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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평생 바친 한복, 한류 명품으로 키울 자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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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디자이너 인생 40년을 돌아보는 전시회를 개최한 이영희 디자이너. ‘미인도’를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신윤복 드레스’, 황색·홍색을 사용한 대례복 ‘원삼’ 등 대표작들이 포함됐다. [사진 메종드이영희]

1994년 프랑스 파리의 뤽상브루궁전 오랑제리 전시장. 한 디자이너의 패션쇼가 시작되자 관람객들의 얼굴에 놀라움이 그득하다. 무대에 오른 옷은 바로 한복. 그런데 저고리가 없다. 민소매라 어깨와 팔이 드러나고, 가슴은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하다. 부드러운 노방(실크)의 치마가 하늘하늘 날리며 런웨이를 장식했다. 쇼가 끝난 뒤 르몽드지의 패션 수석기자 로랑스 베나임은 이 옷을 ‘바람의 옷’이라 명명했다. 한국의 디자이너, 이영희(79)씨의 작품이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씨가 한복 디자인 40주년을 기념해 전시회 ‘이영희 전(展)-바람, 바램’을 열었다. 전시가 열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난 그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 나이가 되니 가끔 ‘내 평생 가장 잘한 일이 뭘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에게 답은 하나다. 한복을 시작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77년 ‘이영희 한국의상’이란 한복 전문점을 열며 40세의 나이에 늦깎이 디자이너가 됐다. 이후 93년 파리 프레타포르떼(기성복) 쇼에 한국 디자이너 최초로 참가하고, 2000년 뉴욕의 카네기홀에서 패션 공연을 여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 활발히 활동해 왔다. 2005년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입은 두루마기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영예롭기도, 고되기도 했던 40년 세월 중 잊을 수 없는 순간은 바로 파리에서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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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산 모시로 만든 한복을 파리 컬렉션 무대에 선보여 갈채를 받았다. 한산 모시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 등재돼 있다. [사진 메종드이영희]

 “93년에 처음으로 파리에서 컬렉션을 열었어요. 많은 유럽인들이 한복을 보고 찬사를 쏟아냈죠. 그런데 한복을 기모노의 한 종류인 줄 알더라고요. 기자들이 제 옷을 ‘기모노 코레(한국의 기노모)’라고 부르는 게 싫어서 ‘한복’의 스펠링을 직접 써서 주기도 했어요.”

 화가 나고 기가 막혀 디자인에만 매달렸다. ‘한복을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생각으로 선보인 이듬해 컬렉션에서 그는 한복에 ‘바람의 옷’란 이름을 선사하게 된다. 이후 한국인 최초로 파리에서 부티크를 열었고, 밀려드는 주문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요즘 K팝이 유럽에서 인기라면서요? 저는 이미 20년 전에 한류를 경험했어요. 유럽사람들이 한복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속치마가 예쁘다’며 따로 맞춰가던 고객도 있었죠. 그 덕에 8년 동안 부티크를 운영할 수 있었어요.”

 이씨는 각국의 대통령은 물론 역대 영부인 등 명사들의 한복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배우 장동건·고소영 부부는 이씨에게 혼수용 한복을 맞춰갔다. 손주 며느리인 배우 전지현에게도 한복을 지어줬다. 자신의 옷을 입은 수많은 명사들 중 “한복이 가장 잘 어울렸던 사람은 누구였느냐”는 질문에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꼽았다.

 “아르마니가 한복을 입고 너무 좋아했어요. 한복도 잘 어울렸고요. 여자 고객 중엔 가수 아트 가펑클의 부인이 떠올라요. 저에게 여러 번 한복을 주문해 입었죠. 한복을 굉장히 좋아해서 뉴욕에서 열린 성대한 파티에 자녀와 함께 한복을 맞춰 입고 가 눈길을 끈 적도 있어요.”

 얼마 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샤넬이 서울에서 크루즈쇼를 열면서 한국의 전통의상인 한복에서 영감을 받은 컬렉션을 선보인 바 있다. 이씨는 “한복을 다뤄준 것이 너무 고맙다. 하지만 좀 더 깊은 해석이 아쉽다”고 말했다.

 “한복뿐만 아니라 조각보나 비녀·족두리·버선 등을 해외 디자이너들에게 자세히 보여주고 싶어요. 이런 전통 장신구는 나에게도 영감의 원천이 돼요. 한복은 단순히 우리나라 전통 의상에 머물기엔 아까운 옷입니다. 보편적 아름다움을 지닌 의상으로 샤넬처럼 세계적인 명품이 될 수 있어요.”

 이씨는 파리에 진출할 때부터 쇼와 홍보에 드는 비용을 대부분 본인이 충당했다. “한복으로 번 돈은 한복에 쓴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한복의 세계화를 이루려면 개인의 힘으론 힘들다. 정부와 기업이 나서서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십 년간 한복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해온 이영희 디자이너. 이번 전시에선 그가 영감의 원천이라고 말한 전통 장신구 등 개인 소장품은 물론 파리에서 선보였던 ‘바람의 옷’과 컬렉션 작품, 40주년 전시회를 위해 새롭게 제작한 한복 4벌까지 모두 만날 수 있다. 전시는 23일부터 다음 달 9일까지 DDP 알림터 알림 2관에서 열린다.

  신도희 기자 t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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