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인물 오디세이] '한인 노숙자들의 대부' 김요한 신부

기사 이미지
`한인 노숙자들의 대부` 세인트세임스 성공회 성당 김요한 신부가 성당 안에서 묵상을 하고 있다. 신현식 기자

그냥 돕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
상가 건물에서 20여 명 공동생활

주택국서 안전 문제로 퇴거 조치
현재의 3베드룸 아파트로 옮겨

지인, 교인들 십시일반 큰 도움
20대~70까지 60여 명 거쳐가

렌트비 등 월 3000달러 부담
"마음껏 쉴 수 있는 집 있었으면"


산타가 크리스마스이브에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배달하려면 초속 6200km로 날아 초당 6424가구를 방문해야 한다고 한다. 산타가 수퍼맨라면 모를까 우리가 아는 그 배불뚝이 할아버지라면 말 그대로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오랫동안 산타를 믿어왔고, 믿고 있고, 믿을 것이다. 크리스마스니까, 이런 기적 하나쯤은 간절히 이뤄진다 믿고 싶으니까. 적어도 이 무렵만은 작은 기적이 꽁꽁 언 세상을 잠시나마 따뜻하게 덮어주길 바라니까. 그리고 이 판타지를 현실로 만드는 이들 때문에 우리는 잠시나마 성냥팔이 소녀가 그러했을 그 따뜻한 온기를 느낀다. 김요한(60) 신부. 차가운 세상 속 바로 그 기적 같은 온기를 전하는 이다. LA한인타운 세인트제임스 성공회 성당에서 한국어 예배를 담당하고 있는 그는 '한인 노숙자들의 대부'라 불린다. 김 신부는 6년째 노숙자들과 동고동락하며 그들을 보살펴왔다. 결코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이 작은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는 김요한 신부를 세인트 제임스 성당에서 만나봤다.

#기적의 씨앗을 뿌리다

한국에서 성공회대학 졸업 후 1989년 사제 서품을 받은 그는 전주, 청주, 백석포 등 작은 시골마을 성당에서 근무하다 1991년 샌호세에 한인성당 개척 차 미국에 왔다. 그 뒤 1995년 LA교구로 발령받아 노워크 성당과 한인선교센터를 거쳐 2002년 세인트제임스 성당에 부임했다. 그가 한인 노숙자들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2009년 늦가을, 세인트제임스 성당이 매주 금요일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수프키친' 행사에서다.

"우연찮게 그날 줄 끝에 한인이 한 명 서 있는 걸 봤죠. 물어봤더니 사업 실패 후 노숙자가 됐다고 하더군요. 그를 도와야겠다고 생각하고 한인 노숙자들이 더 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 모아서 데려 오라 했죠."

다음날 그렇게 모인 노숙자가 한 20여명쯤 됐다. 그들에게 뭐가 제일 필요한지 물어봤더니 밤새 언 몸을 녹이기 위해 아침에 버스를 타고 싶은데 그러려면 버스 토큰이 필요하다고 했단다. 그 뒤 그는 매일 타운 맥도널드에서 한인 노숙자들과 만나 사비를 털어 그들에게 버스 토큰과 맥도널드 바우처, 사우나 이용권 등을 나눠줬다고 한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 무렵, 그는 임시방편인 버스 토큰보다 따뜻한 잠자리가 더 절실하다는 것을 깨닫고 타운에 방을 얻었다. 처음엔 타운 곳곳에 작은 방 몇 개를 얻다 1년 뒤엔 방 8칸짜리 상가 건물로 이사해 공동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한동안은 김 신부 역시 이들과 함께 먹고 자며 그들의 재활을 도왔다.

"처음엔 무조건 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사비를 털어 시작했고 나중엔 지인들과 교인들의 도움을 받아 렌트비를 충당할 수 있었죠. 아마 그분들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겁니다."

#나눔은 가장 큰 축복

그렇게 생활한 지 3년쯤 지났을 무렵, LA시 주택국이 안전상의 문제로 퇴거 명령을 내려 그곳을 나온 뒤 지금은 타운의 한 3베드룸 아파트에서 생활 중이다. 한동안 김 신부는 이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함께 중고물품을 팔아 생활비를 마련하고 침대며 생활 도구들은 직접 만들어 사용하는 등 이들이 최대한 스스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왔다.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 간 이들이 60여명쯤 될 겁니다. 20~70대까지 연령층도 다양한데 대부분 사업실패나 도박 빚 등 경제적 이유로 노숙자가 되기도 하고 일부는 정신병을 앓는 이들도 있었죠. 그래도 그간 20여명은 번듯한 직장을 얻어 나가 잘살고 있어요. 그런 이들을 볼 때 가장 보람 있고 뿌듯하죠."

또 이들은 성당에서 매주 두 차례씩 실시하는 노숙자들을 위한 음식 나눠주기 행사에 나와 자원봉사를 하는 등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며 자립을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김 신부가 돕는 것은 비단 한인 노숙자들뿐 아니다. 그는 15년째 아침마다 LA한인타운 서울국제공원 근처에서 일감을 구하는 히스패닉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따뜻한 컵라면을 제공하고 있다.

"LA한인타운 히스패닉 일용직 노동자들 치고 제 컵라면 안 먹은 이들 없을 겁니다.(웃음) 덕분에 길가다 마주치거나 마켓에서 일하다 만나도 꼭 반갑게 인사를 해줘요. 그럴 때 너무 행복하죠."

도대체 무엇일까. 아무리 성직자라고 하나 성직자들의 비리와 추문이 잦은 요즘 같은 세상에 노숙자들과 아무렇지 않게 어울려 생활하고 이들을 위해 사비까지 털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내와 외동딸을 책임지는 한 가정의 가장이기도 한 그가 이렇게까지 아낌없이 돈과 시간까지 바쳐 희생과 봉사를 자청하는 이유는.

계속되는 질문에도 한사코 그는 "어찌어찌 하다 보니 코를 뀄다"며 농담으로 얼버무린다. 아마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색하고 민망한가 보다. 그러다 툭 던진 한마디, 거기에 진심이 있는 듯도 했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하는 것이 곧 나에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죠. 그러려고 노력하는 것뿐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번듯하게 성장한 한인사회에서 그리 많지도 않은 동족을 추운 거리에서 떨게 할 순 없잖아요. 게다가 이젠 그들과 정이 너무 많이 들어 손을 뗄레야 뗄 수도 없어요.(웃음)"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꿈꾸며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대략 10~20여명이 머무는 아파트의 한 달 렌트비만도 2000달러가 넘는 데다 생활비까지 합치면 3000달러가 족히 든다. 정기적으로 돈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보니 월말만 되면 그는 렌트비 걱정에 신경이 곤두서고 피가 마른단다.

"그래도 감사할 따름이죠. 제 힘만으론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테니까요. 하나님 은혜로 지인들과 교인들이 물심양면 도와줘서 한 달 넘기고 1년 넘기고 했으니까요. 그분들께 가장 감사하죠."

그래서 그의 가장 큰 바람은 이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하우스 한 채 마련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지내왔지만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언제 쫓겨날지 모르는 아파트가 아닌 이들을 위한 안정적인 주택 마련이 가장 시급하죠. 지금까지도 하나님께서 돌봐주셨으니 분명 이들을 위한 보금자리도 곧 마련되리라 믿습니다."

어쩌면 땅위의 기적은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 태초에 신이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허락한 측은지심의 따뜻한 마음이야말로 그 기적의 씨앗일지도 모른다. 분명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그리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후원 문의: (323)244-8810

이주현 객원기자
 
AD

중앙일보 핫 클릭

PHOTO & VIDEO

shpping&life

뉴스레터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