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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램블 에그’ 달콤짭조름 간 맞아…식감은 흐물흐물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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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여니 달걀이 눈에 띈다. ‘어떻게 해 먹을까.’ 저명한 요리사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한다. ‘달걀과 감자, 버터, 마늘이 있다’고 알리자 ‘에그 샌드위치’ 등 대여섯 가지를 추천한다.

‘프렌치 스타일로 조리하고 싶다’고 덧붙이자 ‘프렌치 에그 파이’ 등 두어 개로 추려 준다. 이 가운데 ‘스크램블 에그’를 선택하자 즉각 4인분용 레시피가 안내됐다.

 여느 요리 선생과 제자의 일대일 교습 상황 같지만 여기서 요리 선생은 다름 아닌 컴퓨터다. 직접 요리해 본 적이 없고 맛도 냄새도 파악하지 못하는 인공지능(AI) ‘왓슨(Watson)’이 주인공이다. 웹 기반 애플리케이션 ‘셰프 왓슨(www.ibm chefwatson.com)’에 접속하면 누구나 이 천재 요리사의 비법을 손쉽게 전수받을 수 있다.

 요즘 AI 하면 나흘 뒤(9일 대회 개막) 이세돌 9단과 세기의 바둑 대결을 펼칠 알파고(AlphaGo)부터 떠올리겠지만 사실 왓슨이 원조 스타다.

미국 IBM사가 개발한 수퍼컴퓨터 왓슨은 2011년 미국의 TV 퀴즈쇼 ‘제퍼디’에서 74회 연속 우승자를 꺾으면서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기계’란 별명을 얻었다.

인간을 뛰어넘는 머신러닝(Machine Learning) 혹은 ‘딥러닝(Deep Learning·인간의 정보 처리 방식을 모방해 컴퓨터가 스스로 판단하고 학습하게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크게 확대된 것도 이때다.

 IBM은 이후 왓슨을 실전형으로 특화해 ‘왓슨 헬스’ 서비스를 내놨다. 의료 관련 지식과 임상시험 결과 등을 수집·분석해 각 환자에게 맞는 치료법을 알려 주고 제약회사들이 어떤 신약을 개발해야 하는지를 일러 준다. 이미 미국의 주요 암센터와 보험사 등이 이 유료 서비스를 활용하고 있다.

 최근 왓슨은 ‘부엌’으로 무대를 넓혔다. IBM은 왓슨이 방대한 양의 요리책·레시피·이론서·통계 등을 흡수하고 스스로 학습하게 함으로써 ‘셰프 왓슨’으로 거듭나게 했다.

셰프 왓슨은 미국 뉴욕의 유명 요리학교 ICE(Institute of Culinary Education) 소속 셰프들과 협력해 지난해 4월 두툼한 요리책도 냈다. 『셰프 왓슨과 함께하는 인지요리(cognitive cooking)』라는 제목의 책에는 65개의 레시피가 담겨 있다.

유명 식음잡지 ‘푸드&와인’은 이 책에 대해 “식재료에 대해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을 제안한다”고 논평했다.

 컴퓨터가 어떻게 이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스티브 에이브럼스 IBM 왓슨연구소 대표는 “왓슨에겐 선입견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영국 가디언지 2015년 3월 17일자). 예컨대 북미에서 사과를 요리할 땐 주로 버터를 활용한다. 유제품을 즐겨 쓰는 북유럽 식문화의 영향을 받아서다.

반면 지중해식 요리에선 튀기거나 구울 때 버터 대신 올리브오일을 주로 쓰는데 여기선 사과를 즐겨 먹지 않는다. 사과 생육에 맞지 않는 기후라서다.

 그런데 왓슨은 ‘올리브오일로 튀긴 사과’를 레시피에 포함시킨다.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버터보다 올리브오일이 사과와 잘 맞기 때문이다. 이렇게 문화적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서 내놓는 레시피는 때로 인간의 그것보다 강렬하게 번득인다.

 웹 기반 무료 애플리케이션 ‘셰프 왓슨’은 요리잡지 ‘보나페티(Bon Appetit)’와 협력한 결과다. 이 잡지에 축적된 1만여 개의 레시피를 분석·학습함으로써 ‘사용자 맞춤형 레시피’를 실시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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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쌍끄’의 이유석 셰프가 IBM ‘셰프 왓슨’의 레시피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었다. 첫 번째 재료로 달걀을 선택하자 왓슨은 궁합이 잘 맞는 감자를 추천했다. 이 셰프는 “요리에 자신 없는 이에게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중앙일보 요청에 따라 ‘루이쌍끄’(서울 신사동)의 이유석 오너셰프가 왓슨 테스트에 나섰다. 프렌치 요리 15년 경력의 이 셰프는 처음 대하는 AI 요리사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달걀을 선택하니 감자를 추천하네요. 둘이 궁합이 좋죠. 기본기가 돼 있네요.”

 이 셰프는 ‘스크램블 에그’를 조리하면서 불의 세기부터 순서까지 왓슨의 요리법을 엄수했다. “간단해 보여도 불의 세기와 젓는 정도 등에 따라 맛과 모양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요리”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8분 후 왓슨 표 스크램블 에그가 완성됐다. 한입 떠먹어 보니 버터와 마늘 향이 은근히 코끝을 자극하는 가운데 달콤짭조름한 간이 균형을 이뤘다. 다만 식감이 좀 흐물흐물하다 싶어 아쉽다.

 이 셰프는 “본래 스크램블 에그는 크림이나 우유를 넣어 질감을 조절하는데 레시피엔 그런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프렌치 스타일의 평균을 제시한 것 같은데 한국인 입맛과 한국 식재료에 따른 변형이 필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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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다가 왓슨이 제시한 모든 레시피가 바로 실행 가능한 것도 아니다. 예컨대 ‘에그 포트파이’에는 오리 가슴살이 필요한데 이쯤 되면 주재료가 달걀인지 오리고기인지 헷갈릴 정도다. 이런 고난도 요리를 피하려면 조건 검색어에 ‘쉬운(easy)’을 추가하면 된다.

알레르기가 있거나 기피하는 식재료를 ‘빼기’ 형태로 제외할 수도 있다. 이렇듯 왓슨은 사용자의 개선 요구를 반영해 끊임없이 업데이트되고 있다.

 이 셰프의 총평은 왓슨이 “요리에 자신 없는 일반인에게 좋은 가이드가 될 수 있다”는 것. 또 자신과 같은 전문가에게도 일정 부분 도움을 줄 것 같다고 했다. “왓슨이 보여 주는 다양한 음식 재료의 궁합을 참고하면 저만의 새로운 레시피가 가능할 것 같아요.”

 AI 요리는 부엌까지 진출한 4차 산업혁명의 일부다. 이 밖에 활발한 분야는 요리 보조 로봇이다. 미국의 ‘몰리 로보틱스’는 인간 셰프의 손동작을 그대로 카피해 부엌에서 활동하는 로봇 팔을 제작했다. 거품기·분쇄기 등 주요 요리도구를 입력된 절차에 따라 다루고 음식을 만들어 낸다. 약 2000개에 이르는 레시피도 입력돼 있다. 업체 측에 따르면 이르면 2018년 7만5000달러(약 9000만원) 정도에 보급될 거라고 한다.

 왓슨이나 로봇 팔 ‘몰리’가 전자레인지처럼 필수적인 주방 보조로 자리 잡게 될까. 서울대 이기원(식품생명공학과) 교수는 “기술이 융합 발전한다면 2030년 이내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렇다고 인간의 부엌이 로봇에 점령되는 것이냐. 그건 아니죠. 알파고가 지금 단계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인간의 바둑 기보를 전수시켜야 했듯 여전히 로봇의 데이터는 인간에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요리 서비스의 99%를 로봇이 대체하게 된다고 해도 인간이 1%의 창의성을 리드하는 한 공존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왓슨의 ‘스크램블 에그’ 레시피(4인분)
● 준비물 : 계란 7개, 감자 1개, 마늘 6쪽, 버터, 소금, 후추, 허브
● 깨끗이 씻은 감자를 끓는 물에서 삶는다.
● 삶아진 감자는 물기를 제거한 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허브를 뿌려둔다.
● 중불에서 달군 팬에 버터를 녹인 뒤 미리 풀어둔 계란을 넣는다.
● 계란을 3분간 저어주며 익힌다.
● 삶은 감자와 버터를 중불에서 볶은 뒤 익힌 계란과 함께 접시에 담는다.

[S BOX] 의상 코디, 초고층 건물 안전관리도 인공지능이 척척

매일 아침 옷장 앞에서 “오늘은 뭘 입지” 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온다. 개인 취향에 맞춰 코디를 해 주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 덕분이다. 가령 호주 기반 웹사이트 www.myprivatestylist.com 등에선 자신이 보유한 옷과 평소 자주 입는 차림의 사진을 등록하면 취향을 파악해 비슷한 코디를 추천해 준다.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의 사진을 여러 장 등록하면 사이트는 선호 스타일에 ‘회색과 갈색’ ‘티셔츠와 아우터’ 등을 저장한다. 이후 비슷한 상·하의와 신발 등의 조합 결과를 보여 준다.

옷들 간의 색깔 연관성을 계산해 어울림 정도를 수치화할 수도 있다. 아직은 교과서적인 코디 수준이지만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사이트의 ‘패션 안목’도 발전하고 있다.

이 같은 프로그램엔 ‘컴퓨터 시각(computer vision)’ 원리가 사용된다. 컴퓨터가 물체의 이미지를 분석해 화상 처리 및 분석 과정을 거쳐 정보를 생성하는 기술이다.

포스텍 한준희(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보통 사진 한 장이 300만 개의 숫자 조합으로 이뤄지는데 여러 장의 사진을 분석해 새로운 결과를 분석할 정도로 기술이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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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거·건축 분야에서도 AI는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실시간으로 건물을 관찰하고 지진이나 붕괴 등 건축물에 위험 상황이 생기면 관리자에게 이상 여부를 전달하는 ‘SHM(Structural Health Monitoring)’이 대표적이다.

특히 관리가 어려운 초고층 건물의 경우 지진계·풍향계·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등을 설치해 건물의 안전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서울대 장병탁(컴퓨터공학과) 교수는 “현재 주거·건축 분야의 AI는 생활의 편리성 및 안전성과 관련된 요소들을 조정하고 이에 대한 대응방안까지 제안해 주는 수준”이라며 “기술이 상용화하면 일부 건물 뿐 아니라 일반 주택과 아파트 같은 주거 분야에도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혜란·김선미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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