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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 맛나요] 먼 나라 이웃 입맛 ③ 육개장 vs 굴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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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육개장을 연상케 하는 헝가리식 ‘굴라시’. 국물에 찍어 먹도록 버터 바른 바케트를 구워서 곁들였다. [요리·사진 정신우]


한국과 다른 나라의 닮은꼴 요리를 통해 세계 각지의 음식문화의 역사를 되돌아 봅니다.


2년 전 이맘때, 충격적인 비보가 전해졌다. 우리의 친구이자 한식 세계화로 종횡무진으로 활동하던 윤정진 셰프가 급작스레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이었다. 고 윤정진 셰프는 여러 음식 중 유난히 육개장에 대한 애정이 돈독했다. 글로벌 한식 메뉴를 고심하며 개발할 때도 육개장이야말로 세계인의 입맛을 공략할 수 있는 메뉴라며 손꼽았다. 맵고 깊으며 여운이 긴 감칠맛이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에게도 감동을 전해준다는 주장이었다.

 요즘 육개장은 상가 빈소에서 접하는 해장국 정도로 인식된다. 윤 셰프는 그것을 안타까워하며 육개장 레시피에 전념했고, 맛있는 육개장 전문점들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12월은 애달픔과 함께 윤 셰프에 대한 그리움이 한 그릇 육개장으로 떠오르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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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개장

 육개장은 건강을 위해 ‘복달임(삼복에 보양음식을 먹고 시원한 물가를 찾아가 더위를 이기는 일)’으로 즐기던 ‘개장국’에서 유래를 찾는다. 1800년대 말 『규곤요람』이나 『경도잡지』와 같은 세시풍속지에도 육개장 끓이는 법이 소개돼 있다. 다만 이것은 육개장의 모태가 되는 개장국[狗醬羹]을 만드는 법이다.

 개고기를 대신해 쇠고기로 끓여 내어 ‘대구탕(代狗湯)’이라 부르기도 한 내용은 『조선상식문답』(1946)에 나와 있다. 최남선(1890~1957) 선생이 서술한 이 책은 육개장을 대구 명물로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맵고 새빨간 육개장은 1960년대 이후의 일이다. 과거 서울 종로의 해장국집들 메뉴는 장국밥·돼지국밥·설렁탕과 같은 ‘탕반(湯飯)’이 주인공이었다. 모두 구수하고 뽀얗고 순한 국물이 바탕이 돼 속을 달래주고 허기를 채워주었다.

 반면에 알싸하고 매운맛이 혀끝에 찰싹 달라붙는 오늘날의 육개장은 대구 육개장에서 시작했다. 고춧가루 대신 매콤한 고추기름이 특유의 매우면서도 시원한 맛을 낸다. 옛 서울식 육개장 맛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보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육개장을 선호한다. 진한 사골 육수에 고사리·토란대·대파를 넣어 국물을 푹 끓여내고 기호에 따라 양념한 고기 외에 당면이나 달걀 물을 풀어 넣기도 한다. 근래의 육개장은 너무 매워서 자극적이다. 그나마 이 육개장조차 제대로 만들어내는 식당을 찾아보기 힘들다.

 충남 천안, 경북 구미·안동, 경기도 안성, 전북 전주 등 서울과 대구를 포함한 전국 곳곳에 유명 육개장 전문점들이 있다. 육개장 국물은 쇠고기의 감칠맛과 채소가 어우러지면서 칼칼한 고추 맛이 조화를 이루는 게 포인트다. 언뜻 매운맛은 한국인만의 입맛이라고 여기기 쉽지만 멕시코를 비롯한 남미와 튀니지·스페인 등 지중해권, 그리고 인도·태국 같은 아시아권에서도 제각각 매운맛을 즐긴다.

 매운맛이 들어 있는 한 그릇 음식들 중 굴라시(Goulash)는 동부 유럽에서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즐겨 먹는다. 특히 유학생 사이에서는 향수를 달래주는 음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굴라시는 수프와 스튜의 중간쯤 되는 요리로 헝가리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헝가리어로 구야시(Gulyàs)라고도 부르는데 소떼라는 뜻의 구야(Gulya)와 소떼를 모는 목동인 구야시(Gulyàs)에서 유래했다. 9세기 헝가리에 위치한 왕국의 목동들이 양의 위 주머니를 이용해 굴라시를 담고 먼 길을 떠돌면서 먹었다고 알려졌다. 당시 헝가리는 양질의 소들로 유명했다. 목동들은 유럽 최대 우시장이 열리는 오스트리아와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베네치아 등지로 소떼를 몰고 가 팔곤 했기에 굴라시는 그들이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소중한 음식이었다.

 굴라시에는 양고기나 돼지고기 등도 사용하지만 전통적으로 쇠고기 혹은 송아지 고기를 주로 쓰곤 했다. 고기에 양파·마늘·당근과 같은 채소와 파슬리·월계수잎·타임이나 캐러웨이 씨앗 같은 향신료를 더하고 가장 중요한 재료인 파프리카를 넣는다.

 파프리카는 멕시코에서 출발해 스페인을 거쳐 유럽에 들어온 고추의 일종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피멘토라 불렸는데, 16세기에 헝가리를 비롯한 유럽 전역에 전파되면서 헝가리인들에 의해 파프리카로 널리 알려졌다(요즘 우리나라에서 먹는 파프리카는 피망의 교배종으로 전혀 맵지 않은 채소이니 혼동하지 말자).

 오늘날 헝가리를 이룬 마자르(Magyar)족은 중앙아시아계 기마민족으로 아시아인의 피가 흐른다. 그래서 매운맛을 선호하는지 몰라도 매운맛의 배경은 전혀 다르다. 일본에서 전래된 고추가 우리 밥상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면 헝가리에는 붉은 보석으로 불리는 파프리카가 효자다.

 파프리카 산지로 유명한 헝가리 칼로차 계곡에선 수확 시즌이 되면 다양한 색깔과 종류의 파프리카가 전통적인 기법에 따라 말려져 가루가 된다. 세계에서 으뜸가는 파프리카는 단순히 맵기만 한 것이 아니다. 달고 맵고 짜릿하고 시원하며 청량감이 도는데 향기롭기까지 하다. 우리나라 고추가 아삭하고 긴 여운을 지닌 적당한 매운맛과 쓰지 않고 개운한 맛을 지닌 것처럼 헝가리의 파프리카 역시 그만의 마력을 지니고 있다.

  굴라시의 매운맛은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다. 은은하게 모든 것을 품어 주는 느낌은 소설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의 뽀루뚜가 아저씨 같다. 아낌없이 내어주는 채소의 풍미와 녹진한 쇠고기 국물이 어우러져 마음을 토닥이는 온기가 느껴진다. 파프리카의 칼칼한 매운맛에 진한 고기 국물, 은은한 향신료가 합쳐진 굴라시에 밀가루 혹은 감자를 넣어 농도를 걸쭉하게 하고 작은 수제비와 흡사한 계란 반죽의 면을 넣어 풍성하게 즐기기도 한다. 굴라시는 헝가리뿐 아니라 오스트리아·크로아티아·독일·체코·폴란드 등 동부 및 중부 유럽에서 저마다 다른 비법으로 즐겨 먹는 겨울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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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세계음식문화연구가·왼쪽), 정신우(플레이트 키친 스튜디오)

 2014년 한국관광공사가 한국인에게 잘 맞는 해외 음식 7선을 발표했는데 그중에 굴라시가 있다. 헝가리나 우리나라 모두 외세 탄압을 뚫고 격렬한 투쟁과 헌신을 통해 오늘날을 얻어냈다. 두 나라의 매운 음식은 지치고 힘겨운 우리들 몸과 마음에 보내는 투박한 응원 같다. 부드럽게 매운 굴라시 한 그릇이나 뜨거울 때 밥 한 공기 말아넣고 훌훌 불며 먹는 칼칼한 육개장 모두 오늘을 사는 이들을 위한 애환의 음식이다.

강지영(세계음식문화연구가)
정신우(플레이트 키친 스튜디오)


음식상식 - 재래종 시금치는 지금이 가장 맛 좋을 때

사시사철 나는 개량종이 아니라 포항초, 즉 재래종 시금치는 가을에 심어 겨울에 수확한다. 재래종에 있는 수산 성분이 칼슘과 결합하면 요로결석을 일으킨다고 꺼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시금치를 데치면 수산이 거의 물에 녹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데칠 때 뚜껑을 열어놓으면 녹색이 잘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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