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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미인데 왜 맛없지?…품종 확인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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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식탁에 오르는 식재료가 어떻게 변화해 왔고 어떻게 변해 가는지를 20년 현장 전문가의 시선으로 점검합니다.

‘경기미(米)가 맛있다’고 하면서도 정작 맛있는 품종인 ‘일품’은 모른다. 일품은 농촌진흥청에서 지정한 최고 미질(米質) 12종 중에서 가장 밥맛이 좋다고 알려진 품종이다.

좋은 쌀 산지로 소문난 이천·여주를 지나는 38번 국도변이나 양평을 통해 춘천 가는 3번 국도변에는 많은 ‘밥집’이 있다. 식당마다 수많은 반찬(게장, 갈치조림, 불고기가 주요 메뉴다)으로 사람들을 유혹하지만 정작 ‘밥맛’을 내세우는 곳은 드물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쌀 품종이 300여 가지에 이르지만 품종을 알고서 쌀을 고르지 않는다. 익숙한 지명이나 뜻 모를 브랜드, 보다 저렴한 가격 쪽에 손이 뻗는다.

한국인은 늘 밥을 먹고 있지만 밥의 맛은 식사 자리에서 ‘찬밥’ 신세다. 쌀과 밥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 때문이다. 고기를 먹을 때는 등급, 산지, 사육 환경, 굽는 법 등 여러 가지를 따지고 먹는다. 그런데 밥은 그냥 먹는다. 조금 까다롭게 구는 수준이 국내산인지 햅쌀인지 구분하는 정도다.

20년간 쌀 육종을 연구한 ㈜씨아씨드 정우현 대표는 미질을 결정짓는 데는 품종이 40% 이상이라고 단언한다. 그 외에 토양·물·기온·일조량 등이 조금씩 관여한다고 한다. 귤화위지(橘化爲枳), 즉 강남의 귤을 강북에 심으면 탱자가 되는 것처럼 풍토가 달라지면 그 품종의 특성도 변한다.

예를 들어 강원도 철원의 오대쌀은 조생종 쌀이다. 일조량이 상대적으로 적은 지역에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육종되었기 때문에 강원도 풍토에 맞는 품종이다. 그래서 맛있기로 소문난 오대쌀이라 해도 남쪽 평야 지대에 심으면 그 밥맛이 나오지 않는다.

1970년대 식량 자급(증산)에 일조했던 통일벼는 밥맛보다는 증산이 목적인 품종이었다. 솔직히 밥맛은 따질 수도 없는 수준이었다. 다수확품종인 통일벼가 전국적으로 심어지면서 배고픔은 해결됐다.

그런데 그 후 도입된 일본 품종 ‘아키바레’가 통일벼와는 확연하게 다른 ‘찰진 밥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통일벼는 인디카종(동남아에서 재배되는 쌀, 일명 안남미)이 모태였기 때문에 한국인의 입맛에 익숙한 자포니카종 쌀들과는 미질이 달랐다.

지금은 미질 중심의 품종인 ‘일품’ ‘칠보’ ‘호품’ ‘삼광’ ‘운광’ 등이 산지 특성에 맞게 지속적으로 육종되고 있다. 모두 자포니카종이 모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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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에는 여러 성분이 관여하지만 그중에서도 주성분인 전분의 영향이 가장 크다. 쌀의 전분은 아밀로오스와 아밀로펙틴 두 가지다. 아밀로오스 함량 유무에 따라 찹쌀과 멥쌀로 분류한다.

찹쌀엔 아밀로오스 함량이 거의 없고, 보통 밥쌀로 분류하는 품종들은 아밀로오스 함량이 17~20%다. 아밀로오스 함량이 높을수록 소화가 빨리 된다.

동남아시아에서 재배되는 인디카종(쌀 생산량 기준으로 전 세계 90%가 인디카종이다)은 아밀로오스 함량이 20%가 훨씬 넘는다. 동남아시아 등으로 여행 갔을 때 밥을 먹으면 금세 허기가 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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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밀로오스 함량이 낮은(12%) 골드퀸 3호 품종 쌀(왼쪽)로 밥을 지으면(오른쪽) 찰진 식감에 구수한 향이 난다. 쌀을 고를 때는 브랜드보다 품종을 따져 사야 ‘밥맛’이 산다. [사진 김진영]


최근에는 아밀로오스 함량이 9~13% 정도인 품종도 개발되었다. 이런 품종을 ‘반찹쌀계’ ‘저아밀로오스 쌀’이라고도 한다. 대표적 품종으로 일본에서 도입한 ‘밀키퀸’과 국내 육성 품종인 ‘진상미’ ‘백진주’ ‘골드퀸 3호’ 등이 있다. 아직까지 많은 곳에서 재배되지는 않는다. 밀키퀸은 철원군 동송면, 충남 홍성군 홍동면 등지에서 재배된다.

홍성군 홍동농협의 주홍진 팀장은 10여 년 전 농민들과 협의해 밀키퀸을 재배하기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고 한다.

기존에 재배했던 ‘추청’보다 벼의 키가 커서 바람이 심할 때 더 많이 쓰러지고 비료의 시비량(작물 재배 시 최대 수량을 거둘 수 있게 비료 양을 정하는 기준)이 맞지 않아 알곡이 영글지 않았다. 시행착오 끝에 지금은 찰지고 맛있는 밥맛을 내고 있다.

경북 안동에서 재배되는 백진주는 아밀로오스 함량이 낮아 현미밥으로 해도 껄끄럽지 않다. 그러다 보니 현미로만 유통된다. 충남 서산 등에서 재배되는 골드퀸 3호는 12%의 저아밀로오스 함량에 구수한 향이 더해진 쌀이다.

필자는 집에서 매일 돌솥으로 밥을 짓는데, 골드퀸 3호는 봉지를 뜯을 때부터 구수한 향이 난다. 돌솥이 뜨거워지고 밥에 김이 나기 시작하면 그 향은 더욱 짙어져 온 집안에 퍼질 정도다.

음식은 입보다 눈으로, 눈보다는 코로 먼저 먹는다. 향이 좋을수록 음식 맛이 깊어진다. 골드퀸 3호로 지은 밥은 알갱이 하나하나에 맛과 향이 가득하다. 이제껏 직업상 여러 종의 쌀을 먹어 보았는데, 가장 맛있다고 평가하는 쌀이다.

이 품종은 히말라야 야생벼와 국내 재배 품종을 교배해 20년에 걸쳐 육종해서 얻은 결과다. 최근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 동안 국내의 쌀 품종은 다양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의 선택은 품종이 아닌 지역 혹은 가격이다.

게다가 농민들이 지역과 용도에 맞는 쌀을 열심히 재배해도 막상 수매와 도정 단계인 미곡종합처리장에서는 보관 문제를 핑계로 품종이 다른 쌀을 혼합해 보관한다. 그렇게 도정한 쌀을 ‘혼합미’라 표시해 내다 파니, 품종과 용도가 제각각인 쌀이 섞여 있어 밥맛이 제대로 날 리가 없다.

심지어 혼합미 중에서는 수입쌀을 섞어 유명 산지의 명칭을 붙이고 불법 유통하는 경우도 있다. 혼합미로 밥을 한 식당에서 스테인리스 뚜껑에 닫혀서 나오는 공깃밥은 따뜻하긴 해도 향은 이미 죽어 있다.

집에서 전자레인지에 밥을 데워 먹을 때도 그렇다. 향기가 사라진 밥맛은 우리를 매혹시키지 못하고 반찬에 밀려 항상 뒷전이다. 우리는 지금 밥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 쌀로 가장 맛없는 밥을 해 먹고 있는 셈이다. 쌀 소비 감소에 맛없는 밥이 일조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밥맛이 좋은 쌀을 고르는 방법은 간단하다. 단일 품종을 고르고, 도정 일자가 가까운 것으로 고르면 된다. 더 욕심을 내 골드퀸 3호 등 저아밀로오스 쌀을 고르는 것도 좋다. 돌솥, 최신형 압력밥솥 등 밥 짓는 도구는 그저 도구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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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식재료 연구가 ‘여행자의식탁’ 대표

최우선은 맛있는 쌀이다. 밥상에서는 밥맛이 먼저다. 한국인은 밥심으로 산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밥심도 밥맛이 있어야 제대로 나온다.

한식의 세계화, 집밥, 혼밥(혼자 먹는 밥) 등 식사문화 전반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지만 정작 ‘쌀’을 이야기하는 이는 드물다. ‘밥맛’을 먼저 논하는 이가 많아졌으면 한다.

김진영 식재료 연구가 ‘여행자의식탁’ 대표

음식상식 갓 도정한 쌀을 소량 구매해 밥 지으면 가장 맛있다

쌀 구매 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종과 도정 날짜다. 쌀은 도정 후 보름 정도 지나면 산화가 진행돼 아무리 좋은 쌀이라도 밥맛이 떨어진다. 단일 품종에 5㎏ 정도 소포장을 사서 갓 도정된 쌀로 계속 교체 구입하는 게 좋다. 인터넷을 통해 도정한 다음 날 쌀을 받을 수 있는 경로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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