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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 NIE] 난민팀, 휠체어 양궁 선수 … 리우 올림픽은 감동·화합의 한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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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양궁 국가대표로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자흐라 네마티

제31회 리우 올림픽 폐막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리우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남미 대륙 최초로 열린 이번 올림픽은 역대 최대 규모로, 수많은 신기록과 숱한 화제를 뿌렸다.

난민 대표팀과 개인 자격으로 출전한 쿠웨이트 선수단을 합해 5개 대륙 207개국 1만1551명의 선수들이 17일 간의 열전(熱戰)을 벌였다. 올림픽의 의미에 대해 돌아봤다.


고대 그리스 제전경기로 시작한 올림픽

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4년마다 개최하는 국제 스포츠 대회다. 기원은 고대 그리스까지 올라간다. 최초의 고대 올림픽이 언제 열렸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중 한 곳인 앨리스 출신의 코로 에부르스가 기원전(BC) 776년 달리기 경주에서 우승했다는 문헌상의 기록을 근거로 통상 이 때를 고대 올림픽의 시작으로 본다. 당시 그리스는 아테네·스파르타 등 여러 도시 국가가 발전했는데, 올림피아·피티아·이스트미아·네미아 등 여러 지역에서 신을 찬양하기 위한 종교의식으로 일환으로 제전경기(祭典競技)를 벌였다. 올림픽은 이중 가장 오래된 올림피아제의 이름을 딴 것이다.

약 1200여 년 간 지속됐던 고대 올림픽은 서기(AD) 393년을 마지막으로 맥이 끊긴다. 당시 그리스를 지배하에 둔 로마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고 고대 올림픽을 이교도의 종교 행사로 규정하면서 폐지를 명령한다. 이후 1500여 년 동안 중단됐던 올림픽은 프랑스의 피에르 쿠베르탱의 노력으로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근대 올림픽의 모습을 갖추고 첫 발을 내딛는다. 제1회 하계 올림픽이다. 동계 올림픽은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처음 열렸다.

올림픽은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중단되기도 했었지만 이후 대회 규모는 꾸준히 커져 31회 대회인 이번 리우 올림픽으로까지 이어졌다.

올림픽 정신, 승리보다 중요한 정정당당한 노력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펼치는 박진감 넘치는 경기는 드라마틱한 즐거움을 선사한다.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대중들은 희열과 감동을 느낀다.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힘차게’(Citius, Altius, Fortius)라는 올림픽 표어는 이를 잘 표현해준다. 하지만 단순히 경기가 주는 재미와 스릴이 올림픽의 전부는 아니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쿠베르탱은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고 제창했다.

우정과 협력의 올림픽은 인간 드라마를 완성한다. 남수단 출신 육상 선수와 시리아 출신 수영 선수 등 총 10명으로 구성된 최초의 난민팀은 ‘메달이 없어도 가장 행복한 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펜싱 남자 어페 개인전 결승에서 헝가리 선수 임레 게저에게 10-14로 뒤지다가 15-10으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둔 박상영(20) 선수가 ‘할 수 있다’를 되뇌이던 모습은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을 보여준다. 하반신 마비에도 불구하고 휠체어에 탄 채로 활시위를 당긴 이란의 양궁 국가대표 자흐라 네마티(31), 암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목에 건 아르헨티나 요트 대표 산티아고 랑게(54)의 모습에 관중들은 기립 박수를 쏟아냈다.<중앙일보 2016년 8월 17일 “배불뚝이 수영선수, 꼴찌한 난민팀도 올림픽 영웅”>

태권도 남자 68㎏급 8강에서 요르단의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에게 패배했지만 경기 종료 후 아부가우시의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그의 승리를 축하해 준 이대훈(24) 선수는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여자 육상 5000m 예선에서 경기 도중 뒤엉켜 넘어졌던 선수를 일으켜 세운 뒤 함께 완주한 애비 디아고스티노(28)는 우정과 협력의 올림픽이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그는 “신이 내 마음을 그렇게 이끌었다. 내 행동이 레이스에서 거둘 수 있는 기록보다 더 바람직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일부 몰지각한 팬과 네티즌들의 응원 문화는 눈살을 찌뿌리게 한다. 한국 축구올림픽대표팀이 축구 8강전에서 온두라스에게 0-1로 패배하자 부진한 경기를 펼쳤던 손흥민(24)에게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는가 하면 네덜란드와의 여자 배구 8강전에서 한국 대표팀이 1-3으로 패배하자 박정아(23) 선수를 희생양처럼 물어뜯는 모습은 부끄럽기 그지없다. 건설적인 비판이 아닌 비난을 위한 비난, 감정적인 질타는 쿠베르탱이 제창한 올림픽 정신을 무색하게 만든다. “지금 가장 아픈 이들은 선수 본인들이다.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원색적 비난에 또 상처를 받고 있다. 국가를 위해 뛴 것뿐인데 역적이 돼버리는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고 싶겠는가. 비난 보다는 건설적인 비판이, 차가운 폭력 보다는 따뜻한 격려가 필요한 이유다.”<일간스포츠 2016년 8월 18일 “‘인격 모독’ 당할 정도로 ‘국가대표’는 큰 죄를 지었는가?”>

자문자답 내공쌓기

비겁한 수단을 쓰더라도 기어이 이기는 것과 정정당당하게 지는 것 중 어떤 행동을 선택해야 할까?

경기가 끝난 후 승자와 패자가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선생님과 신문 속 교과서 읽기

‘얍쌉’의 미학

무한도전과 런닝맨 같은 예능 프로그램에 빠져있던 적이 있었습니다. ‘본방 사수’를 위해 꽤나 노력했었답니다. 이런 프로그램들이 저의 흥미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배신자나 거짓말쟁이처럼, 얄미울 정도로 얍쌉한 캐릭터들입니다. 실제 세상에선 이런 사람들은 어느 누구도 상대하고 싶어하지 않지만, TV 프로그램에선 이상하게도 이런 캐릭터의 활약이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규칙을 맹목적으로 지키는 것보다 적당히 어기는 모습이 우리에게 묘한 흥미를 일으킵니다.

스포츠에서도 유사한 속성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하면 페어플레이 정신을 이야기합니다. 일상적 놀이의 규칙을 다듬어 공식화하고, 제도적인 여가로 고정시킨 것이 스포츠입니다. 원칙적으로는 게임에 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공인된 규칙에 따라야만 합니다.

하지만 실상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축구를 예로 들어 볼까요. 축구는 선수들의 역량, 팀의 전술 뿐 아니라 심판의 태도에 따라 좌우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꽉 막힌’ 심판이 운영하는 축구는 경기의 흐름이 자주 끊어지거나, 경기 자체가 진행이 안 되는 경우도 생깁니다. 반대로 ‘운용의 미’를 살릴 줄 아는 심판은 지나치지 않은 반칙을 경기의 일부로 인정하면서 경기를 다이나믹하게 만들죠. 심판의 성향에 따라 선수들의 움직임이 대담해지기도 하고 소심해지기도 한답니다.

전술적 반칙 vs 비매너

그러면 궁금합니다. 과연 경기나 게임에선 정정당당하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반칙을 해서라도 이겨야만 할까요? 오늘은 조금 색다른 접근을 하려 합니다. ‘적당히’ 규칙을 어기는 선수가 어떤 경우엔 경기를 흥미진진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당하는 선수의 입장에서야 그를 ‘나쁜 놈’이라고 비난하겠죠. 하지만 경기·게임을 관람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끔 반칙은 하더라도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선수에게 오히려 더 큰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답니다. 실제로 ‘악동’으로 불리는 선수들이 팬들의 관심을 끄는 일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스포츠에서는 ‘전술적 반칙’이라는 작전도 자주 등장합니다. 상대팀의 속공을 끊거나 실점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반칙으로 인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의도적으로 반칙을 저지르죠. 이런 반칙을 했다고 해당 선수가 비난 받는 일은 드뭅니다. 반칙을 한 선수가 속한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잘했다고 칭찬하지요.

그렇다면 전술적 반칙은 경기의 재미를 위해 허용돼야 할까요. 허용한다면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까요. 여기서 우리는 스포츠 또한 문화의 일부라는 점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화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죠. 동시에 문화에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윤리적 가치가 담겨있기도 합니다. 경쟁을 통한 승리를 목표하는 스포츠도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윤리적이고 당위적인 가치보다 우선해선 곤란하겠지요.

즉 전술적 반칙을 하더라도 인격적 모욕을 주거나, 신체에 큰 위험이 될 수 있는 행위까지 용납해서는 곤란하겠지요. 축구 경기에서 상대가 크게 다칠 것을 알면서도 다리를 높게 드는 태클을 한다거나, 이기는 입장에서 고의적으로 시간을 지연시키는 행위 등이 그렇습니다. 전술적인 반칙으로 인정하는 이들보다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큽니다.

올림픽이 막 끝났습니다. 많은 경기들이 있었으나 유독 온두라스와의 축구 8강에서 본 한 선수의 눈물이 뇌리에 남습니다. 상대의 전술에 말려들어 결과적으로 진 게임이었습니다. 전술적 반칙으로 허용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 우리 선수들을 모욕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올림픽에선 적어도 이런 비신사적인 행동만큼은 추방됐으면 합니다. 지나치게 비신사적인 행동은 스포츠를 동네 뒷골목의 패싸움보다 못한 수준으로 만들고,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감만 안길테니까요.

문우일 세화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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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진 기자 Jeong.hyeon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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