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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I ♥ AI…기술 발전이 만든 기계와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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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메릴랜드주 게이더스버그에 사는 한 남성은 최근 기혼자 데이트 서비스인 ‘애슐리 매디슨’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서비스가 불륜을 조장해서가 아니다. 애슐리 매디슨이 실제 여성과 연결을 해주지 않고, 여성을 가장한 채팅로봇(챗봇)을 이용해 자신을 속여 왔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법정대리인을 통해 “누군가 관심을 보내주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그 상대가 로봇이라면 화가 난다”며 “로봇과 대화하는 데 250달러를 썼다”고 말했다.

 애슐리 매디슨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채팅로봇을 남성 고객을 끌어들이는데 이용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는 분위기다. 9일 정보기술(IT) 전문 블로그 기즈모도와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의 보고서 등에 따르면 애슐리 매디슨은 남녀 모두 회원가입을 할 수 있지만 남성에게만 과금(課金)하는 시스템으로 운영한다. 남성이 여성에게 쪽지를 보내거나 채팅을 원할 경우 돈을 내는 식이다. 하지만 남성에 비해 턱없이 적은 여성 회원 확보에 한계를 느낀 애슐리 매디슨은 실시간으로 상호 대화기능을 갖춘 채팅로봇을 이용해 약 7만 명의 가상 여성 회원을 만든 것으로 분석됐다. AI가 남성 회원들과 채팅에 나서면 사이트에 여성들이 많다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고, 더 많은 남성을 회원으로 모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 박종훈 집필위원은 “애슐리 매디슨은 사기를 쳤지만, 뒤집어 보면 챗봇의 AI 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올랐다는 반증”이라며 “챗봇은 실제 불륜으로 이어질 수는 없는데, 이것이 오히려 남성의 애간장을 태우면서 애슐리 매디슨에 이용료를 지불하게 하는 의외의 결과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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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보이프렌드’에선 가상 애인의 외모·성격·직업 등 원하는 스타일을 선택할 수 있다. [사진 각 사]

 AI 기술발전으로 인간과 기계가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사람을 닮은 로봇이 등장하고, AI가 인간의 정(情)을 느끼는 수준까지 진화하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서로 사랑에 빠질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나온다. AI는 이미 사람과 문자를 주고받는 단계까지 왔다. 한국의 ‘심심이’, 중국의 ‘샤오이스’, 일본 라인의 ‘린나’ 등 주요 챗봇 서비스는 유명인·스포츠·연예계 등의 주제에 맞춰 대화를 한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공감 능력과 유머감각을 지녔으며, 대화 상대의 기분을 알아내 적절한 대응도 할 수 있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MS)·애플 등의 운영체제(OS)도 이런 기능을 갖췄다. 현재는 문자대화 기반이 주를 이루지만 곧 음성대화 기능이 일반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 등 주요국에서는 AI 프로그램이 연인을 대행해 이용자와 문자를 주고 받는 서비스도 성업중이다. 돈을 내고 서비스에 가입하면 가상 애인의 외모·성격·직업 등 원하는 스타일을 선택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애인은 문자를 주고 받으며 진짜 애인 행세를 한다. 애인이 없다고 타박하는 가족·친구들을 안심시키거나, 멋진 애인이 있다고 허세를 부리려는 사람들이 주요 고객이다. 가입자들은 가상 애인이 진짜 애인보다 더 관계에 충실하고, 싸울 일이 생기지 않는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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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앳’은 특정 단어 사용 빈도, 메시지의 길이와 답신 속도 등을 분석해 연애를 코치해준다. [사진 각 사]

 영국 텔레그래프의 올리비아 골드힐 기자는 직접 ‘인비저블 보이프렌드’라는 가상 애인 서비스에 가입해 문자를 주고 받으며 자신의 실제 남자친구와 ‘남친다움’(?)을 비교해보기도 했다. 결과는 AI의 완승.

 “허리가 아프다”는 골드힐의 말에 AI는 “내가 마사지를 해주겠다”며 자기 일처럼 걱정한 반면, 실제 남자친구는 “난 어제 두통때문에 아주 고생했다”며 마뜩지 않은 반응을 했다. AI는 “너와 대화를 나누니 오늘 하루가 좋아진다”는 느끼한 ‘작업용’ 멘트를 끊임없이 날리지만, 실제 남자친구는 무뚝뚝함으로 일관했다. 골드힐은 “AI는 나를 자세히 몰라도, 끊임없이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며 돈값을 했다”며 “그러나 진짜 남자친구는 최악의 문자쟁이였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인간과의 대화가 가능한 것은 AI의 한 분야인 머신러닝 기술의 발전 덕이다.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왔을 때 기계가 스스로 학습을 하고, 축적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유사한 상황에 대비한다. 데이터가 쌓이고 학습의 빈도와 양이 많아질수록 더 똑똑한 판단을 한다. 챗봇도 이런 방식으로 사용자가 구사하는 단어를 분석하고, 예전의 대화를 반영해 시간·상황에 맞는 답변을 내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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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이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 로맨스 영화 ‘그녀(Her)’ [사진 각 사]

 남녀간에 느끼는 사랑의 감정을 분석하기 위해 AI를 활용하는 사례도 나왔다. 국내 스타트업인 스캐터랩이 내놓은 감정분석 앱 ‘텍스트앳’은 60만명이 주고받은 20억건 이상의 대화 데이터베이스(DB)를 AI로 분석해 연애를 코치해준다. 스마트폰으로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 내용을 알려주면 대화 주제, 특정 단어 사용 빈도, 메시지의 길이와 답신 속도 등을 분석해 상대방의 심리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대응을 제안해준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의구심도 많지만, 이 앱이 제공하는 ‘연인의 피곤지수 측정’, ‘애정도 분석’ 등은 화제를 모으며 앱 다운로드 누적건수가 100만건에 달한다.

 스캐터랩 김종윤(31) 대표는 “앞으로 AI는 문맥이나 분위기에 맞춰 개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나 힘이 되는 한마디를 건네는 등 감성적인 부분이 정교하게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같은 AI의 발달은 로봇과의 성관계를 꿈꾸는 데에 이르렀다. 세계 최초로 ‘섹스로봇’을 생산하고 있는 미국의 ‘트루컴패니언’은 AI를 적용한 제품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업데이트가 가능한 AI를 바탕으로 로봇이 사용자와 대화를 하고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고 회사는 주장한다. 자신이 원하는 성격을 골라 로봇을 셋팅할 수도 있다. 미국의 섹스인형 제작업체 ‘리얼돌’도 AI를 적용한 제품을 개발 중이다.

 이같은 섹스로봇의 등장에 해외 학자들은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미국의 CNBC, 영국의 BBC 등에 따르면 AI를 장착한 로봇이 인간과 교감하며 사랑을 느끼고 나아가 성관계까지 갖는 것을 허용해야 하느냐하는 찬반 논쟁도 거세지고 있다.

 영국 드몽포르대 캐슬린 리처드슨 로봇윤리학 연구원은 “로봇과의 섹스에 집착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잃게 될 것”이라며 “섹스 로봇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싱귤래러티대의 넬 왓슨 미래학자는 “인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에 불과하다”며 “인간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해줄 수도 있다”며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AI의 발전이 미래 인간의 삶을 좀 더 편리하게 바꿔놓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이 항상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흘러간다고 단정하기는 힘들다는 게 AI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섹스로봇·킬러로봇 등이 이런 부작용의 한 예다. AI를 둘러싼 윤리 논쟁이 뜨거워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술지 ‘뉴로퀀톨로지’에 AI의 한계를 ‘의식의 계산 불가성’이라는 이론으로 증명한 충북대 경영정보학과 송대진 교수는 “AI는 한계가 분명하다”면서도 “그러나 이젠 AI에 대한 윤리적·사회적 가치 판단을 어떻게 할 것이냐하는 사회적 논의가 시작되야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AI를 둘러싼 우려가 과장된 면이 많다는 시각도 나온다. 아무리 뛰어난 AI라도 짧고 간단한 대답은 가능하지만, 구체적이고 논리가 필요한 주제에서는 대화가 끊기는 게 현재의 기술 수준이란 것이다. 세계인공지능학회의 ‘혁신 응용상’을 수상한 경희대 경영학부 이경전 교수는 “AI가 인간의 지능을 흉내낼 수는 있어도, ‘사랑’처럼 알고리즘으로 정의하기 힘든 의식을 가지는 것은 머나먼 미래의 일”이라며 “AI가 축적한 사용자의 민감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부터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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