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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 맛나요] 한국의 명품 식재료 ③ 제주 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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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봄·여름·가을·겨울별로 품목이 다른 감귤이 난다. 11월은 노지 감귤이 한창이고, 12월 레드향을 필두로 5월 카라향까지 줄지어 선보인다. 11월은 조기·갈치 경매가 본격 시작되는 때이기도 해서 매년 11월이면 제주에 갔다. 언제인가 귤 농원을 둘러본 늦은 저녁, 방어회에 소주 한잔을 했다. 방어가 맛있긴 해도 뭔가 5% 부족했다. 그때 동석한 수산물 경매인이 말했다. “방어는 한라산에 눈이 두 번 와야 제맛이 들어요.”

 육지가 초겨울이라도 바닷속은 아직 가을이다. 기온이 내려가면 겨울이 제철인 방어·굴·과메기 등이 생각난다. 가장 먼저 군불을 때는 게 방송이고 다음으로 소비자가 찾는다. 그런데 바다의 기온은 육지보다 한 박자 늦게 간다. 물의 특성이 공기와 달라 온도 변화가 빠르지 않기 때문이다. 바다의 대한(大寒)을 ‘영등철’(영등할미 전설에서 유래해 연중 가장 수온이 낮고 바람이 많이 부는 때)이라 하는데 음력 2월에 해당한다(육지의 대한은 음력 1월이니 한 달쯤 차이 난다). 방어는 바다 수온이 내려가는 시기, 즉 12월부터 제맛이 들기 시작한다. 제주 한라산 꼭대기에 눈이 내리는 것도 그 즈음이다. 그래서 ‘방어는 한라산에 눈이 내릴 때 맛이 든다’고 한다. 제철 방어처럼 차진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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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름장에 찍어 먹는 사잇살은 모슬포 방어 경매인들이 꼽는 별미다 .

 남해·동해에서도 방어가 나지만 잡는 어구가 다르다. 타 지역은 건착망(어군을 그물로 감싸서 잡는 방법) 방식이다. 아무래도 맛이 낚시로 잡아 올리는 것만 못하다. 반면에 방어 주 생산지인 모슬포(서귀포시)에선 낚시로 하되 방법도 독특하다. 일단 동트기 전 자리돔 잡는 것으로 시작한다. 낮은 수역에 있는 자리돔을 먼저 잡고 모슬포와 마라도 사이의 해역으로 이동한다. 외줄에 봉돌을 달고 낚싯바늘에 살아 있는 자리돔을 ‘등꿰기’한 다음 바다에 100여m 흘린다. 마라도 해역의 거친 물살을 내달리던 방어가 조그마한 자리돔의 유혹에 빠지면 어부와의 힘겨루기 끝에 배 위로 잡혀 온다. 어부는 항구에 배를 대기 전 방파제 안쪽 축양장(畜養場)에 들러 그날 잡은 방어를 경매에 부치고 보관한다. 축양장은 항구 내 수족관에 비해 면적이 넓다. 방어를 보관한 지 3~4일이 되면 절단 고등어, 잡고기 등을 먹이로 주기 때문에 상태가 신선하게 유지된다. 축양장에 있던 방어는 경매인이나 식당 주문에 따라 활어차에 실려 모슬포의 식당 등으로 이동한다. 현지에서 소비되기도 하고 선어 상태로도 전국에 배달된다. 최근 수온 변화의 영향으로 제주보다는 강원도 쪽에서 방어가 많이 나고 주 생산지인 제주에서는 예전만 못하다. 제주 어부들은 한숨을, 강원도 어민들은 환호성을 올리는 ‘웃픈(웃기고 슬픈)’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

 제주에서 방어는 겨울철 집안 행사의 주인공이다. 돼지고기도 내지만 제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잔치 음식이 방어라고 한다. 잔치에 방어가 빠지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소릴 듣는다. 큰 잔치를 하는 집은 중방어(4kg 이상을 대방어, 1.5~4kg 사이는 중방어, 1.5kg 이하는 소방어로 구분한다)를 200여 마리 낼 정도다. 지방마다 제사상에 올리는 생선은 상어·참돔·조기·민어 등 제각각이다. 방어를 좋아하는 제주 사람들은 방어를 올린다. 바닷바람에 며칠 말린 방어를 꼬치 산적으로 만들어 올린다. 제주에선 여름 복달임(삼복에 보양음식을 먹고 시원한 물가를 찾아가 더위를 이기는 일)을 하듯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기름이 듬뿍 오른 방어를 즐긴다(여름엔 ‘한치’로 바뀐다).

 일반적으로 방어 부위 가운데 마블링처럼 기름이 잘 밴 뱃살을 최고로 친다. 그런데 모슬포 경매인들이 꼽는 별미가 있다. 사잇살·볼살·지느러미살 등 세 부위다. 이 중 사잇살은 일반적으로 먹지 않고 버리는 부위다. 뱃살과 등심살 사이에 있고, 부위 전체가 붉은 살이다. 얼핏 보면 육고기처럼 보이는데 싱싱한 말고기의 간을 먹는 듯한 식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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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어 뱃살은 농후한 기름 맛과 배꼽살의 쫄깃한 식감 때문에 가장 인기 높은 부위다.


 한국 최대 관광지인 제주도지만 겨울엔 삭막한 북서풍에 여행객의 발길이 뜸해진다. 그래도 방어축제를 여는 11월 둘째 주에는 20만 명 이상이 모여든다고 한다. 방어 맛이 그만큼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는 방증이다. 다만 올해까지 15회를 열 동안 모슬포 주변 식당의 방어 주 메뉴는 ‘회’뿐이다. 방어 부위를 세분화해 먹는 등 발전하긴 했지만 대중화된 요리법이 한 가지뿐이라는 것이 아쉽다.

 한 번은 생선회를 올리브유·식초·청양고추·안초비로 양념한 것을 루콜라(향신채소의 일종)와 함께 먹은 적이 있는데 고추장 맛만 없을 뿐 회무침의 맛이나 식감과 같았다. 꼭 자리를 잡고 먹을 게 아니라 길거리 음식으로 꾸덕꾸덕 말린 방어 꼬치구이도 좋을 것이다. 아니면 어느 방송에 나와 화제가 됐던 세비체(ceviche, 얇게 썬 해산물에 라임즙을 뿌리고 채소를 버무려 날것으로 먹는 음식. 페루가 유명)도 좋을 것이다. 다양한 요리를 개발함으로써 미식을 찾는 내국인이나 회에 대한 선입견이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노르웨이는 훈제 연어로, 영국은 흰살 생선으로 만든 피시앤드칩스(fish and chips)가 유명하다. 훈제나 튀김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 연어는 회·샐러드·샌드위치·스테이크 등 다양한 조리법을 통해 맛이 변주된다. 방어는 ‘회’가 거의 유일하다. 날생선은 기호·국적에 따라 선호도가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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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영
‘여행자의식탁’ 대표·식재료연구가

 명품 식재료는 다양한 변주 또는 선호도 높은 조리법을 통해 지위를 확보한다. 명품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숱한 시간 동안 값어치를 알려 왔기에 명품이 됐다. 똑같은 가죽이더라도 누가 디자인하느냐에 따라 값어치가 달라진다. 겨울 방어는 ‘질 좋은 가죽’이다. 디자인이 매년 같아서는 명품 지위를 누리기 힘들다. 좋은 식재료에 다양성이 더해질 때 한식도 세계적인 명품으로 각광받을 수 있다.

김진영 ‘여행자의식탁’ 대표·식재료연구가 

음식상식 고랭지 농산물이 더 달고 맛있는 이유

고랭지 배추·무·감자 등은 일반 토양에서 자란 품종보다 맛있다. 당이 많기 때문이다. 설탕물은 맹물보다 늦게 언다. 일교차가 큰 고랭지에서 식물이 추위에 대비하는 원리도 이와 같다. 광합성으로 만든 전분을 빠르게 당으로 전환하기에 더 달고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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