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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한 향 스스로 줄여 음식의 맛 살려주는 ‘착한 참기름’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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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식탁에 오르는 식재료가 어떻게 변화해 왔고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20년 현장 전문가의 시선으로 점검합니다.

식용유 섞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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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며느리가 품질이 좋다며 보낸 참기름을 받은 어떤 할머니의 항의 전화였다. 저온 압착 참기름 생산 전문업체 ‘지리산처럼’의 정정은 대표는 2012년 창업한 이후 이런 항의를 자주 들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가 생산하는 참기름은 시중의 일반 제품은 물론, 과거에 방앗간에서 짜 먹던 것과도 다르다. 우선 향이 있는 듯, 없는 듯 약하다. 색깔은 콩기름이나 옥수수기름처럼 노란빛이 돈다. 며느리로부터 선물을 받은 할머니가 ‘식용유에 참기름 한두 방울 섞어 향만 흉내 낸 가짜 참기름’으로 생각했을 법하다. 그러나 진짜 참기름이다. 다만 전과 다른 방식으로, 즉 참깨를 저온에서 볶고 압착해 짜낸 참기름이다. 이렇게 하면 기름의 양도 적어지고 향도 줄지만 생산 과정에서 생길 법한 유해물질을 예방할 수 있다.

보통 참기름은 참깨를 세척한 다음 230~270도의 고온에서 고소한 향이 풍길 때까지 15~30분 정도 볶는다. 요즘도 재래시장 방앗간에 가면 삼삼오오 앉아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며 참기름이 다 짜지기를 기다리는 할머니들을 볼 수 있다. 정겨운 풍경의 이면엔 ‘씁쓸한 불신’이 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가짜 참기름 파동’ 탓에 참깨를 볶고 짜는 과정을 직접 봐야 믿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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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깨를 고온에서 볶으면 기름을 많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볶는 온도가 높아질수록 ‘벤조피렌’이라는 1급 발암물질이 나올 확률이 높아진다. 벤조피렌은 직화구이 등 불로 직접 요리할 때도 만들어지고, 자동차 매연이나 담배 연기 속에도 들어 있다. 벤조피렌이 기준치(2.0㎍/㎏ 이하)를 초과해 검출되면 현행법에 따라 해당 식용유지를 회수 조치해야 한다. 최근에는 참기름 제조 과정(필터링)에 벤조피렌 저감 장치가 도입돼 벤조피렌 성분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는 경우는 많이 줄었다.

참깨는 본래 귀한 작물이었다. 재배하는 데 품이 많이 드는 데다 여름이 고온다습한 한반도에서 잘 자라는 작물이 아니기 때문에 옥수수나 콩 농사처럼 대량 수확을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참깨는 자가 소비를 하거나 조금씩 내다 팔 정도만 밭고랑이나 텃밭에 조금씩 키우곤 했다. 부엌에서 가장 귀한 식재료이자 향신료였다.

참깨는 한때 국적세탁을 하기도 했다. 한·중 수교 이후 인천과 중국을 오가는 보따리 장수들이 중국산 참깨를 시골 할머니들한테 팔고 그 자리에서 다시 사들인 뒤 국산 참깨인 양 호도한 것이다. 귀했던 참기름은 농산물 수입 개방 이후 저렴한 중국산 참깨가 쏟아져 들어오면서 값비싼 향신료의 지위를 내려놓게 된다. 요즘은 중국뿐 아니라 인도와 서남아시아,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생산한 참깨까지 쏟아져 들어온다. 이젠 음식에 남용되는 참깨와 참기름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 고소하고 진한 맛 길들여진 식문화
향 첨가한 ‘향신 참기름’사용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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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식문화는 비빔밥부터 각종 볶음까지 참기름을 과하다 싶게 애용한다. [사진 김진영]


삼겹살집이나 비빔밥집 등에서 빨간 양념통에 든 참기름을 볼 수 있다. 그냥 참기름이라 생각하겠지만 대부분 ‘향신 참기름’이다. 향신 참기름은 법적으로 허용된 유사 참기름이지 참깨로만 만든 진짜 참기름은 아니다. 대두유나 옥배유 등에 참깨 향을 첨가해 만든 ‘참기름 맛’ 기름이다. ‘바나나맛’ 우유를 떠올리면 쉽다. 상품 이름을 모호하게 짓고, 성분 표기를 깨알 같은 글씨로 써서 소비자의 착각을 유도한다. 특히 대량으로 참기름을 사용해야 하는 대중음식점에선 이를 알면서도 쓴다. 단가를 따져보면 1000원짜리 김밥에 그렇게 잔뜩 발라 줄 수 없는데, 기꺼이 참기름이라고 착각하는 소비자도 문제다.

우리가 익히 아는 참기름은 고소한 향에 갈색 빛을 띤다. 고소한 향의 참기름을 사용하는 이유는 그 덕분에 밋밋하던 음식의 향이 살아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물을 볶든, 불고기를 재우든 각종 레시피에 ‘참기름 약간’이 빠지지 않는다. 비빔밥을 보자. 당근이며 산나물이며 육회를 넣든 간에 재료를 볶을 때 참기름을 쓰는 것도 모자라 마지막에 비빌 때도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뜨린다. 이렇게 되니 음식 재료가 지닌 각각의 향은 사라지고 ‘진하고 고소한’ 참기름 향만 남는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참기름에 있어서 작지만 바람직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저온 압착 참기름’이다. 서울시내의 작은 방앗간에서부터 멀리 전북 남원, 전남 구례의 작은 공장까지 생산하는 곳이 차츰 늘고 있다.

| 참깨 130도서 짧게 볶아 기름 짜
향·색깔 연하지만 건강에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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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한 향이 적은 대신 식재료 고유의 향과 맛을 살리는 저온 압착 참기름이 서서히 주목받고 있다. [사진 김진영]


저온 압착 참기름은 130도에서 3~4분만 볶는다. 기존 참기름에 비해 온도가 낮고 볶는 시간도 적다. 참깨를 세척한 후 수분이 증발하고 노란빛이 돌 정도까지만 볶는다. 저온에서 볶아 압착한 참기름은 향이 여리며 색깔도 진하지 않고 착유량도 적다. 향을 맡지 않고 색깔만 본다면 콩·옥수수 등의 기름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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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경우 이 참기름을 3년 넘게 먹고 있다. 처음엔 향이 여려 맛이 제대로 날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불고기나 비빔밥을 할 때 전에 쓰던 참기름은 향이 처음부터 확 치고 나왔다. 그게 제대로 된 비빔밥인 줄 알았다. 저온 압착 참기름으로 만든 음식은 참기름의 향이 숨어 있다. 재료가 지닌 본래의 향을 건드리지 않고 받쳐 주는 역할을 한다. 명품 드라마를 보면 아이돌 출신 주연 배우보다 연기파 조연 배우가 드라마의 틀을 잡아주는 경우가 많다. 저온 압착 참기름은 요리에 있어 명품 조연과 같다. 고온에서 볶은 참기름은 재료의 향을 지배하지만 저온에서 볶은 참기름은 재료의 향을 받쳐 준다.

| 올리브유·커피는 볶기 따라 구분
참기름도 이젠 취향따라 선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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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식재료 연구가
‘여행자의 식탁’ 대표

소금이 적정량보다 과하면 짠맛으로 음식을 망친다. 설탕이 많으면 단맛만 느껴질 뿐이다. 참기름도 향이 강하면 음식 전체를 지배하는 폭군이 된다. 요즘은 올리브유도 열을 가하지 않은 것과 가한 것, 즉 엑스트라 버진 오일과 일반 올리브오일로 구분한다. 원두 커피도 볶기에 따라 강배전(다크로스트), 중배전(미디엄), 약배전(라이트) 등으로 가려 마신다. 참기름도 이제는 구분해 먹어야 하지 않을까. 건강은 물론 맛과 향의 차이까지 따진다면 말이다. 콩기름이나 옥수수유에 향만 첨가하고 참기름 행세를 하는 향신 참기름 역시 식탁에서 사라져야 할 때가 됐다.
 
음식상식 갈색 병에 든 참기름, 빛 안 드는 서늘한 곳에 둬야
참기름 병이 갈색인 이유는 빛에 의한 산패(기름이 상하는 현상)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빛·열·산소와 접촉하게 되면 기름 고유의 구조가 깨지고 산패가 진행된다. 산패하면 특유의 향은 사라지고 기름 전 내가 난다. 이 때문에 기름 보관 땐 밀폐를 잘하고 서늘하고 빛이 들지 않는 곳에 둬야 한다. 열이 많은 가스레인지 주변은 금물이다.

김진영 식재료 연구가 ‘여행자의 식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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