제의 안전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94년에는 미국이 북폭을 결정하고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선회하기도 했다. 남한 정부는 이른바 ‘햇볕정책’을 내세워 북한·미국·남한·중국이 참여하는 협상 테이블로 북을 이끌어내어 포용하려고 했다.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현재의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와 일본까지 포함한 장기간의 협상 끝에 2005년 베이징 9·19 공동성명에서 이제 ‘평화체제’에 대해 논의하자는 원칙적 합의만 해 놓고는 미국의 금융제재 등 약속 이행이 진행되지 않은 것을 이유로 협상은 결렬된다. 이후 중동전쟁에 여념이 없던 미국은 ‘방임주의’로 일관했고 북한은 장거리로켓과 제4차 핵실험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한반도 위기의 주도권을 행사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일본의 정책 변화에도 대응하지 못했다. 미국의 협조와 격려 아래 일본은 종전 후 지켜왔던 평화헌법을 폐기하고 자위대의 설립 취지를 변화시켜 작전 범위를 세계화하면서 유사시의 한반도 진출을 공식화했다. 현재 미국은 일본·한국을 묶은 삼각안보를 통해 동북아에서 신냉전체제를 형성하려고 한다. 사드 배치 결정은 한국인의 경제적 살림과 안전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남한을 한·미·일 동맹의 하위 전초기지로 못 박는 일이다. 이로써 한반도의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려던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었고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로 다시 빠져들었다. 평화체제로의 전환이야말로 동북아와 한반도의 평화, 그리고 유라시아 대륙에 실질적인 소통과 상생의 시대를 여는 길임을 잘 알면서도 말이다.

나는 이념적인 문제를 넘어 한민족의 활로를 여는 열쇠로 ‘알타이 연합’에 대한 기획을 실천하고자 노력해 왔다. 몽골은 250만 정도의 우리네 인천시만 한 규모이지만 국토의 넓이는 중국에 절반을 점령당하고도 한반도의 7배나 되고 풍부한 자원과 개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몽골의 지도층은 우리와 수교를 개시하던 초기부터 일관되게 ‘몽골+남북한’ 또는 몽골, 남북 코리아, 중앙아시아가 모두 함께하는 ‘알타이 연합’ 등으로 혈연적 연합을 제안해 왔다. 구체적으로는 그 시발점으로 한반도의 1.8배 넓이인 동몽골 지역을 한국의 자본·기술과 북한의 노동력으로 개발해 달라는 것이었다. 몽골 측에서는 200만 정도의 이주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과거처럼 제국주의 시대가 아닌 이상 정복이나 전쟁에 의해서가 아니라 경제문화공동체를 구상한다면 우리가 몽골·중앙아시아와 ‘알타이 연합’을 이루는 일이 상상으로만 그칠 일은 아니다. 이를테면 남미연합, 동남아연합, 유럽연합 등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정치·경제·문화적 협력을 위한 연합적 협의기구들이 세계 속에 다양한 가치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는 냉전 해체 이후 한국과 수교하던 초기부터 극동 시베리아의 개발에 대해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해 왔다. 두만강 개발 건이나 사할린과 시베리아 가스의 한반도 유입 건이나 남북 철도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연결 등은 모두 여러 차례의 협의를 통해 윤곽이 들어난 기획들이다. 이러한 기획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문제는 바로 한반도의 분단이며, 북한과의 관계 변화가 우선적으로 전제되어야만 실현 가능한 꿈이다.

어느 나라에나 위기 요소가 있고 정부는 이를 적절히 경영하면서 나라를 이끌어간다. 이를테면 일본의 리스크가 지진이라면, 중국의 리스크는 수많은 인구와 다양한 종족이고, 우리의 리스크는 북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북한은 우리에게는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을 조정할 수 있는 지렛대이자 거꾸로 외세가 한국을 조정할 수 있는 지렛대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일관된 균형을 유지하면서 북한을 경영해 내야만 한다. 군사력이나 대결적인 긴장을 통해 절대 안보를 추구하는 순간 상대방 또한 같은 행위를 함으로써 안보가 위협받게 되는 안보 딜레마처럼, 자국의 이익만을 극대화하려는 순간 서로 끝까지 버티는 ‘치킨게임’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공존과 공영을 목표로 한 공동이익의 추구야말로 현실적이며 윤리적인 정책이다. 북한을 ‘농성체제’라고 본다면 농성을 푸는 길은 봉쇄를 풀어주는 데서 시작된다.

새로 들어서게 될 미국 정부는 중동과 북핵 문제를 동시에 처리해야 할 것이다. 클린턴 정부 이래의 숙제였던 북·미 수교와 한반도 평화체제 문제에 속도를 내야만 한다. 북·미 간에 합의가 이루어져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수립되고 북·미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동북아에 동·서독 장벽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엄청난 세계사적 변화가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우리는 휴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해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주도적인 중재자 노릇을 해야만 한다. 사실상 북한과의 적극적인 관계 개선은 ‘수난당한 수난의 해결자, 고통받은 고통의 치유자’로서 코리아가 주인답게 자신의 주도력을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망국의 한을 품고 고국을 떠나 북풍한설 몰아치는 연해주를 떠돌던 독립운동가들의 삶과 죽음을 확인하는 곳곳마다, 해설하는 교수가 가리키는 산과 강과 마을과 넓은 평원을 내다보며 나는 우리의 유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분단 이후 모든 동포가 국내에 살든 해외에 살든 결국 거처를 상실한 난민이 되어버렸다. 지도를 거꾸로 놓고 들여다보기가 몇 년 전부터 젊은이들 사이에 퍼졌다. 이를테면 한라산쯤에 눈을 대고 위를 올려다본다. 저 위에 광활한 대륙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휴전선을 따라 북녘 땅을 손바닥으로 가리면 우리는 돌연 섬에 갇히고야 마는 것이다.

황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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