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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6·25 66주년, 평화의 구조와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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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벼락도 같은 곳을 두 번 치지 않는다는데 어찌하여 한민족은 한 세기 안에 두 번이나 날벼락을 맞을 수 있었을까. 그 첫째가 1910년 나라를 일본에 강탈당한 벼락이며, 둘째는 1950년 6·25사변으로 삼천리강산이 송두리째 파괴되고 수백만의 사상자와 수천만의 피란민을 남긴 전쟁이란 벼락이었다.

끔찍했던 전쟁의 포연 속에서 다시는 전쟁이 없어야겠다고 그토록 다짐했건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우리는 또다시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53년 초여름,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던 혼란 속에서 철없이 휴전 반대 데모에 참가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아마도 3년에 걸친 전쟁이 나라 살림을 결단 낸 후 승자는 없이 패자만 남긴 채 휴전으로 막을 내린다는 허무한 시나리오에 대한 감정적 반발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휴전체제는 63년이 지난 지금껏 지속돼 오면서 오늘의 한반도 상공엔 여전히 전쟁의 먹구름이 걷히지 않고 있다.

민족사의 유산과 한반도의 묘한 지정학적 위치가 불운의 요인이란 지적은 새삼 되풀이할 필요조차 없다. 그러나 우리를 둘러싼 열강의 국제 관계가 제국주의 시대, 동서 냉전 시대, 미·중 패권 경쟁 시대로 이어지면서 한반도에서의 전쟁과 평화의 가능성을 좌우해 왔음은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한국전쟁에서 3만7000명이 넘는 전사자를 낸 미국이나, 문자 그대로 부지기수의 희생자를 낸 중국이 한반도에 대한 정책을 쉽게 바꾸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독립운동기로부터 새로운 건국의 모델을 놓고 좌우로 갈라섰던 두 진영이 48년 열강의 역학 관계 및 이념 대결과 뒤얽히면서 나라를 남과 북으로 나누어버린 불행한 경위도 우리 역사의 한 장일 뿐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반도가 처한 위기는 45년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탄으로 시작된 핵무기 시대의 공포와 저주가 북한의 핵강국화 정책으로 우리 민족의 생존과 직결돼 버렸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북한의 선택은 한반도와 나아가 동아시아를 완전한 핵무장 지역으로 만들어버리는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놓게 된 것이다. 그러한 공멸의 수렁으로 우리 민족과 아시아의 이웃이 함께 추락할 미증유의 비극을 예방하기 위한 동아시아 평화체제의 구축은 미·중·러·일 등 강대국 간의 이해 관계, 남북한의 대결, 그리고 우리 국민의 일치된 국민적 의지란 3차원을 연계하는 평화구조 건설의 고차원적 외교가 성공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 도전에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한국의 창의적 평화외교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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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우리는 통일에 대한 꿈은 굳건히 지켜가되 당장은 평화를 지키는 것이 우선 과제라는, 국민들의 보편적 생각에 맞춘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민주화에 성공하면서 국민적 총의와 4당 합의로 89년 확정한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은 바로 그러한 입장을 명문화한 것이었다. 휴전선을 경계로 대치하고 있는 두 체제가 공존하고 있는 현실을 함께 수용하고, 하나의 민족공동체로 복원하여 발전시키기 위한 두 체제 간의 교류협력 과정을 꾸준히 밟아감으로써 결국엔 평화통일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독일이 통일한 바로 이듬해, 91년 남북한은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에 합의하고 유엔에 동시 가입하는 평화통일 노력의 긍정적 전진을 일궈냈다. 이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역사의 전환점에서의 그러한 남북 관계의 획기적 진전은 남북이 지구촌의 세계화 추세와 궤를 같이한 소산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성과를 가능케 했던 공동의 인식으로 되돌아가는 것만이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는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이 꿈을 남과 북이 함께 이루기 위해, 전쟁이 아닌 평화통일을 향해 응분의 대가를 치를 준비를 시작해야 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즉 평화를 위한 준비가 전쟁보다 훨씬 더 어렵고 비싼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수긍하는 국민적 용기를 불러일으켜야 하는 시점에 이른 것이다.

전쟁을 위한 맹목적 희생이 죽음의 행진을 따라가는 것이라면, 평화를 위한 노력을 우선하는 것은 공동체의 존속과 인간의 자유를 위한 기초를 닦는 데 공헌하는 것이다. 우리가 4반세기 전에 약속했던 민족공동체 통일의 꿈을 되살려 전쟁의 악몽을, 특히 핵전쟁의 저주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겠다는 의도도 바로 거기에 있다.

6·25 66주년을 맞는 바로 이쯤에서 우리는 결코 공동 파멸의 길로 뛰어드는 어리석은 집단이 아니며 평화공존과 통일을 위해선 응분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음을 우리의 이웃과 세계에, 그리고 조상과 후손들에게 확실히 보여줘야 될 것이다. 자유를 지키고자 전쟁도 불사하는 민주 국민이기에 평화의 대가를 치르려 나서야 할 것이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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