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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소문내지마···청담·한남동 숨은 '바'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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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자 어두컴컴한 공간에서 성인 남성의 키만 한 책장이 나타났다. 문은 어디에도 없었다. 잠시 두리번거리다 장소를 알려 준 친구에게 급히 전화를 걸었다. “책을 누르면 열릴 거야.” 책장에 꽂혀 있는 책 한 권을 손가락으로 힘껏 누르자 책장이 자동문처럼 옆으로 ‘스르르’ 이동했다. 각종 위스키가 삼삼오오 모여 있는 진열장,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의 현란한 손놀림, 웃고 떠들면서 술잔을 기울이는 중년 남성들의 모습…. 책장이 사라지고 어두운 조명 아래 펼쳐진 광경은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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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를 가로막은 책장에 당황할 필요 없다. 한 권의 책을 누르면 책장이 자동문처럼 열리고 바삐 움직이는 바텐더와 삼삼오오 술잔을 기울이는 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진다. ‘르 챔버’. [사진 오상민 기자]

지난달 30일 찾아간 서울 청담동 ‘르 챔버’의 첫인상은 ‘아무나 오는 곳이 아니다’는 듯한 메시지였다. 메뉴판을 펴자 그런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나마 익숙했던 ‘맥켈란’ ‘글렌피딕’ ‘조니워커’ 등의 이름 대신 처음 보는 위스키로 가득했다.

칵테일도 마찬가지. 퀸비스위즐, 챔버 뮬, 에이징 칵테일…. 한 잔 가격은 대략 3만원. 시중 일반 칵테일바보다 두 배가량 비쌌다. 그럼에도 가게 내부는 빈자리가 없었다. 오전 1시쯤 가게 문을 나서자 책장 밖에는 외국인 대기자 2명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최근 인기를 모으고 있는 서울 청담동과 한남동 등지의 싱글몰트 위스키바들은 이처럼 입장부터 공을 들여야 한다. 일종의 통과의례인 셈이다. 이유가 있다. ‘앨리스’의 김용주 대표는 “미국 대공황 시대에 성행한 ‘스피키지바(Speakeasy Bar)’를 표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스피키지바는 1920~30년대 대공황의 여파로 미국 정부가 금주령을 내리자 수많은 술집이 다른 가게로 위장하거나 간판을 떼는 식으로 비밀리에 영업을 지속한 데서 유래한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에서 이발소로 위장한 술집은 이런 풍경을 단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다. ‘스피키지’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술집에서 조용하고 은밀하게 이야기를 나눈다는 데서 파생된 단어라고 한다.

이런 콘셉트 때문에 이들은 가게 정보가 외부에 공개되는 걸 꺼린다. 한남동의 ‘더부즈’는 영수증 주소란에 ‘어딘지 안 알랴줌’이라고 적혀 있을 정도다. 이곳 관계자는 “손님들에게 가게와 관련된 정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공유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한다. 보도되는 것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입구가 찾기 어려운 데다 가게 정보들이 한정되다 보니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식이다. 그래도 오후 10시 넘어서 가면 대기를 각오해야 할 정도로 찾는 사람이 많다.

입구도 찾기 어렵고 홍보도 하지 않고 고가의 술을 파는데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이유는 뭘까. ‘고급화 전략’이 적중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른 스피키지바의 매니저는 “자연스럽게 손님 관리가 되는 측면이 있다. 누구나 가볍게 들러 술을 마시는 곳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숙명여대 경영학부 서용구 교수는 “극도로 자본주의가 발달한 사회에서 상품을 팔기 위한 핵심 코드는 ‘허영심’”이라며 “스피키지바는 은밀함, 고가의 술(위스키), 수준 높은 서비스 등으로 이런 허영심을 만족시켰다”고 설명했다. 차별화된 서비스에 목마른 도시인들의 서비스 수요에 제대로 응답했다는 의미다.

인기가 높아지면서 신촌이나 연남동 등지에도 스피키지바가 생겨나고 있지만 여전히 청담동과 한남동이 중심지다. 주류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약 30곳이 영업 중이라고 한다. 두 지역의 가게들은 스피키지바를 표방하지만 분위기는 다소 달랐다.

청담동 가게들은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세심한 서비스가 장점으로 꼽힌다. 르 챔버가 대표적이다. 2014년 문을 열자마자 그해 전문가와 동호인들이 선정한 ‘2014 베스트 바 50’에서 1위에 올랐다. 엄도환 대표는 서울 역삼동 리츠칼튼호텔에서 15년간 바텐더와 매니저로 일했다. 그 때문인지 바에 앉을 때는 바텐더가 나와 의자를 밀어 주고 화장실을 직접 안내하는 등 호텔 같은 서비스가 갖춰져 있다. 엄 대표는 “비즈니스 모임으로 찾는 손님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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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꽃집을 가로지르면 ‘앨리스’로 통하는 입구가 나타난다. 아기자기한 분위기로 20~30대 여성에게 인기가 많다. ‘아시아 베스트 바 50’에서 11위에 올랐다. [사진 오상민 기자]

르 챔버 못지않게 인기를 얻고 있는 앨리스는 보다 젊은 층이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3월 영국 주류 전문지 ‘드링크 인터내셔널’이 발표한 ‘아시아 베스트 바 50’에서 11위로 한국 업소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곳 역시 입구 찾기가 쉽지 않다. 평범한 꽃집처럼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꽃을 팔기도 하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이 가면 영락없이 꽃집으로 오해하기 쉽다. 꽃이 진열된 통로를 한참 지나야 술집 입구로 이어진다. 르 챔버보다는 가볍고 밝은 분위기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곳은 사전에 예약하면 여성 손님에게 꽃도 증정한다. 앨리스의 김용주 대표도 하얏트호텔과 메리어트호텔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 김 대표는 “사회 규율에서 해방되는 소설 속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를 구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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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블라인드 피그’는 간판 밑 작은 철제 문이 입구다.

반면 한남동에 자리 잡은 가게들은 다소 투박한 분위기다. 입구부터 달랐다. 작은 골목을 돌아 들어간 뒤 어린이가 통과할 만한 구멍을 찾아 허리를 숙인 채 입장하거나(‘블라인드 피그’) 간판도 없는 허름한 나무 문을 두드리면 매니저가 문틈으로 확인한 뒤 문을 열어 주는(‘스피크이지 모르타르’) 등 실제 금주령 시대 미국의 술집 같은 콘셉트였다.

내부 인테리어도 청담동보다는 소박하고 단순했다. 대부분 홀에 큰 나무 테이블을 놓고 철제 의자를 두는 식이었다. 가게 안에서 시가를 판매하고 흡연이 허용된다는 점도 청담동과 구별되는 부분이다. 음악도 청담동에서는 ‘블루노트’ 계열의 재즈나 조용한 팝음악들이 선곡되는 반면 한남동에서는 록음악이나 한국 가요가 나오곤 했다. 조금 더 큰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며 즐길 수 있었다.

두 지역을 모두 즐겨 찾는다는 최선경(32·회사원)씨는 “청담동 가게들이 요즘 뉴욕 같다면 한남동의 경우 30년대 미국 술집 같다. 이성 친구랑 함께라면 청담동, 친구들과 모임을 한다면 한남동을 가는 게 좋다”고 소개했다.
 
음식상식 싱글몰트위스키, 깊은 맛과 향이 일품

위스키는 맥아(보리)와 기타 곡류를 발효시킨 뒤 증류해 만든 술이다. 이 가운데 맥아만 100% 활용해 만든 것을 몰트위스키라고 부른다. 특히 싱글몰트위스키는 한 증류소에서 두 번 증류한 것을 가리킨다. 깊은 맛과 향으로 인기가 높지만 생산량이 적어 국내 위스키 시장의 4% 정도만 차지한다.

글=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사진=오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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