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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무산된 7·25 남북 정상회담의 뒤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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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22년 전인 1994년 7월 25~27일에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었다. 광복 이후 두 체제로 갈라져 전쟁까지 치렀던 남북이 긴박한 충돌의 가능성에 직면해 함께 찾아낸 역사적인 대화의 장이었다. 그러나 7·25 남북 정상회담은 7월 8일 김일성 주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역사의 흐름과 민족의 운명을 바꿔 볼 수 있다는 희망과 흥분 속에서 평양행을 준비하던 김영삼 대통령은 물론 평화통일의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를 품었던 국민에게는 참으로 야속한 역사의 뒤틀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지금 와서 그 여름에 느꼈던 낙담과 실망, 심지어 민족의 불운으로까지 여겼던 아쉬움을 되돌려 보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22년이 지나도록 별다른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또다시 전쟁과 평화의 길목에 서게 된 오늘, 무산된 평양 정상회담의 준비 과정이 남긴 역사의 뒤안길에서 평화를 모색하는 지혜의 실마리를 찾아보자는 것이다.

독일 통일로 상징되는 탈냉전 시대와 시장과 정보의 세계화 시대가 함께 열리며 아시아의 대표적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베트남도 그 물결을 과감히 수용하였다. 87년의 민주화, 88년의 서울 올림픽은 한국이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에 성공적으로 동승한 결단의 신호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여야 합의와 국민적 호응에 힘입어 89년 남북 두 체제의 공존을 인정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확정한 데 이어 91년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유엔 동시가입이라는 평화통일 노력의 획기적 진전을 가져왔었다. 그러한 긍정적 흐름이 불과 한 해 후부터 1차 북한 핵위기란 위험한 곁길로 방향을 틀게 된 데는 적어도 두 요인이 있었다고 되짚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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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평화통일의 3대 진전이라 할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유엔 동시가입은 이루었지만 이에 대한 확고한 국제보장체제를 마련하지 못한 것이 한국 외교의 큰 한계였다. 우리가 소련에 이어 중국과도 국교 정상화에 성공했던 92년에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교차 승인을, 이에 더해 한반도 비핵화 실천을 담보하는 관계국 간 합의도 이뤄졌다면 오늘의 위기는 예방될 수 있지 않았을까. 당시 유일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이 한반도 평화보장체제 수립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지 못한 것을, 그리고 미국에 이러한 정책 채택을 강력히 촉구하고 설득하지 못한 한국 외교의 한계를 새삼 후회하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냉전 종식과 세계화의 진전이란 역사적 대전환점에서 전 세계가 이에 적응하려 몰두하는 시점에 북한만이 ‘우리식’을 고집하며 핵무장 국가를 지향한 것은 전쟁보다도 평화를 무서워하는 듯싶은 부적절한 선택이었다. 특히 덩샤오핑(鄧小平)의 역사적 결단으로 중국마저 적극적으로 세계화 물결에 동참한 전환점에서 핵무장이란 극단적 예외화를 고집한 것은 갈수록 커지는 대가에 더해 전쟁까지도 부추길 수 있는 실패작으로 보여지고 있다.

93년 북한 핵 프로젝트에 대한 군사적 조치 가능성을 시사한 윌리엄 페리 미 국방장관의 경고, 그러한 조치는 한반도에 전면 전쟁을 초래할 수 있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입장은 한·미 간 정책 공조를 조율하는 데 기여하였다. 당시 야당의 김대중 총재가 미국에 고위 회담을 포함한 북한과의 대화를 공개적으로 촉구하고 나선 것은 평화통일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반영한 것이었다. 94년 6월 15일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김일성 면담이 실현되었고 미·북 간 평화 지향적 공동 노력과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남북 정상의 회담으로 물꼬를 터나가겠다던 합의는 매우 획기적인 진전이었다. 무엇보다도 김일성 주석이 북한의 예외화 정책의 한계를 인식하고 국제사회의 세계화 노력과 남북 간에 합의한 평화통일 어젠다의 실현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보여준 것은 통일로 향한 큰 행보가 아닐 수 없었다.

7·25 남북 정상회담이 무산된 이후의 한반도 정세는 평화보다는 전쟁의 가능성을 높여가는 답답한 방향으로 흘러왔다. 미국의 ‘전략적 인내’와 중국의 ‘전략적 애매’가 상황의 지속적 악화를 방치해 왔다는 비판을 비켜가기 어려운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이대로 가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를 핵무기 경쟁 지역으로 전락시키는 위험에 직면하게 될 지금, 한국은 다시 한번 적극적으로 평화 외교를 전개해 나가야 한다. 22년 전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남북이 국제사회의 흐름을 타고 정상회담을 비롯한 평화 외교의 실마리를 풀어가려 했던 것을 상기해 볼 시점이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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