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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영화와 실제 차이] 8000m 고지서 고글 벗는다고? 곧바로 시력 상해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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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말라야’의 K2(8611m) 등정 장면. 고글을 벗고 있지만, 설맹이 올 수 있어 등반가에겐 금기에 해당한다. [영화 ‘히말라야’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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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m요?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아요. 죽음의 지대라는 말밖에는…. 물고기가 땅에 있다고 봐야죠.” (김창호·히말라야 14좌 무산소 등정)

“8년 전 로체샤르(8400m) 등정 후 제 뒤로 동료가 둘이나 있었지만 먼저 내려왔어요. 8000m에선 양보도 기다림도 없습니다. 기다렸다 같이 내려온다는 건 둘 다 위험에 빠진다는 것을 의미하죠.”(모상현·2007년 엄홍길 대장과 로체샤르 등정)

히말라야는 ‘죽음의 지대’다. 8000m를 경험한 산악인의 증언이자 고백이다. 8000m 고지에서 산소의 양은 평지의 3분의 1이다. 어떤 느낌일까. 산악인들은 ‘피가 탁해진다’고 표현한다. 혈중 산소포화도가 떨어져 ‘피가 진득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다. 평지에서 산소포화도는 99% 이상이지만 5000m 베이스캠프에 오르면 엄홍길(55) 대장처럼 베테랑 산악인도 90%로 떨어진다. 85% 이하면 머리가 아프고, 80% 이하로 떨어지면 구토를 한다. 히말라야에서 가장 무서운 고소(高所) 증세다. 지구상의 최고봉 에베레스트(8848m) 정상에 서면 산소포화도는 대략 60%로 뚝 떨어진다. 서 있기만 해도 목숨이 위태롭다.

등정의 세계를 다룬 영화 두 편이 3개월의 시차를 두고 개봉했다. 엄홍길 대장이 후배 산악인 박무택 대장의 시신을 되찾아오기 위해 떠나는 ‘히말라야’와 지난 9월 개봉한 ‘에베레스트’다. 박 대장은 2004년 에베레스트 북면루트 등정 후 하산 중 설맹으로 사망했다. 함께 하산하던 후배 장민 대원, 박 대장을 구조하러 나선 선배 백준호 부대장도 산에 묻혔다. 영화 ‘에베레스트’는 역대 최악의 산악사고 중 하나로 꼽히는 1996년 대참사를 다뤘다. 에베레스트 남동루트 등정 후 폭풍설에 휘말린 18명이 캠프4(8000m)를 앞두고 쓰러져 내려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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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칸첸중가 정상에 선 엄홍길 대장. [중앙포토]

‘산악인의 끝은 영화인’이라는 말이 있다. 이 산 저 산 모두 겪은 베테랑 산악인은 한 번쯤 자신의 드라마틱한 경험을 영화로 만들고 싶어한다. 반면 ‘산악 영화는 필패’라도 말도 있다. 제 아무리 스펙터클하게 찍어도 히말라야의 대자연을 담아 내기는 역부족이다. 실제 등반 장면은 컴퓨터그래픽으로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원정대 동행을 비롯해 20여 차례 히말라야를 취재한 기자가 보기에 영화와 실제는 차이가 있었다. 8000m 이상에서 대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정상에 올라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습니다”는 낭만적 대사는 그야말로 영화일 뿐이다. 대개 기진맥진한 채 쇳소리를 내며 “몇 시 몇 분 정상에 올랐다”는 무전 보고를 베이스캠프에 보낼 뿐이다. 8500m 이상 칸첸중가(8586m)·K2(8611m)·에베레스트 는 인공산소를 쓰며 등반하는 경우가 많다. 인공산소를 마시다 떼면 숨이 멎을 것 같은 고통이 밀려온다. 등반 파트너와도 눈빛과 눈짓으로 소통한다. 53년 5월 29일, 셰르파(히말라야 고산가이드) 한 명과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뉴질랜드·2008년 작고)는 자신의 등정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그는 산을 내려와 “거기서 텐징에게 사진 찍는 법을 가르쳐줄 수는 없었어”라고 말했다.

정상에선 정신도 오락가락한다. 모상현(41)씨는 “로체샤르 정상 공격 때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물통을 30시간 동안 지니고 다녔다”며 “배낭에 물이 들어 있는 걸 잊고 있었다”고 했다. 정상에 서면 강렬한 엔도르핀이 발생하며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갑자기 힘이 솟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환청을 듣거나 헛것을 보는 일도 흔하다.

영화와 실제 등반의 가장 큰 차이는 고글이다. 히말라야 등반에서 고글은 생사를 가르는 장비다. 설원에서 복사된 강렬한 자외선에 노출되면 일시적으로 눈이 먼다. ‘눈을 뜨면 유리가 박힌 것처럼 괴로워 눈을 감을 수밖에 없다’는 설맹 증상이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고글은 배우의 얼굴을 가리는 방해물이다. 영화 ‘히말라야’의 기술 고문을 한 김미곤(43) 대장은 “고글을 쓰느냐 마느냐로 스태프와 의견 차이가 있었다”며 “이 장면에선 꼭 고글을 껴야 한다고 했지만 관철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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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정우(왼쪽·박무택 역)와 황정민(엄홍길 역). 2000년 칸첸중가 원정 당시 엄홍길(왼쪽)과 고 박무택. 엄홍길 대장은 후배 박무택을 ‘묵직한 바위 같은 친구’라고 했다. [사진 JK필름, 중앙포토]


두꺼운 우모(羽毛) 장갑도 고글만큼 중요하다. 보통 세 겹의 장갑을 끼는데, 이를 잠깐만 벗어도 위험하다. 단 몇 초만 노출돼도 손가락을 잃을 수 있다. 8000m는 한여름 한낮에도 영하 20도 이하이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동영상을 촬영할 때 자주 범하는 실수다.

8000m에서 쓰러진 동료를 구하러 나서는 휴먼 스토리는 가능할까. 영화 ‘에베레스트’에 등장하는 아나톨리 부크레예프(러시아·1999년 안나푸르나 사망)는 8000m 고지에서 하룻밤에 3명이나 구조했다. 실화다. 하지만 그는 한동안 거짓말쟁이 취급을 당했다. 당시 등반에 참여한 미국인 저널리스트 존 크라카우거의 『희박한 공기 속으로』(황금가지)에서는 부크레예프를 “가장 강인한 산악인이면서도 동료를 버리고 혼자 내려간 파렴치한”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그는 “산악인으로서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의 기에 눌려 손가락질받았다. 그가 죽은 후 한참 지나서야 명예를 회복했다.

영화처럼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러 나서는 사례도 늘고 있다. 히말라야 등반이 시작된 이래 ‘산에서 잠든 자는 산에 두자’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지만 요즘에는 달라졌다. 등반가가 아닌 사람도 고산에 도전하는 일이 늘었고, 대개 가족들이 시신 찾기를 원한다. 한편으론 히말라야 등반이 상업화됐다는 것을 뜻한다. 고지대에서 태어나고 자란 셰르파가 길잡이가 된다. 물론 이들을 움직이는 동력은 현금이다. 고 박무택 대장의 시신 발견과 수습도 사실상 이들에 의해 이뤄졌다.

산악사에서 가장 극적인 시신 수습은 99년 BBC 다큐팀이 찾은 조지 맬러리다. 등반의 이유를 묻자 "산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라고 답한 바로 그 사람이다. 다큐팀은 24년 에베레스트 북동릉 8600m에서 실종된 맬러리의 시신을 무려 75년 만에 찾아냈다. 그를 발견한 미국인 등반가는 “돌무더기 가운데 뭔가가 반짝였다”고 말했다. 바람에 해지고 강한 자외선에 의해 빛이 바랜 맬러리의 등이었다.

도대체 왜 산에 오르는 것일까. 미국의 역사가 모리스 이서먼과 스튜어드 위버가 인류의 히말라야 도전사를 총정리한 『Fallen Giants』 첫 장 ‘사람과 산의 만남’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인간은 처음에는 지각으로 솟아오른 부분을 지구의 둥그런 모양에 어울리지 않는 사마귀쯤으로 생각했다. 점차 의식이 발전하여 산을 경외의 대상으로 바라보았고, 마침내 최고의 자연경관이라고 여기게 됐다.”

2012년 K2 베이스캠프(5200m)에서 만난 김홍빈(51) 대장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매킨리(6194m)에서 열 손가락을 잃고도 여전히 산을 좇고 있는 그는 7000m 이상 봉우리 십수 개가 자리 잡은 고드윈 오스틴 빙하 한가운데에 앉아 이렇게 반문했다.

“저 산을 한번 보십시오. 저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안 갈 수가 있겠습니까.”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S BOX] 산악인 첫 의사자 백준호, 박무택 구하러 갔다 숨져

여럿이 함께 산에 갔다 혼자 내려오는 이는 어김없이 논란의 대상이 된다. 원정대장이라면 더하다. 계명대 에베레스트원정대장 배해동(60)씨는 2004년 세 후배를 잃은 이후 말문을 닫고 살았다. 지난 15일 어렵게 그와 통화했다.

“영화로 나온다는 말은 오래 전에 들었어요. 나는 준호가 주인공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영화는 영화니까…. 준호는 살아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고도 무택이를 구하러 갔어요. 백준호가 산악인 최초의 의사자(義死者)란 사실은 알고 있지요?”

‘히말라야’에서 백준호는 배우 김인권, 박무택은 정우가 연기한다. 백준호는 김인권의 연기처럼 털털한 산악인이었다. 선후배는 물론 주위 사람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미련곰탱이’로 불렸다고 한다.

“준호는 무택이를 데리고 내려갈 수 없다는 걸 알았죠. 대신 무택이가 운명할 때까지 기다렸을 겁니다. 그러다가 때를 놓친 거죠.” 이튿날 같은 루트를 지나간 셰르파들은 박무택 대장 시신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의 배낭을 발견했다. 옷은 가지런히 개어져 있었다. 산에서 저체온증으로 죽은 사람들에게서 발견되곤 하는 이상 행동이다.

그가 기억하는 박무택과 백준호는 천생 단짝이었다. “무택이는 고소 등반 능력이 좋았어요. 2000년 칸첸중가 등반 때도 다리를 다친 엄홍길을 도와 정상까지 간 게 무택이에요. 종합적으로 보면 준호가 뛰어났어요. 히말라야 고산 등반뿐만 아니라 암벽·빙벽 다 잘했어요.” 그는 “언젠가 준호가 주인공이 되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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