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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판 짜기보다는 틀 고치는 것이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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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모레 개원하는 20대 국회가 역사의 소명과 국민의 신탁을 받은 비상국회가 되기를 바란다면 너무 무거운 짐을 부과하는 것일까.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와 민족이 처해 있는 심각한 전환의 위기는 모두가 피부로 느끼고 있다. 금년 정초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 한걸음 다가섰고 평화통일로의 전망은 그만큼 흐려졌다. 권위주의 시대를 마감하고 민주화에 성공한 모범으로 꼽혔던 한국의 민주정치는 한 세대의 실험 끝에 과로와 무력증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다. 경제와 사회의 양극화는 성장의 동력뿐 아니라 국민적 자신감마저 흔들어 놓고 있다. 이렇듯 딱한 상황에 대한 국민적 위기 인식을 반영한, 또한 개혁으로 향한 간절한 기대감을 표출한 총선의 결과로 출범하는 20대 국회는 통상의 국회를 넘어 비상국회의 임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총선으로부터 개원에 이르는 지난 6주일을 돌아볼 때, 한국 정치는 아직도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통상적인 정치 관행에 갇혀 있음이 틀림없다. 새로운 3당 체제에 대비하는 당 조직 정비, 원 구성을 위한 인사 조정 등 조속히 처리해야 될 과제가 산적해 있는 가운데 그나마 3당의 원내총무와 정책위의장이 확정돼 대통령과 협치를 다짐하는 모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다행이었다. 그러나 각 당 내부에서 계속되고 있는 계파 갈등을 비롯한 통상적 혼란과 혼선으로 국민이 지시한 비상개혁의 기획이나 일정을 논의할 시간이나 여유는 전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계파 조정이나 정계 개편에 몰두하느라 국가 운영체제의 개혁을 지시한 국민적 합의는 뒷전으로 밀려 가고 있다.

대통령직선제와 단임제를 골자로 한 1987년 개헌과 민주화의 성공은 그동안 여섯 대통령과 여덟 국회를 거쳐 오며 장기 집권과 부정선거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국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민주적 대의정치제도의 확립이나 국가 운영의 효율성과 공정성의 확보라는 차원에선 낙제점을 겨우 면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제도나 국회의 운영 방식에 대한 국민적 회의나 비판은 이미 일상사가 된 지 오래다. 이에 더해 대통령에게 과도한 권력이 집중돼 행정력의 약화 등 정부 운영의 효율성 저하를 초래하는 제도적 결함도 위험 수위에 가까워 왔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특히 입법부와 행정부, 국회와 대통령 사이의 원활한 소통과 협조로 국가 운영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연결고리의 부재는 한국 민주주의의 치명적 약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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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따로, 대통령 따로 가는 국가 운영체제는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데 국민적 합의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인물보다는 제도의 문제다. 20대 국회가 앞으로 1년여 동안에 개헌을 포함한 제도 개혁에 나서지 못하고 내년 대선 국면으로 들어간다면 또다시 제도 개혁에 의한 국가 개혁을 무한정 미룬 채 인물 교체에 맡겨버리는 잘못을 거듭하게 될 것이다. 아무리 각 당의 사정과 정치권의 역학 구도가 어렵게 얽혀 있다 해도 정치적 새판 짜기에만 몰두하기보다는 이번 여름 안에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 9월 정기국회에서 헌법과 선거법 개정을 준비하는 특위를 발족시키는 것이 20대 국회가 출발부터 역사의 소명과 국민의 신탁에 충실함을 보여주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민주정치는 국민이 관심을 갖는 토론과 협의의 참여 과정을 거칠 때 비로소 살아 숨 쉬는 공동체의 운영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헌법이나 선거법 개정 논의에선 4당의 확실한 입장 표명은 물론 각계각층의 활발한 참여가 필수적인 과정이라 하겠다. 내년 대선에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후보자들도 개헌이나 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면 어떤 방향을 선호하는가를, 또는 개헌 없이 현 체제를 지켜 가겠다면 그 이유를 국민들에게 밝힐 정치적 의무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통령 역시 입장 표명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한 세대 만에 대한민국의 민주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키려는 제도적 개혁의 기회이니만큼 대통령도 그의 뜻을 솔직히 국민에게 알려야 하지 않겠는가. 더욱이 국민들이 기대하는 정치제도 개혁은 경제 개혁을 비롯한 국가 발전의 제반 정책을 적극 추진할 수 있는 기반 조성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 모두는 20대 국회의 성공을 기원하고 있다. 그 결과는 나라와 민족의, 우리 국민 모두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한국 정치의 틀을 반듯하게 다듬어 놓고 그 안에서 온 국민의 창의력을 민주적으로 결집시키는 새판을 벌여 가야 한다. 이번 기회가 다 함께 치러야 할 역사적 시험임을 잊지 말자.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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