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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응원글] 김범준 성대 교수 기고

[이세돌 응원글 | 김범준 성대 교수 기고]
 
이세돌이 졌다. 많은 사람에게 그가 놓는 바둑돌은 이해의 범위를 한참 벗어나있다. 그런 이세돌이 졌다. 잠깐, 그런데 이세돌은 도대체 누구에게 진 걸까.
 
겉모습만 보면, 바둑판 건너의 아자 황이 승자다. 그런데 사실 이분은 모니터 화면의 바둑을 그대로 따라만 할 뿐이다. 저 자리에 앉으면 나라도 이기겠다. 바둑을 좋아하는 친한 친구는 하수인 내게 “왼손으로 바둑을 둬도 내가 너는 이긴다.”고 놀리고는 했다. 왼손, 오른손이 바둑의 승자일 수는 없다.
 
바둑판에 돌을 놓는 결정을 한 무엇에게 이세돌이 진 거다. 그리고 그 무엇이 바로 알파고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물리학자인 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계산한 결과를 논문으로 쓰지만 공동저자로 (아직까지는)프로그램 이름을 적지 않는다(그리고 서운하다는 얘기도 아직 들은 바 없다). 마찬가지다. 구글이 만든 인공물이 이세돌을 이긴 ‘주체’가 되긴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문제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구글의 프로그래머는 알파고가 어떻게 배우고 작동하는 지에 대한 윤곽만 제공했을 뿐이다. 많은 기보를 통해 인간 고수들의 실제 바둑으로부터 배우고, 혼자서 수없이 여러 판을 두는 자기주도 자습도 하면서 “아, 이렇게 두면 이기고 저렇게 두면 지는 구나”를 깨달아 엄청난 실력을 갖게 된 것은 프로그래머가 아닌 바로 알파고이기 때문이다. 진 사람은 있는데 도대체 누가 이겼는지는 아리송한 일이 벌어졌다.
 
만들었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이, 내가 정해준 규칙을 따라 계산해도, 그 결과를 내가 항상 이해할 수 있던 것은 아니다. 사용하는 주체가 도구의 작동원리를 모르는 경우도 많다. 계산기를 두드려 복잡한 사칙연산을 할 때 이 작은 장치 안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 난 알지 못한다. 사람이 만든 계산기가 곱셈을 사람보다 빨리 해도 속상해하지 않던 인간은 이번에 바둑을 두는 기계에게 깊은 상처를 받았다. 

내가 이번 승부에서 느낀 것은, 인간의 직관력에 대해 가지고 있던 근거 없던 자만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인간의 위대한 직관도 결국은 프로그램으로 구현 가능한 유한한 단계의 계산으로 대치할 수 있다는 가슴 아픈 깨달음이다. 인간의 위치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 그리고 인간도 진화의 연속선상에 놓여 다른 생명체 모두와 기원을 공유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경험한, 이번에는 우리가 신비롭게 여겼던 인간의 지성에서 다시 발견한, 익숙하지만 다른 연속성의 깨달음이다.
 
승부가 결정된 후, 복기하려 애쓰는 이세돌을 보았다. 내가 본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다. 나는 그에게서 인간이 가진 ‘알고자함’의 위대함을 보았다. 그리고 바둑의 역사보다 오래 함께한 이런 ‘알고자함’의 힘으로 인류는 알파고를 만든 거다. 이번의 역사적인 사건은 어느 모로 보아도 인류의 승리다. 그리고 이번에 깨달은 겸손함으로, 새의 날개 짓에서 비행을 생각했듯, 사범 알파고, 알사범으로부터 바둑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기를 바란다. 

알파고가, 아니 엄청난 인공지능을 멋지게 만들어낸 사람들이 내민 새로운 시대의 충격적인 첫 수에 어떻게 인류가 답할지는 우리 모두에게 달렸다. 딴사람이 졌는데도 가슴 아파하는 우리 모두를 보며, 난 아직도 인류의 미래에서 희망을 본다. 이제 시작이다. 며칠 만에 성큼 와버린 새 세상에 막 도착한 모두를 환영한다.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세상물정의 물리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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