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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챌린저 & 체인저] 오늘 한국시리즈 스마트폰 시청, 버벅거림 걱정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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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하 솔박스 사장이 서울 서초동 본사 회의실에서 글로벌 시장 진출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19일 홍콩 PCCW와 제휴 이후 솔박스에 관심을 보이는 유럽 통신사업자의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강정현 기자]


야구장에서는 ‘가을의 전설’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티켓을 확보하지 못한 야구팬들의 상당수는 스마트폰이나 PC를 인터넷에 연결해 야구중계를 실시간으로 본다. 이 때 동시 접속자가 서버 한 대에 몰리면 트래픽이 발생한다. 지역별로 서버를 분산해야 사용자는 끊김없는 중계를 볼수 있다. 이런 기술을 ‘콘텐트 딜리버리 네트워크(Content Delivery Network, CDN)’라고 한다.

 솔박스 박태하(51) 사장은 CDN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자체기술을 확보해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해온 ‘개미형’ 챌린저이다. 인터넷 상용서비스가 처음 시작된 1990년대에는 글자 위주의 텍스트 콘텐트에 초점이 맞춰졌다. 전화선으로 연결해 사진 한 장 받기 위해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다.그러다 텍스트 위주의 인터넷에 사진이 들어차기 시작했고, 좀 더 나중에는 동영상 콘텐트가 주력이 됐다. 실제 지금의 인터넷에는 비디오 콘텐트가 전체의 3분의 2에 달한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동영상에 초점이 맞춰진 CDN 기술을 조금씩 축적해 온 것이다.

 지난 19일 홍콩 1위 이동통신사업자인 홍콩텔레콤의 모회사 PCCW가 솔박스와 손잡고 CDN 공동사업 계약을 하면서 솔박스의 CDN 기술력은 빛을 발했다. 국내에서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기술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PCCW는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솔박스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부가서비스 ‘온탭TV’를 성공적으로 개시했다. PCCW는 동영상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중동,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전개할 방침이다.

 박 사장은 “PCCW와 계약하기 위해 지난 1년을 설득하는데 주력한 결과 미국업체를 경쟁에서 제칠 수 있었다”면서 “지난해 120억원 정도의 매출을 올렸는데 PCCW와 손잡으면서 2017년 200억원 매출이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소프트웨어 강국인 미국을 제치고 국산 소프트웨어가 PCCW의 마음을 잡을 수 있었던 배경으로 그는 ‘놀아본 경험’을 꼽았다. 예를 들어 ‘푹(POOQ)’이나 ‘티빙’ 같은 동영상 제공 서비스엔 방송사들이 다양한 미디어 콘텐트를 제공한다. 재미있는 프로그램엔 접속자가 100만명 이상 몰릴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높은 기술 수준의 CDN을 장착하지 않으면 안정적인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아프리카·중동 노려 … 남아공서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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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인터넷 네트워크가 세계에서 가장 빠르다 보니 어떤 글로벌 업체도 해보지 못한 경험을 축적했다는 설명이다. 아마존과 아카마이 등 미국의 CDN 공룡에 맞서 자생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갖췄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이를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토종 CDN 사업자가 전무할 정도다.

 박 사장은 “미국의 CDN 기업이 기성복을 파는 업체라면 우리는 고객의 체형까지 고려하는 맞춤형 양복집”이라며 “실제 사업은 통신사가 하고, 우리는 그 사업을 통해 로열티 수입을 거두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박 사장은 전형적인 엔지니어다. 어렸을 적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일에서 재미를 찾았고,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입학 이후에는 하루종일 컴퓨터와 친구가 됐다. 그의 인생에 전환점은 박사과정으로 들어간 KAIST(한국과학기술원) 전산학과에서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72) 교수를 만나면서부터다. “내 연구실에서 공부한 사람은 교수보다는 현장에 더 적합하다”며 창업에 힘을 실어주던 전 교수의 학풍이 몸에 배었다. 이 연구실에서 허진호 네오위즈 대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김정주 NXC 대표 등 벤처업계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을 만났다.

 박사학위를 받은 직후에는 허진호 대표가 만든 아이네트에 연구소장으로 입사했다. 1990년 중반 벤처붐이 일던 시기였다. 전화선 모뎀을 통해 인터넷연결접속 서비스를 개발해 호황을 누렸다. 98년 외환위기 당시 PSI넷이라는 미국계 회사에 팔리면서 다국적 기업의 운영실장으로 발탁됐다. 그러나 미국발 닷컴 거품이 빠지면서 모기업이 어려움을 겪자 2002년 같이 일하던 직원 70여 명을 데리고 한솔그룹으로 둥지를 옮겼다. 그러나 대기업의 보수적인 문화는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았다. 하나의 문제에 몰두하며 솔루션을 찾는데서 재미를 느끼는 그의 성향은 곧바로 솔박스 창업으로 발길을 인도했다.


작년 매출액 120억 … 2년 뒤 200억 기대

 “벤처기업, 외국계 기업, 대기업 등에서 일해본 다양한 경험이 큰 자산이 됐습니다. 남들한테 팔 수 있는 제품이 아니라 통신사업자와 제휴를 통해 작지만 오래가는 수익을 보장하는 로열티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할 수 있었죠.”

 시장을 외면한 채 자신의 기술에만 초점을 맞추는 ‘오타쿠형’ 엔지니어가 아니라 시장을 유심히 살펴 돈 되는 기술을 개발하는 ‘비즈니스형’ 엔지니어는 이처럼 다년간의 현장경험을 통해 만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 사장의 창업 초기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4년 지금의 웹하드 서비스에 필수적인 스토리지 엔진 기술을 개발하던 과정이 무척 힘들었단다.

 “이 기술이 과연 팔릴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습니다. 10여 명의 직원들은 밤을 새워 개발하는데 기약이 없는 상태였죠. 그렇다고 직원들에게 ‘안 팔리면 어떡하지’라는 말은 꺼낼 수 없었고…. 특히 재정적으로 어려웠는데, 차까지 팔면서 매달 1000만∼2000만원을 개인통장에서 회사 통장으로 송금할 때에는 1년뒤 어떻게 될지 몰라 정말 막막했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스토리지 엔진 기술은 2005년 KT에 팔렸고 곧이어 웹하드 사업 대박으로 연결됐다. KT로부터 그해 1억원이 송금되면서 심리적인 압박을 다소 해소했다. 작지만 안정적인 캐시카우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2006년 지금의 클라우드 서비스와 유사한 유틸리티 컴퓨팅 플랫폼을 내놨지만 당시 자사의 정보를 남의 회사 서버에 집어넣을 수 없다는 우려가 앞서면서 더이상 사업확장을 할 수 없었다. 2007년 마음을 다잡고 내놓은 기술이 지금의 CDN 솔루션이다. 20여 개의 특허를 내면서 외국업체의 특허공격에도 맞설 수 있는 기술력을 쌓아 현재 KT·LG유플러스 등에 납품하고 있다.

 박 사장은 “CDN 기술의 최우선 경쟁력은 단 1초도 다운돼서는 안 되는 안정성에 있다”면서 “ 우리의 CDN 기술이 세계에 알려지면서 이제 유럽에서도 제휴를 모색해올 정도가 됐다”고 자랑했다.

 그는 한국 소프트웨어의 가능성을 B2B(기업간거래)에서 찾았다. 박사장은 “게임이나 애플리케이션, 쇼핑처럼 눈에 보이는 소프트웨어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B2B 시장의 잠재력이 훨씬 크다”며 “처음 진입장벽은 높지만 한번 들어가면 안정적인 수입이 가능한 B2B 소프트웨어 시장에 후배들이 도전해보길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심재우 기자 jwshim@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DN=인터넷에서 동영상·이미지·음악 등의 콘텐트를 전송할 때 트래픽 증가로 전송 속도가 떨어지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기술. 전송 속도가 떨어지면 동영상이 끊기는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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