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짭짤·오묘한 풍미···스페인선 치맥 대신 앤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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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는 ‘바다의 풀’이라고도 불린다. 세계적으로 흔한 어족 자원인데다 고등어·방어·다랑어 등등 상위 포식자들의 풍부한 먹이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도 유지가 어려워 쉽게 부패하는 생선이기 때문에 과거 우리나라에선 식품 활용도가 저조했다.

반면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 국가들에선 지중해나 유럽 근해에서 잡히는 멸칫과의 물고기들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킨 ‘앤초비(anchovy)’ 조리법이 다양하게 발전했다.

| 멸치 내장·대가리 없애고 소금에 절여
수개월 발효 후 올리브오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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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유에 재워 부드러운 맛을 강조한 앤초비.


이탈리아에서 멸치를 이용한 대표적 요리법 중 하나가 우리의 젓갈과 비슷한 소스다. 폴 프리드먼이 쓴 『미각의 역사』에는 로마시대 요리사들이 즐겨 사용했던 향신료이자 발효 소스인 ‘가룸(Garum)’이 소개돼 있다. 멸치·정어리·고등어 등에 소금을 섞어 통에 담고 한 달에서 석 달까지 효모 작용으로 발효시켜 어즙으로 만든다. 가룸은 베트남의 대표적인 어장 소스인 느억맘(Nuoc mam)과 비교되기도 한다. 느억맘은 바다의 풍미가 느껴지는 짭짤하고 나무 열매 맛도 나는 미묘한 향미가 풍부한 황금빛 반투명 액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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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초비는 유럽에서 다양한 조리법으로 사랑받는다. 기장멸치를 천일염과 월계수잎, 후추 등에 재운 ‘마리네이드 앤초비’.


앤초비 조리법은 소금이나 기름을 이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신선한 멸치에서 머리와 내장, 뼈를 제거하고 소금에 절여 무거운 것으로 누른다. 수개월 동안 그늘진 데서 숙성과 발효를 거친 후 올리브유나 해바라기유에 담가 저장한다. 필요에 따라 마늘·월계수잎·정향·후추 등을 가미하기도 한다.

| 프랑스 ‘콜리우르 앤초비’가 대표적
입맛 돋우는 식전요리에 많이 올라


대표적인 앤초비 절임은 ‘콜리우르 앤초비’다. 프랜시스 케이스의 『죽기 전에 먹어야 할 세계 음식재료 1001』에 따르면 지중해에 면한 프랑스 루시용 지방의 작은 마을인 콜리우르에서 최고의 앤초비가 만들어진다. “콜리우르 앤초비 필레는 짙은 갈색에 질감이 단단하다. 독특한, 살짝 산에서 만든 햄을 연상시키는 향미를 지니고 있으며, 짭짤하고 풍성하고 오래도록 남는 맛이다”고 소개돼 있다. 콜리우르 앤초비는 PDO(유럽연합에서 특정 농산식품의 원산지명을 법규로 보호하는 제도) 인증을 통해 엄격한 품질을 보장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만들어진 앤초비는 프랑스의 오르되브르(본격 식사 메뉴 이전에 식욕을 돋우기 위해 제공되는 한 입 요리)나 앤초비 버터, 혹은 이탈리아의 ‘판자넬라’ 같은 브레드 샐러드와 ‘바냐 카우다(제철 채소와 빵을 찍어 먹는 뜨끈한 소스)’ 등의 재료로 애용된다. 이 밖에도 빵·파스타·피자·브루스케타 등 다양한 요리에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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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시킨 앤초비를 그린 올리브와 곁들인 스페인 바게트


특히 스페인의 타파스나 핀초스(나무 꼬챙이로 고정한 요리) 위에 단골로 올려지는 재료다. 바삭하게 구운 바게트 위에 버터를 얇게 바르고 쫀득하게 숙성된 앤초비를 올려 한 입 베어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맛깔스럽다. 특히 바삭하게 튀긴 앤초비 튀김과 스페인산 마리네이드 올리브, 맥주가 함께 한다면 ‘치맥(치킨+맥주)’ 부럽지 않은 ‘앤맥(앤초비+맥주)’을 즐길 수 있다.

| 한국 멸치는 육수 내거나 회로 먹어
젓갈 담가 김치 맛내는 양념으로


우리나라 멸치의 이름은 고문헌마다 제각각이다. 추어 또는 속어로 멸어(蔑魚)라고 기록되기도 했다. 조선 중기 이후 기록에 따르면 멸치는 하도 많이 잡혀 업신여김 당하는 어종이었고 ‘성질이 급해 뭍으로 나오면 상하기 일쑤’라고 적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등장하는 ‘행어(行魚)’를 멸치로 보기도 한다. 포식자들을 피해 혼비백산하며 해변으로 튀어 오르는 모습을 본뜬 것으로 학자들은 유추한다. 『정조실록 31권』(1790년)에 ‘거제에 사는 탁가(卓哥)의 아내가 올린 호소문에 의하여 멸어(蔑魚)의 세를 배마다 5냥씩 바치는 규정을 영원히 없앴는데, 근래에 멸어라는 명칭을 소어(蘇魚)라고 고쳐 배 한 척의 세를 7, 8냥씩 더 징수하면서 이것을 기본세에 포함하지 않는 것이 폐단이다’는 대목이 있다. 각박한 어민들의 삶에 자잘한 멸치까지 세를 물렸으니 원통한 마음이 오죽했을까.

순조 14년(1814년) 정약전이 저술한 『자산어보』에는 멸치의 다양한 이용 사례가 나와 있다. ‘국을 끓이거나 젓갈을 담그고, 말리기도 하고 혹은 고기잡이 미끼로도 사용한다’ ‘요즘 멸치는 젓갈용으로 쓰고, 말린 것은 양념으로도 쓰지만, 선물용으로는 천하다’ 등이다. 문헌상으로 보면 조선 후기에 이르러 어장 환경의 변화와 어살·그물 등 어업법의 발전으로 멸치 어획량이 급증하면서 적극적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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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젓갈


멸치젓을 이용한 조리법은 19세기 초에 와서야 다양하게 발전했다. 방신영의 『조선 요리제법』(1934년),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1954년) 등에는 ‘메리치젓’ 담그는 법과 젓국지, 통배추 김치와 같은 멸치젓 활용 기록이 나와 있다. 또한 아욱국·토장국·감자조림·풋고추조림에는 말린 멸치가 이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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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멸치(육수용)


오늘날은 멸치 육수가 다시팩이나 조미료로 가공돼 편리하게 사용되지만 사실 전통적인 국과 탕은 소·돼지·닭·꿩 등 고기 육수와 장국이 기본이었다. 마른 멸치 이용이 대중화된 것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조선 어장에 어업 근거지를 설치하면서부터다. 동해·거제·구룡포·군산·추자도·제주도 등에서 거둬들인 멸치의 기름을 뽑거나 쪄서 말려 비료로 사용했는데 자건(?乾) 멸치로 불렸다. 이후 식용으로 보급된 마른 멸치는 우리의 장(醬), 고기 육수와 어울려 더욱 풍성한 국물 맛을 내게 됐다. 메이지(明治)시대에 이르기까지 육식이 금지됐던 일본은 생선으로 밑국물을 내는 방법과 제조법이 발전해 있었다. 침략의 역사가 우리 밥상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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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左), 정신우(右)

오늘날 멸치는 귀하신 몸이다. 4~6월 제철에는 거제·통영·여수·남해·기장·진도 등 다양한 산지에서 회·무침·쌈밥·튀김 등 다양한 일품 요리로 입맛을 자극한다. 마른 멸치 한 줌으로 밑반찬을 만들고 국을 끓여 밥상을 차려내는 주부들에겐 멸치가 풍년이라야 밥상이 풍요롭다. 앤초비이거나 멸치이거나 고맙기는 매한가지다. 너는 이미 맛있는 생선이다.


 
음식상식 앤초비는 바스크 지방 ‘안초바(건어물)’에서 유래
앤초비란 이름은 스페인 북부 바스크(Vasco) 지방에서 건어물을 뜻하는 단어 안초바(anchova)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바스크의 서쪽 칸타브리아는 스페인의 북대서양 연안 칸타브리아해(海)에 접해 있다. 이곳에서 나는 앤초비는 지중해산보다 통통하고 풍부한 향미를 지녀 ‘앤초비의 수퍼스타’로 꼽힌다.

강지영(세계음식문화연구가), 정신우(플레이트 키친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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