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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중·러의 사드 반발에 어떻게 대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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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
전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

결국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가 결정됐다. 중국과 러시아는 반발하고 그 후과를 놓고 국론이 분열되니 외교가 난국에 처할 판이다.

중·러의 대응 앞에 선 우리 외교를 보면서 찬반을 떠나 그간 사안을 다뤄온 방식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이 중·러의 반발을 키웠기 때문이다.

북한 미사일 위협에 비해 우리의 방어가 부족하다는 것은 해묵은 일이다. 이럴 때 정상적인 대응은 부족 부분의 대책을 세우고 국론을 모아가며 필요한 외교를 하는 것이리라.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10여 년 전 처음 문제가 대두될 때부터 논쟁은 한국의 안보가 아니라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 편입 여부를 두고 벌어졌다. 보혁 정치 쟁점이 되니 정치권·군·관료 모두 이 문제를 꺼리게 됐다. 하층 방어로 부족한 줄 알면서도 성공 여부가 불투명한 한국형 방어체계 개발계획만 내놓고 덮어두려 했다.

그러자 주한미군이 우리 군에 문제를 제기했다. 우리 군도 내심 공감했을 것이나 정치적 민감성이 있어 주저했다. 보다 못한 미군이 자체 배치를 추진하려고 했다. 스캐퍼로티 사령관이 2014년 미군의 사드 배치를 언급하기까지의 배경이다.

그의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우리 측은 사안을 덮는 데 주력했다. 그는 한국과 공식 협의를 하지는 않았으나 사드 배치가 필요하므로 본국에 건의했다고 했는데, 우리 측은 공식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꼬투리를 잡아 “협의한 바 없다”고 잡아떼었다. 이것이 나중에 미측 요청이 없으니 협의가 없으며 결정이 없다는 ‘3No’라는 기이한 구호로 진화해 중층 방어에 대한 한국 입장이 됐다. 사실 스캐퍼로티 말의 행간에는 비공식 협의는 있었고 거기서 공감이 있어 배치를 건의했다는 의미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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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No’는 모두에게 편한 은신처가 됐다. 정작 해야 할 국민적 논의와 중·러에 대한 외교를 게을리할 구실이 됐다. 우리가 중층 방어를 중요 안보 이슈로 삼고 주도적으로 국민적 논의를 하며 미·중·러와 협의했다면 중·러는 이 문제를 한국의 안보 이슈로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수년간 ‘3No’로 대처하자 중·러는 이것이 한국의 안보와는 관련이 없다는 생각을 굳히고 사드는 미국의 전략 사업이며 한국은 미국의 압력 때문에 고민한다고 인식했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이 허용할 것으로 의심했다. 그래서 중·러는 한국을 표적으로 압박했고 한국이 독립국가로서 현명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 의심하던 대로 되자 중·러는 미국 편을 든 한국이 후과를 져야 마땅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그렇게 대응하게 됐을까. 한국 사회 특유의 외교안보 담론 구조 때문이다. 정파와 이념에 따라 분열되고 뒤틀린 담론이 소용돌이치면 포퓰리즘에 예민한 정치권력은 이를 의식하고 관료들은 몸을 사린다. 모두 민감한 사안을 피하면서 홍보성 구호로 호도하려는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후과는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더라도 문제를 풀고 후과를 줄이려면 정부가 이 문제는 한국의 안보 이해임을 확실히 하고 적극 행동해야 한다. ‘3No’식 사고와는 절연해야 한다. 관료적 소극주의를 타기해야 한다. 행여 사드가 미군 무기라는 이유로 미국 뒤에 서려 해서도 안 된다. 적극 대응하고 교섭해야 한다.

우리가 새로운 관점에 확고히 서야 무리한 주장에 대한 입장이 명료해진다. 예컨대 중국은 자국의 안보를 위해 타국의 안보를 희생시키면 안 된다고 한다. 미국을 겨냥한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우리의 입장이 될 수 있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충분한 대비가 없는 한국에 사활적 안보를 희생시키라고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미국의 MD 구축에 협조한 루마니아·폴란드에 대해 러시아가 가한 조치를 들먹이고 있다. 그러나 그들과 한국은 다르다. 그들에게 미사일 위협을 가하는 북루마니아나 북폴란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 우리 사회의 사드 담론은 찬반 모두 안보를 함께 고심하는 데에서 시작돼야 한다. 보수·진보·친미·친중이 출발점이어서는 안 된다. 안보보다 중·러의 보복 우려를 앞세우는 논의도 본말도치다. 그러면 중·러는 국론 분열을 겨냥해 압박을 더하게 된다. 정치권·언론·시민사회단체가 이 점에 유의했으면 한다.

셋째, 이번 일을 계기로 모두가 우리 외교를 정치적 포퓰리즘과 관료적 회피주의의 함정에서 구해 내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난제가 다가오면 홍보성 구호만 내놓고 할 일을 피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우루과이라운드 쌀 협상 때 “개방 불가”만 되뇌다가 막판에 무너진 일이 비근한 예다. 이런 일이 바뀌지 않고 있다. 포퓰리즘에 민감한 정치권력과 회피적인 관료가 편의적으로 손잡기 때문이다.

이 카르텔을 고쳐 나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 외교가 홍보와 언론 플레이에 매몰되지 않고 정책과 전략의 방향으로 발전한다. 정치 세력도 이 문제에 주의를 돌려야 한다. 이번 사태가 우리의 고질을 손대는 계기가 된다면 한탄 중에도 그나마 위안이 될 것이다.

위성락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객원교수·전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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