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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 맛나요] 연말병에 축 처진 당신, 오늘 매운맛 좀 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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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 요리 전문점 ‘시추안하우스’의 비프 마라탕. 쓰촨 산초가 들어가 입안이 아리면서 입술이 마비되는 매운맛을 느낄 수 있다. [사진 시추안하우스]


 매운맛은 객기다. 겁 없이 덤비는 상대에게 “매운맛 좀 볼래?!”라고 말하는 건 권유가 아니라 위협이다. 당신은 불타는 듯 빨간 음식에 이미 움찔했다. 음식은 손짓한다. “덤빌 테면 덤벼봐.” 투우사의 빨간 깃발로 돌진하는 황소처럼, 당신의 수저는 맹목적으로 내달린다. 맵다. 눈물 난다. 그래도 난 강하다.

 매운맛은 통증이다. ‘맛보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매운맛이란 없다. 당신의 혀는 단맛·쓴맛·짠맛·신맛·감칠맛밖에 모른다. 고추 먹고 맴맴 하는 아이들은 맛이 좋아서가 아니라 맛에 놀라서 뜀박질한다. 점막 등 입안 전체를 자극하는 캡사이신(capsaicin)이 통각세포를 일깨운다. 짜릿하다. 얼얼하다. 그래도 난 참는다.

 매운맛은 중독이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게 금연이라는 농담처럼, 당신은 매운 음식을 끊었다가 다시 먹기를 반복한다. 캡사이신에 놀란 뇌가 천연진통제인 아드레날린과 엔도르핀을 분비해내면서 불러오는 쾌감 때문이다. 뻘뻘 땀 흘리니 혈액순환도 잘된다. 시험 스트레스, 직장인 월요병이 매운 음식 한 그릇에 달아난다.

 한국인은 매운맛을 아는 민족이다. 고춧가루·고추장으로 간한 음식 천지다. 고추가 도입된 것은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무렵으로 추정된다. 그전에도 마늘과 쑥을 먹고 인간으로 거듭난 웅녀 신화가 일러주듯 매운맛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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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발 내민 쭈꾸미’의 쌈 싸 먹는 차돌쭈꾸미(위)와 ‘고릴라 스테이크’의 매운 국물 스테이크.

 여기에 요즘 색다른 매운맛이 더해졌다. 중국 쓰촨(四川) 요리로 대표되는 ‘마라(麻辣)’다. 마라란 중국어로 ‘맵고 얼얼하다’라는 뜻이다. 이 매운 느낌이 우리가 여태 먹었던 매운맛과 다르다. 볶음 요리인 마라샹궈나 샤브샤브인 훠궈 모두 기묘하게 얼얼하다.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이제까지 매운맛은 어디서 온 것일까.

 # 입술이 마비될 듯 아린 맛=쓰촨 요리에서 매운맛의 주역은 ‘쓰촨 산초(학명 Zanthoxylum simulans)?다. 한국에서 산초(山椒)라고 불리는 것(학명 Zanthoxylum schinifolium)과 다른 종류다. 쓰촨 지방을 대표하는 향신료로 초피나무 열매다. 여기 3% 포함된 하이드록시 알파 산쇼올(hydroxy alpha sanshool)이라는 성분이 얼얼함의 주역이다.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은 속이 타면서 열이 오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성분은 신경세포가 열 감각을 받아들이는 수용체 TRPV 중 43도 이상의 열을 감지하는 TRPV1을 자극한다. 마치 고온으로 피부에 화상을 입는 것과 같은 자극이다.

 반면 쓰촨 산초의 매운맛은 입안이 아리면서 입술이 마비되는 느낌이다. 영국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연구팀에 따르면 산쇼올 성분이 든 산초액을 입술에 발랐을 때 초당 50회 진동(50헤르츠)하는 듯한 자극을 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진동은 피부 진피에 있는 돌기 안에 위치한 마이스너소체(촉각소체)를 자극한 것으로, 마이스너소체는 피부에서 떨리는 자극에 반응한다. 대신 산쇼올 성분은 산초를 말려 가루를 낼 경우 공기 중에 증발되어 없어져 버린다. 추어탕에 넣는 산초가루에서 얼얼한 맛을 느끼기 힘든 이유가 이 때문이다.

 이 밖에도 쓰촨 요리에는 태국고추, 인도고추, 한국의 청양고추 등 다양한 향신료가 들어가 특유의 맵고 얼얼한 맛을 낸다. 쓰촨 요리 전문점 ‘시추안하우스’의 정회재(메뉴기획담당) 부장은 “배 속까지 아리기보다 입안에서 얼얼하다가 진정되는 게 쓰촨 매운맛의 특징”이라며 “새콤달콤한 궈바오러우(베이징식 탕수육)나 망고새우와 곁들여 먹으면 중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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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매운족발

 # ‘월남 땡초’ 유행하며 매운맛 열풍=‘한국의 매운맛’을 대표하는 청양고추는 1985년 유일웅 박사팀이 태국고추와 재래종 고추를 교잡해 개발했다. 원광대 식품영양학과 이영은 교수는 “캡사이신 함량을 통해 매운맛 정도를 측정하는 스코빌지수(Scoville heat unit, SHU)상 청양고추의 매운맛은 4000~7000SHU정도로 태국고추(5만~7만SHU)의 10분의 1 정도”라고 말했다. 일명 쥐똥고추라고 불리는 태국고추는 직경 1㎝에 길이 5㎝ 정도로 작고 하늘을 보고 서 있는 독특한 형태다. 재배 지역에 따라 베트남고추가 되기도 하며 ‘월남 땡초’라고도 불린다.

 고추 건조·제분 공장 두리손팜스(충남 아산)의 오정석 사장은 “7~8년 전부터 ‘더 매운맛’을 찾는 사람들이 확 늘면서 베트남고추 수요가 늘었다”고 기억한다.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매운족발집’이 베트남고추를 섞어 쓰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창신동 시장 안에서만 20여 년째 평범한 족발집을 하다가 2007년쯤 매운맛 양념을 시작했다. 청양고추에다 눈물 나게 매운 베트남고추를 살짝 첨가해 숯불로 구워냈다. 신개념 매운 족발은 입소문을 통해 TV 맛집으로 유명해졌고, 10평도 안 되던 가게가 지금은 별관까지 두고 있다. 어머니에 이어 경영을 맡은 정명길(37) 사장은 “고춧가루 도매상이 ‘더 맵고 향이 좋은 베트남고추가 있는데 써보라’ 해서 넣게 됐다”면서 “섞는 비율을 바꿔가며 ‘알맞은 매운맛’을 찾았고, 지금은 손님 70%가 매운 양념을 주문한다”고 말했다. 족발 판매량이 일일 500㎏에 이른다.

 # 매워서 먹고 달래려고 또 먹고=한국인 1인당 연간 고추 소비량이 4㎏, 매운 라면의 연간 판매량이 8억 개에 이른다. 소셜커머스 업체 티켓몬스터가 매달 판매하는 3000여 개 맛집 상품 중에 매운맛 전문 음식점만 100여 개나 된다.

 매운 맛집들은 대체로 ‘매운맛’ 단계를 선택하게 해준다. 매운 국물 스테이크로 유명한 고릴라 스테이크(서울 신림동)는 0~3단계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청양고추·이탈리아고추(페퍼론치니)·태국고추를 함께 조려 장처럼 만든 핫소스로 조절한다. 김승규 사장은 “양식을 싫어하던 아내가 자기 스타일로 스테이크를 만들어본 게 매운 국물 스테이크인데, 지금은 가장 인기 메뉴”라고 말했다. 가장 많이 선택하는 매운맛은 0.5 단계 정도로 시중의 불닭볶음면보다 조금 덜 매운 수준이다.

 매운 음식만 팔아선 타오르는 혀를 진정시킬 수 없다. ‘쌈 싸먹는 쭈꾸미’라는 매운 메뉴로 인기를 얻은 ‘닭발 내민 쭈꾸미’(서울 상수동)집은 양파·파채·콩나물 등 채소와 양념장에 매콤하게 볶은 주꾸미를 깻잎에 싸 먹을 때 김·무쌈·날치알·마요네즈를 곁들인다. 문준희 매니저는 “특히 날치알과 마요네즈로 식감을 높이면서 매운맛을 잡는다”고 말했다. 창신동매운족발을 비롯해 많은 집들이 음료수로 새콤달콤한 ‘쿨피스’를 판매한다.

  강혜란·홍상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음식상식     술 마실 땐 채소나 기름진 음식과 함께 먹어야 덜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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