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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세에 로펌 관두고 미국 유학, 73세에 물리학박사 땄다


사람 속으로 물리학도 꿈 이룬 강봉수 전 서울지방법원장

“이게 무슨 신문에 날 일인가 싶어 망설였습니다. 다행히 학위를 받았으니 과장하지 말고 내가 경험한 것만 이야기하자 싶어서….”

인터뷰를 요청한 지 두 달여 만에 어렵게 연결된 전화통화에서 강봉수(73) 박사는 여러 차례 “그렇게 대단한 일은 아닌데”라고 말했다. “괜히 나이 먹었다고 공자님 말씀 늘어놓기는 싫다”고도 했다. 2009년 법조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가 65세를 넘긴 나이에 미국으로 물리학 공부를 하러 떠난다고 했을 때도 많은 사람이 ‘대단한 도전’이라 치켜세웠다. 하지만 그는 ‘비밀로 해 달라’며 입단속을 시켰다. “그땐 막 공부를 시작하던 때였으니까. 이룬 것도 없는데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웠죠.”

| 판사 28년, 변호사로 9년 활동
법률정보 DB ‘법고을LX’ 개발
고교 때 꿈 이루려 뒤늦게 미국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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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머시드 캘리포니아대(UC머시드)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 강봉수 박사. 그는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으로 달려가 관련 책을 모두 대출해 밤새 읽었다”고 했다. [로스앤젤레스=오세진 미주중앙일보기자]


그는 성공한 법관이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사법시험(6회)에 합격해 1972년 대구지법을 시작으로 28년간 판사로 일했다. 제주지방법원장·인천지방법원장에 이어 2000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끝으로 퇴임해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고문 변호사로 9년간 일했다.

그러다 돌연 사표를 내고 미국 머시드 캘리포니아대(UC머시드) 대학원 물리학과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마음에 품고 있던 물리학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그 후 7년, 한국에 한 번도 오지 않고 학업에 전념한 결과 지난 15일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국 가면 만날 사람도 많고 공부 리듬이 흐트러질까 봐 일부러 안 갔다”고 했다.

| 7년여 동안 하루 15시간씩 공부
“리듬 안 깨려 한국에 한번도 안 와
안 늙어 보이려 염색, 운동화만 신어”
박사 학위를 받은 소감은.
“함께 입학한 동기 6명 중 제일 오래 걸렸다. 끝까지 쉽지 않았는데 잘 마무리돼 다행이다. 미국에서는 졸업식을 ‘Commencement(시작)’라 부른다. 이제 다시 시작할 때가 온 것 같다.”
박사 논문은 어떤 내용인가.
“전자파(Microwave)에 관한 것이다. 전자파를 한 곳에 집중시키면 강도가 세지면서 수평으로 움직인다. 그렇게 초점화(焦點化)된 전자파의 형태와 모양을 관찰하고, 그것을 입자가속기 등에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가를 연구했다.”
설명만 들어도 어렵다.
“논문도 어려웠지만 그 전에 물리학 기초를 공부하는 게 훨씬 어려웠다. 유학 와서 접한 물리학 이론들이 거의 외계어 수준이었다. 양자역학 같은 것도 미국에 와서 처음 공부했다. 영어도 안 되고 첫 학기엔 수업을 거의 알아듣지 못해 강의 시간엔 어디까지 진도를 나갔는지만 확인했다. 집에 돌아와 참고도서 찾아보며 이해될 때까지 하루 15시간씩 매달렸다. 1년 정도 지나니 조금 나아지더라.”
원래 ‘공부머리’가 좋은가 보다.
“공부머리보다는 시험운이 좋은 편이었는데 그것도 나이 앞엔 어쩔 수 없더라. 시험 직전까지 달달 외웠는데도 시험지를 딱 펼치면 용어고 공식이고 도무지 생각이 안 났다. 처음엔 시험점수도 형편 없었는데, 그래도 늘 커트라인은 가까스로 통과했다.(웃음)”
학창 시절 물리학자가 꿈이었나.
“물리·수학에 관심이 많았다. 고3 때까지 물리학과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우리 학교(청주고) 화학 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갑자기 ‘법대를 가라’고 하셨다. 그때만 해도 부모님 말씀이 하늘 같던 때였고, 나보다 세상을 오래 산 분이니 다 뜻이 있지 않을까 싶어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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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 재직할 때 동료들과 찍은 사진. 아랫줄 맨 오른쪽이 강봉수 박사다. [사진 법무법인 태평양·강봉수]


본인의 뜻과는 달리 들어선 길이었지만 법조인으로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판사 시절에는 대법원 행정처 직원들과 함께 ‘판결문 쉽게 쓰기 운동’을 벌였고 법원도서관장 시절엔 판례·법령 등을 검색할 수 있는 종합법률정보 데이터베이스 프로그램인 ‘법고을LX’를 직접 개발했다. 이 공로로 1996년 법률문화상을 수상했다. 김성중(전 노사정위원장)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은 “(강 박사는) 늘 성실하고 겸손한 분이라 후배들의 존경을 많이 받았다”고 전했다.
편안한 노년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로펌으로 옮기고 나서 주로 로펌 운영에 관련된 일을 했는데 별로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교보문고에 들렀는데 그날따라 과학책 코너에 눈이 가더라. 기하학 책을 한 권 펼쳤더니 신기하게도 고등학교 때 호기심이 다시 샘솟는 걸 느꼈다. 공무원 연금만으로 충분히 살 수 있는 지금이 하고 싶던 일에 도전할 때가 아닌가 생각했다.”
이루지 못한 꿈이 마음에 남아 있었던 건가.
“그렇진 않다. 하고 싶은 일보다 현재 해야 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는 삶을 살았다. 가지 못한 길에 계속 미련을 두면 현실이 붕 떠버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물리학을 다시 공부하겠다는 결단을 한 후엔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원래 유학까지 생각하진 않았는데 절친한 핵물리학자 한 분이 ‘미국에 가면 새로운 기회가 있을 거다’ 하더라. 즉시 영어 학원에 등록해 토플과 GRE를 공부했다.”
직접 소스코딩을 해 ‘법고을LX’를 개발한 걸로 유명하다.
“판례 하나 찾기 위해 그 많은 판례집을 뒤져야 하는 게 늘 힘들었다. 처음엔 개인적으로 쓰려고 만들기 시작했다. 아들이 컴퓨터를 잘했는데, ‘뭐 좋은 방법 없느냐’고 하니 프로그램을 하나 던져 주더라. 그걸로 혼자 만들다 나중에 젊은 변호사 몇이 합류해 완성했다.”
다시 공부를 하니 좋은가.
“좋다. 힘들지만 모르던 걸 하나씩 알아갈 때의 성취감은 대단하다. ‘아이고 이 어려운 게 해결이 되는구나’ 싶으면 얼마나 기쁜지.”
나이 때문에 유학생활에 불편한 점은 없었나.
“미국에선 아무도 나이를 묻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나도 나이를 자연스럽게 잊게 되더라. 고등학교 때 하던 공부를 이어서 하고 있으니 마음도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다. 그래도 너무 늙은이처럼 보이면 안 될 것 같아 한국에선 하지 않던 염색도 하고 운동화만 신고 다녔다. 청바지도 입어 봤는데 그건 불편해서 못 입겠더라.”
건강은 괜찮은지.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오후 10시쯤 자고, 새벽 1~2시에 잠이 깨 다시 두세 시간 공부하고, 한두 시간 더 잔 후 7시에 일어나 등교하는 생활을 7년간 반복했다. 매일 조깅도 거르지 않았다. 그 덕분인지 큰 문제는 없다. 스트레스를 받을 땐 중학교 때부터 배운 클래식 기타를 쳤다. 밥 먹고 소화도 시킬 겸 30분씩 쳤는데 가끔 30분을 넘기면 아내한테 ‘빨리 공부하라’고 혼나기도 했다.(웃음)”
은퇴 후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이 많다.
“경제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면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러면 내가 무엇을 좋아했는지, 꿈이 뭐였는지 기억이 난다. 할 것이 정해지면 과감히 뛰어들어 보는 거다. 나이가 들면 신경 쓸 게 별로 없어 하나에 정진하기가 더 쉽다.”

| UC머시드 연구원으로 지낼 계획
“공부한 걸로 돈벌겠다는 생각 없어
젊은이에게 일자리 양보, 연구 전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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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현지시간) 열린 졸업식에서 박사모를 쓴 강 박사.[사진 법무법인 태평양·강봉수]


강 박사는 앞으로 1~2년간 ‘볼런티어(Volunteer) 연구원’ 신분으로 UC머시드에서 공부할 계획이다. 볼런티어 연구원은 포스트 닥터(박사 후) 과정과 비슷하지만 보수를 받지 않고 개인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는 “일자리는 젊은 사람들에게 양보하고 난 내 공부에만 전념하겠다”고 했다.
 
 

“아직도 공부할 게 많으냐”고 했더니 긴 답이 돌아왔다. “물리학은 ‘세계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학문이다. 이미 기라성 같은 학자들이 많은 걸 알아냈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게 많다. 기왕 공부를 시작했으니 인간이 모르는 영역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데 공헌하고 싶다. 마음이 급하다.”
 
[S BOX] “두 자녀 생물·화학 전공, 내가 물리학 해 과학 세트 완성”

강봉수 박사와 부인 이상순(73)씨는 1남1녀를 뒀다. “판사는 전근이 많은 직업이어서 아이들도 전학 다니느라 학창 시절이 힘들었을 거예요. 학원도 보내지 않고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두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키웠습니다.” 법조계에 있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을 법도 한데 두 아이는 모두 이과를 택했다. 딸 윤나(45)씨는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뒤 병리사로 일하다 지금은 가정주부가 됐다. 아들 영래(44)씨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화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강 박사는 “내가 물리학을 하게 되면서 한집안에 물리·화학·생물 전공 세트가 완성됐어요. 과학을 좋아하는 피가 있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부부에겐 다른 아이들도 있다. 1991년부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온 직후까지 아내 이씨가 운영했던 경기도 여주의 ‘그룹홈(공동생활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다. 뜻을 같이하는 지인 몇몇과 함께 사재를 털어 가정폭력이나 방임 등으로 부모와 분리된 청소년들을 돌봤다. “함께 머물며 살 수 있는 상황은 못 돼 자원봉사하는 사람을 시설에 두고 우리는 주말에만 내려가 아이들을 만났어요. 저는 놀이공원으로 놀러 갈 때 운전기사 역할밖에 한 게 없어요.” 18년간 이곳에서 성장한 아이들만 수십 명. “무사히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까지 한 친구들이 잊지 않고 가끔씩 연락을 해온다”고 했다. 현재는 그룹홈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여성 2명이 물려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영상취재=미주 중앙일보 오세진 기자 oh.seji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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