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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혁신은 낯선 지식의 교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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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거미줄은 가볍고 신축적이면서 강철보다 7배 이상 강하기 때문에 방탄조끼를 만드는 등 산업용으로 이용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어 왔다. 거미 100만 마리 이상을 키우면서 1년 동안 고생해서 거미줄을 채취해 봐야 겨우 식탁보 크기의 천을 짤 수 있을 정도로 비생산적이다. 놀랍게도 얼마 전 과학자들은 유전공학 기술을 이용해 거미줄을 대량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거미 유전자를 염소에게 주입한 후 염소의 젖에서 거미줄을 농축하는 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이렇게 만든 거미줄은 상처를 꿰매는 실이 되어 병원에 고가로 팔려나간다고 한다. 실이 끊어질 염려도 없고, 자연스레 살에 흡수되어 실밥을 뽑을 필요도 없으며, 꿰맨 자국도 남지 않는다고 한다.
 
각 전공 간 융합연구가 혁신 창조
GPS도 식당에서 대화하다 발명
우리 대학 연구실은 너무 폐쇄적
연구자들 간 대화·교류 활발해야

 거미와 염소의 유전자는 지구의 역사 이래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거미염소라는 새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신(神)의 놀이’가 창조섭리와 생명윤리에 어긋난다는 논쟁이 뜨겁지만, 생명과학의 경이로운 업적은 ‘경계 넘기’의 상징이 되었다. 거미와 염소의 유기체가 경계를 넘어 상대방의 유전자와 결합해 ‘거미줄 젖’이라는 없던 것을 만들어낸 혁신성의 상징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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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융합연구가 요구되는 이유도 경계 넘기의 혁신성에 있다. 거미염소처럼 전혀 다른 지식들이 전공 분야의 경계를 넘어 결합하면서 혁신적인 지식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마치 지식들이 섹스를 하여 자식을 낳는 것과 같다. 의학과 공학이 결합하고, 물리학과 사회학이, 그리고 정치학과 음악이 결합하면서 창조적 지식을 낳고 있는 것이다. 결합되는 지식이 이질적일수록 더 주목받는 창의적인 논문이 된다.

 이런 융합 연구가 빠르게 활성화되어야 하건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다른 분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거들떠보지 않고 자신의 전문 분야 연구에만 매몰되어 있다. 융합 연구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유는 이질성에 대한 문화적인 관용이 낮고,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파티 문화가 아닌, 끼리끼리 문화라서 그런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대학의 공간적 인프라에도 원인이 있다. 교수 연구실은 독방이고, 폐쇄적이어서 연구실 안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게 설계되어 있다. 연구실은 개방적이어야 한다고 믿는 어느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 문을 활짝 열어 두었더니 “지나가던 동료교수가 닫아주고 가더라”고 고백할 정도로 폐쇄적이다. 게다가 자연스럽게 만나 대화할 수 있는 복도나 휴게실, 교수 식당의 개방적 공간도 거의 없다는 게 거의 모든 대학의 실정이다.

 실리콘밸리에서 생겨나는 대부분의 혁신적 아이디어가 낯선 사람과 대화하는 선술집(Pub)에서 생겨난다는 인류학자의 연구는 우리 대학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랫동안 풀지 못한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힌트가 우연히 마주친 다른 분야 연구자에 의해서 던져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일류대학이나 구글, 페이스북 같은 혁신 기업들은 연구자들이 자연스럽게 스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개방적 분위기의 식당과 휴게공간을 만들고 있다. 또 어떤 연구소는 출근할 때마다 새로운 자리를 배정받게 해 매일 새 사람 옆에 앉아 일하도록 하기도 한다.

 뇌 안에서 번쩍 떠오르는 새로운 생각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한 번도 연결되지 않았던 뉴런들이 갑자기 연결될 때 번쩍한다는 것이다. 지식도 마찬가지여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낯선 지식들이 갑자기 연결될 때 창의적인 지식이 태어난다. 최고 권위를 갖는 논문지인 ‘네이처’나 ‘사이언스’에 실리는 글이 모두 공동연구팀에 의해, 그것도 여러 전공 분야의 연구자들에 의해 함께 쓰여지는 이유다.

 전 세계인이 애용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도 우연적 연결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연구자 네 명이 점심 때 우연히 식당에 앉아 대화를 시작하다가 한 사람이 당시 소련이 쏘아 올린 위성의 궤도를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소련은 이 위성이 가짜가 아니라는 점을 홍보하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신호음을 발신하도록 만든 사실에 착안한 것이다. 이 제안이 꼬리를 물고 발전하면서 GPS가 발명된다. 현 위치에서 위성궤도를 추적할 수 있으면 알려진 위성궤도에서 현 위치를 알아낼 수 있지 않겠느냐는 역발상이 위대한 발명으로 이어진 것이다. 우연히 연구소 식당의 같은 자리에 앉았던 물리학자, 수학자, 전파공학자 등 여러 전공자가 장난 삼아 제안하고, 협업한 결과 매년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산업을 만들어냈다.

 이처럼 융합연구를 위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연구실이나 실험실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들 사이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얻어진다. 물론 낯선 지식 간의 교배는 연구자들 사이의 자유로운 교류에 의해 생겨난다. 그러므로 융합 연구비에 투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만남이 자유롭게 일어날 수 있는 인프라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질적인 지식이 교배해 태어나는 신생아 혁신이 연구실 주변 휴게실과 식당에서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김용학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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