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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에 맛나요] 먼 나라 이웃 입맛 ② 블랙 푸딩 vs 피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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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 조찬인 ‘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에는 한국의 ‘피순대’와 흡사한 ‘블랙 푸딩’(왼쪽 아래)이 포함된다. [사진 ‘순대실록’ 육경희]


나(강지영)의 남편은 전형적인 영국인 아저씨다. 바쁜 주중에는 아침식사를 과일로 때우지만 일요일엔 풀 잉글리시 브렉퍼스트(full English breakfast)를 즐기고 싶어 한다. 팬에 기름을 많이 두르고 베이컨·소시지·계란·버섯·토마토와 심지어 식빵도 튀기듯 익혀 낸다. 베이크드 빈스(baked beans·토마토 소스와 흑설탕에 졸인 콩요리)와 튀긴 감자, 소·양 등의 콩팥구이와 키퍼(kipper)라 불리는 훈제 청어도 곁들인다. 이 중 가장 재미나는 음식이 ‘블랙 푸딩(black pudding)’이다.

 30년 전 영국에 처음 갔을 때 블랙 푸딩을 보고 반갑고도 신기했다. 아침식사에 순대 비슷한 게 올라왔는데 그것을 소금이나 된장이 아닌 오렌지 마멀레이드를 발라 먹는 게 아닌가. 블랙 푸딩은 돼지 피를 넣어 검은색을 띠는 블랙 소시지의 일종이다. 나라마다 이름이나 첨가 재료는 조금씩 달라도 블랙 소시지는 프랑스·스페인·포르투갈은 물론 북부와 동부 유럽에서도 접할 수 있는 전통 음식이다.

 블랙 푸딩은 돼지 피와 오트밀(때로는 보리), 돼지기름이 주재료이고 양파와 향신료, 소금을 첨가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이 재료를 섞어 창자에 채운 뒤 삶아서 먹었는데 근래엔 공장 가공품을 사서 순대처럼 칼로 자른 다음 굽거나 팬에 지져 먹는 게 일반적이다. 영국·아일랜드·스코틀랜드·캐나다 등에서 주로 아침식사로 즐긴다.

 블랙 푸딩의 유래는 기원전 800년에 쓰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도 찾을 수 있다. 돼지 내장은 한때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었지만 헨리 8세를 비롯한 영국 왕족과 귀족들도 돼지 내장 특유의 맛과 향을 즐겼다. 지금은 미식가나 전통 음식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2014년 10월 7일자 가디언지에서 영국 환경장관 리즈 트러스는 젊은 세대에게 블랙 푸딩을 먹이고 싶은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돼지 피로 만든 블랙 푸딩은 단백질과 철은 물론이고 칼륨·칼슘·마그네슘 또한 풍부해 영양 만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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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석관동 ‘ 전주남문토종순대국’의 전통 피순대. [임현동 기자]

 블랙 푸딩과 흡사하면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우리 메뉴가 있다. 순대다. 그중에서도 특히 ‘피순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알아주는 순대광(狂)인 정신우 셰프에 따르면 순대라는 이름이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지만 기록은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 순대의 기록은 조선시대 지식인들이 즐겨 읽었던 중국 원나라 때 저서 『거가필용』에서 찾아볼 수 있다. 『거가필용』엔 소나 돼지, 또는 개나 생선의 창자에 고기와 채소 등을 넣고 쪄낸 음식인 ‘관장(灌腸)’이 나온다. 『거가필용』을 인용한 『임원십육지』(서유구·1827년)에도 양(羊)의 내장을 이용한 순대 요리법이 나와 있다.

 한글로 된 최초의 조리서인 『음식디미방』(1670년 추정)에 개 창자를 이용한 방법이 나온다. 또 『역주방문』 『규합총서』 등에서도 소 창자를 이용한 요리법이 소개돼 있다. 여기엔 개장 또는 우장증(牛腸蒸) 등의 이름으로 나와 있다. 1800년도 말기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시의전서(是議全書)』에 비로소 ‘슌대’라는 명칭이 등장한다. 만주어로 ‘셍지두하(senggi-duha)’는 피와 창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고려 말기 몽골족의 순대 문화가 양 내장에서 우리나라의 돼지 내장 순대로 자리 잡은 것으로 추정하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오늘날 북한 요리가 소개된 음식책을 살펴보면 돼지 피를 골고루 섞어 버무려 집어 넣은 선지 순대를 ‘피순대’라고 불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에선 전북 전주 남부시장에 피순대 집들이 순대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피 맛 가득한 피순대가 구수하고 담백하다는 사실은 애주가들만 안다. 함께 곁들여지는 순댓국 국물은 메마른 마음을 적실 뿐, 입안에 맴도는 감칠맛은 ‘피순대’가 지닌 선지의 맛 때문이다.

 사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부르는 순대는 일명 ‘당면순대’를 일컫는 것이다. 당면이 없었다면 이렇게 황홀하고 저렴한 가격에 서민 음식으로서의 순대가 생존해 있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당면(唐麵)은 고구마 전분이 주재료다. 1919년 양재하씨가 사리원에 ‘광흥공창’이라는 대규모 당면 공장을 건설해 대량생산을 주도하면서 본격적인 당면 요리법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잡채와 순대는 모두 당면의 후예라 하겠다. 본격적인 당면 순대의 계보는 1977년을 전후해 서울 신림동에 ‘순대 타운’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 양념 없이 채소와 순대만 볶아 내던 백순대에서 빨간 양념장이 곁들여진 순대볶음으로 발전했고, 당면순대를 기본으로 끓여 낸 순댓국은 전국 장터 순댓국밥집의 메인 메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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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세계음식문화연구가·왼쪽)·정신우(플레이트 키친 스튜디오)

 오늘날 한국 순대는 지역에 따라 다른 조리법과 맛으로 발전했다. 널리 알려진 순대로 함경도와 평안도가 모태인 ‘아바이순대’가 있다. 또 강원도의 ‘오징어순대’와 ‘명태순대’, 충청도의 ‘병천순대’, 전라도의 ‘암뽕순대’와 ‘피순대’, 경기도의 ‘백암순대’, 제주도의 ‘돼지순대’가 대표적이다. 순대 장인으로 불리는 육경희(서울 대학로 ‘순대실록’) 대표에게 블랙 푸딩과 가장 가까운 피순대가 무엇인지 물으니 제주도의 ‘돗수애(돼지순대)’를 꼽았다. 찹쌀과 메밀가루, 선지를 넣어 된장이나 새우젓 등으로 간을 한 뒤 찌거나 삶아 낸 순대다. 한입 베어 물면 미묘한 미소가 입과 귀에 걸린다. 실실거리고 웃게 되는 모양이 고사 상의 돼지머리 모습과 닮았으니 참으로 그로테스크하다. 영국인 아저씨에게 블랙 푸딩이 있다면 우리에겐 피순대가 있다.

글=강지영(세계음식문화연구가)·정신우(플레이트 키친 스튜디오)

※한국과 다른 나라의 닮은꼴 요리를 통해 세계 각지의 음식문화와 역사를 되돌아 봅니다.

음식 상식 굴 포장 안에 든 바닷물로 보관하면 오래간다

마트에서 파는 생굴 가운데 껍데기를 깐 채 물로 가득 채운 포장용기(봉지)에 든 것이 있다. 이 물은 정수한 바닷물이다. 봉지 굴을 먹고 나서 일부 남았다면 밀폐용기 안에 이 물로 채워 보관하면 좋다. 굴의 삼투압이 바닷물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비교적 싱싱하게 보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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