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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총선이 안겨준 국가적·국민적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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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총선은 끝났으나 나라와 국민은 정말 어려운 숙제를 떠안게 됐다. 이번처럼 힘든 과제에 대한 논의를 완벽하게 피해 간 선거는 없었던 것 같다. 오직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판을 바꿔야겠다는 민심이 폭넓게 작동하다 보니 결국 나라와 국민에게 남겨진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숙제들뿐이다. 이렇듯 국민의 관심과 선거 이슈 논의에서 외면된 대한민국의 중요한 당면 과제는 무엇일까.

첫째, 전쟁과 평화의 기로에 다시 선 듯싶은 일촉즉발의 남북관계를 어떤 방향으로 처리해 나갈 것인가. 한반도에선 화약 냄새가 나는 것 같다는 이웃 나라 외교부장의 심상치 않은 언급을 들으면서도 당사자인 한국의 선거 과정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이렇다 할 논의가 전혀 없었다. 이 문제의 대처방안과 전략에 관해서는 이미 충분한 논의와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인가?

둘째, 대다수 국민과 언론은 한국 정치와 국정 운영 체제의 효율성이 한계에 부딪쳤다는 결론에 다다른 지 이미 오래다. 모두가 1987년 체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데 광범위한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에 대한 대안 제시가 이번 선거에서는 전혀 없었다.

셋째, 한국 사회와 경제의 근대화 과정이 수반한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는 그 심각성이 점차 한계점에 도달해 가고 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여야가 공히 경제 민주화란 큰 목표를 내세웠던 것은 시의적절했다. 그러나 그 이후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진전이 지지부진하다 보니 국민의 불만은 쌓여만 가는데 이번 선거에서도 어떻게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이뤄 갈 것인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전략을 제시한 예는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총선 결과로 출범하는 20대 국회의 3당 체제는 바로 이 세 가지 중요 과제에 대한 적극적 대처방법과 방향을 마련하는 것이 현 비상시국의 선결요건으로 부상했다. 그것이 곧 판을 바꾸면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민심의 막연한 바람을 구체화하는 첫걸음이 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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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로 국민적 합의의 기반 위에서 남북관계에 대처하는 국가 전략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3당 연립정권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독일의 경우를 참고할 수 있다. 독일 통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1980년대 및 90년대의 독일 정치는 기민당(CDU)·사민당(SPD)·자민당(FDP)의 공고한 정책 협조와 연립정권 운영으로 이뤄졌다. 90년의 통일은 기민당의 콜 총리 때에 이뤄졌지만 사민당의 브란트 총리나 자민당의 겐셔 외무장관 등의 공헌이 만든 합작품임을 잊을 수 없다. 우리도 20대 국회에선 각 당이 국가적 차원에서 통일정책 수립에 참여할 2~3인을 추천해 정책협의그룹을 구성하고 정부, 특히 대통령과 긴밀한 공동작업을 추진하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다.

둘째로는 장기집권과 독재정권의 폐해 방지를 목표로 대통령단임제와 직선제를 핵심으로 한 87년의 개헌은 민주화로의 성공적인 전환에 기여했으나 대의민주주의와 국가 운영의 효율성을 담보하는 데는 심각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국민적 판단에 부딪치고 있다. 내년이면 여섯 대통령, 30년에 걸친 실험이 끝나게 되는데 더 이상 제도 개혁을 지체하지 말고 개헌작업에 들어가야 되겠다. 20대 국회는 통상국회보다 비상국회의 성격이 짙을 수밖에 없다. 개원 즉시 헌법특위를 구성해 지난 18대 국회에서 준비했던 상당한 수준의 보고서를 기초로 하여 공청회 등을 통한 국민의 의견 수렴을 거쳐 개헌 절차를 밟아 나가야 할 것이다. 한국 민주정치가 보다 능률적이고 생산적인 방향으로 약진하는 개혁의 리더십은 누구보다도 대통령이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경제화와 민주화에 이어 명실공히 선진화를 다짐하는 개혁이란 역사적 업적을 국민과 함께 성취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불평등과 불공정의 늪에서 벗어나려는 경제 민주화에 다가가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은 전 국민의 꿈과 땀과 지혜가 함께 어우러졌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이미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의 초기에 강원용 목사,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등 많은 선각자가 우리 사회의 양극화를 걱정하고 인간화를 강조했다. 그동안 우리에게 현저한 부족함이 있었다면 그것은 꿈이나 땀보다도 지혜가, 특히 정치인과 지식인들의 지혜가 모자라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복지와 성장을 동시에 이룩하는 발전 과정에 대한 구체적 설계도와 실현 가능한 정강정책을 국민은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부지런히 지혜를 모아 전 국민의 땀으로 꿈을 이뤄가야겠다.

이홍구 본사 고문·전 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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