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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도 반은 지켜라 … 퇴직금 절반 연금에 묶고 나머지로 투자·창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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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B(프라이빗뱅커) 출신의 은행 지점장 A씨는 회사에서 임금피크제를 택할지, 명예퇴직을 할지 선택하라고 하자 고민에 빠졌다. 자산가들의 은퇴 준비를 설계하고 도왔던 그였지만 막상 자신에게 닥치자 갑자기 혼란에 빠지며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집은 어떻게 처분할지, 퇴직연금 등의 소득은 어떻게 분배할지, 중장기 목돈 수요는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한 그였다. 하지만 대부분 반퇴세대가 겪는 이른바 ‘은퇴 공포증’을 그 역시 피해갈 수 없었던 것이다.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은퇴를 앞뒀다는 공포가 지나치게 커지면 각종 부작용이 생긴다. 종종 ‘조급증’으로 발전해 섣부른 결정과 실수를 하거나 반대로 ‘피로증’으로 변질돼 아예 ‘될 대로 돼라’ 식이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반퇴세대들이 미리 챙겨봐야 할 핵심 원칙, 범하기 쉬운 실수와 이에 대한 조언을 중앙일보 ‘반퇴 테크’ 자문단 6인에게 물었다.

① 수명 연장을 감안하라=반퇴 준비의 핵심 전제이자 변수는 수명이다.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막연히 80~90세까지 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예상보다 수명이 늘어나면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평균수명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특히 젊은 층일수록 본인이 현재 예상하는 기대수명보다 항상 더 오래 살 것을 감안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특히 간과하기 쉬운 게 의료비다. 김동엽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이사는 “세상을 뜨기 전 1년간 쓰는 의료 비용이 평상시 의료비의 3배 정도 든다”며 “배우자의 병치레도 잦아질 수 있는 만큼 이를 충분히 감안해야 하고 보험의 보장 시기도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② 배우자와 함께 하라=반퇴세대 가장은 자산관리는 배우자에게 맡겨두고 퇴직이 눈앞에 다가와서야 통장을 챙겨보는 경우가 많다. 금융자산이 얼마나 있는지, 빚은 얼마나 남았는지 구체적인 규모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런 경우 배우자 모르게 투자했다가 난 손실을 메우기 위해 위험이 더 큰 상품에 투자했다 손실을 키우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신한은행 김진영 신탁연금본부장은 “부부의 은퇴 준비는 항상 2인분”이라며 “미리 아내와 마주 앉아 그동안 투자해 놓은 자산을 펼쳐놓고 옥석을 가려내고, 혹 놀고 있는 자산은 없는지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③ 은퇴 예산부터 뽑아 보라=‘액션 플랜’의 첫 번째 단계는 수입 확인이다. 문진혁 우리은행 고객자문센터 세무팀장은 “국민연금관리공단과 회사 총무부 등에 전화해 은퇴했을 때 내 주머니로 돈이 얼마나 나오는지 우선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은퇴 자산과 예상 현금 흐름을 파악한 다음은 노후의 포트폴리오 재구축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김진영 본부장은 “생활비의 50%는 연금으로 채우고 나머지 생활비는 종잣돈을 굴려 마련할 계획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④ 저금리를 받아들여라=“은행 이자가 쪼까(조금) 내려서 15%밖에 안 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은행원으로 등장하는 성동일씨의 대사다. 27년이 흐른 지금 은행의 저축성 수신 금리는 1%대에 불과하다. 김진영 본부장은 “본격적으로 은퇴 준비에 나선 반퇴세대가 겪는 일반적인 어려움은 예전의 금융 환경과 현재의 상황이 180도로 달라 어떻게 자산을 굴려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선 눈높이부터 낮추자. 박기출 삼성생명 은퇴연구소장은 “저금리·저성장의 고착화로 이제 8~10% 수익률은 대박에 가깝다”며 “합리적으로 목표 수익률을 낮춰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영 본부장은 “생활비의 50%는 연금으로 채우고 나머지 생활비는 시드머니(종잣돈)를 굴려 마련할 계획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⑤ 투자상품도 섞어라=그렇다고 무조건 안전자산만 찾아선 곤란하다. 원칙은 분산을 통한 중위험·중수익 공략이다. 박기출 소장은 “‘나만 아는 좋은 투자처’를 믿다간 사기만 당한다”며 “그렇다고 예금에만 들기엔 수익률이 너무 낮기 때문에 투자상품을 가미하고, 자신의 상황에 맞는 중위험·중수익 상품을 찾아 보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엽 이사는 “수익률을 높이려면 국내만 쳐다보지 말고 해외로 눈을 돌려 자산을 배분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⑥ 부동산을 움직여라=반퇴세대의 고민은 자산의 대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동성 압박을 받는다면 물꼬도 여기서부터 터야 한다. 이윤학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집의 규모를 줄여 현금 유동성을 확보하고 그래도 자금이 부족하면 주택연금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전세의 시대에서 월세의 시대로 전환한 만큼 부동산 역시 ‘현금 흐름’이 나오는 또 다른 금융상품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⑦ 투자에도 취향이 있다=아무리 좋은 투자라도 본인의 스타일에 맞지 않으면 장기 투자는 어렵다. 박원갑 위원은 “장기 수익률 측면에선 주식형 펀드가 낫지만 진득하고 침착한 사람이 아니면 중간에 다 환매해 버리고 만다”며 “이런 성향의 사람은 차라리 다른 대안을 찾는 게 낫다”고 말했다.

 ⑧ 예행연습을 하라=실전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려면 연습을 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박원갑 위원은 “500만원 정도의 금액으로 펀드·주식 등을 운용해 보고 창업을 하기 전에 아르바이트로 실습을 해보고, 귀촌을 할 경우 바로 집을 사지 말고 세부터 들어 살아 보라”고 권했다.

 ⑨ 재취업이 창업보다 낫다=퇴직 이후 국민연금 수령 시기(만 61세) 전까지 적어도 5년간의 소득 공백(크레바스)이 생긴다. 반퇴세대의 창업이 활발해지는 것도 이 시기다. 퇴직금을 야금야금 써버리는 게 두려워서다. 하지만 충분히 준비된 창업이 아니라면 재취업을 우선 알아보라는 게 전문가들의 권유다. 이윤학 소장은 “3층의 소득 전략이 필요한데 1층이 연금이라면 2층이 추가 소득, 3층이 고정자산 유동화”라며 “2층이 두터울수록 그만큼 노후 준비가 더 탄탄해진다”고 말했다.

 ⑩ 반만 망하라=투자나 창업을 할 때 쉽게 범하는 실수가 자금을 ‘올인’하는 것이다. 혹 실패하더라도 재기를 위한 ‘씨앗’은 남겨둬야 한다. 문진혁 세무팀장은 “퇴직금으로 창업을 할 경우 퇴직금의 절반 이상을 연금으로 묶어두고, 나머지 금액에서 2~3년간의 운영비와 향후 목돈 수요를 떼놓은 뒤 남은 돈을 가지고 창업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조민근·박진석·강병철·염지현·이태경·김경진·정선언·이승호 기자 jming@joongang.co.kr


반퇴세대 꼭 알아두세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Individual Savings Account)=내년에 도입되며 하나의 계좌에 예·적금은 물론 펀드·파생결합증권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한꺼번에 넣고 관리할 수 있어 ‘만능통장’으로 불린다. 이 계좌에서 발생한 이자나 투자 수익은 모두 합산해 세제 혜택을 준다. 소득 5000만원 이하 가입자는 비과세 혜택을 25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근로·사업 소득자뿐 아니라 농어민도 가입할 수 있다.

 ◆개인형 퇴직연금(IRP·Individual Retirement Pension)=직장에 가입된 퇴직연금 외에 개인이 별도로 개설한 퇴직연금 계좌를 말한다. 직장을 옮길 때 전 직장에서 쌓은 퇴직금을 그대로 이체해 계속 적립해갈 수 있다. IRP엔 개인이 추가로 적립할 수도 있다. 노후를 대비해 가입하는 연금저축 400만원과 별도로 연 300만원까지 세액공제를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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