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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 트는 법’도 모르는 반퇴세대

‘①신분증과 도장을 챙겨 가까운 은행을 찾는다→②번호표를 뽑고 자신의 번호가 호명되면 해당 창구로 이동한다→③비밀번호는 주민등록번호 등 알기 쉬운 번호를 피해 선정한다→④통장을 발급받은 뒤 정확하게 발급됐는지 다시 확인한다.’

 초등학교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은행 이용 설명서다. 그런데 삼성전자의 퇴직 임직원용 교육 교재 첫머리에 등장한다. 이 교재엔 ‘공인인증서 발급받는 법’ ‘입출금하는 법’도 소개돼 있다. 강사로 참여한 전문가는 “이런 내용까지 넣어야 하나 싶었지만 최근 10년 동안 자기 손으로 계좌를 열어 본 적 없는 임직원이 태반이었다”며 “은행에 가면 다 알아서 해줄 거라고 막연하게만 알 뿐 가장 기본인 신분증을 챙겨가지 않아 허탕 치는 경우도 많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최근엔 ‘대포통장’ 근절 조치로 본인이 가도 계좌 열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며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 귀가하고, 통장과 자산 관리는 배우자에게 맡겨놓고 쳐다보지도 않는 게 한국의 전형적인 베이비붐 세대다 보니 이런 상황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최근 국제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발표한 ‘세계 금융 이해력(literacy)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금융 이해력은 전 세계 143개국 중 77위였다. 미얀마(23위), 몽골(43위)은 물론 가봉(67위), 우간다(76위)보다 낮은 수준이다. 물가·금리·위험분산 등 금융의 기초 개념을 묻는 테스트에서 33%만 기준을 통과했다. 한국 국민 셋 중 둘은 ‘금융 문맹’이란 판정이다. 그러다 보니 자산 관리도 ‘모 아니면 도’ 식으로 쏠린다. 일확천금을 노려 주식·파생상품 같은 위험자산에 몽땅 털어넣든가 물가상승률도 따라가지 못하는 예·적금만 고집한다.

 자산 관리의 지식도, 경험도 태부족한 ‘금융문맹’인 한국의 반퇴 세대는 저금리·저성장에 급격한 고령화라는 ‘삼각 파고’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셈이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금융 환경도 급변한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다음주 금리 인상에 나서면 금융시장은 요동칠 수밖에 없다. 공급 과잉 조짐의 부동산 시장도 살얼음판 위를 걷고 있다.

 내년부턴 비과세 ‘만능통장’인 개인자산종합관리계좌(ISA)도 도입된다. 예·적금은 물론 펀드와 주가연계증권(ELS) 같은 파생상품까지 한 바구니에 담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서 생긴 수익은 250만원까지 비과세 혜택도 준다. 이를 포함해 정부는 내년부터 ‘국민 재산 늘리기 프로젝트’도 벌일 계획이다. <본지 11월 13일자 1, 3면> 중산층이 노후를 대비하도록 돕자는 취지다. 그러나 이를 활용할 소비자의 ‘금융IQ’를 높이기 위한 교육이나 금융회사의 서비스는 여전히 걸음마 상태다.

본지가 지난달 초 전국의 30~50대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왔다. 스스로 금융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63%였다. 금융상품에 대한 이해도 예·적금만 아는 정도의 매우 낮은 수준이 32.3%나 됐다. 그러나 이를 메우기 위해 전문가를 찾는 반퇴세대도 많지 않았다. 퇴직을 눈앞에 둔 50대 가운데 전문가나 금융회사의 재무진단·자산관리 상담을 한 번이라도 받아 봤다는 응답자는 5명 중 1명(19.5%)꼴이었다. 은퇴와 노후를 대비한 자산 관리를 하거나, 준비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도 절반이 안 되는 46.1%에 그쳤다.

 이윤학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집은 사두면 항상 오르고, 은행 예금에만 돈을 넣어둬도 쏠쏠한 수익이 나던 시대는 지나갔다”며 “앞서 고령화를 맞이한 선진국처럼 금융과 자산관리 교육을 국가 전략 차원에서 시행해야 하며 특히 퇴직 쓰나미에 휩쓸린 반퇴세대를 겨냥한 맞춤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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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조민근·박진석·강병철·염지현·이태경·김경진·정선언·이승호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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