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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굴욕 "금의 가격 변동, 정크본드 만큼이나 변덕스럽다"

황금이 빛을 잃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상품거래소에선 금값이 온스(31.1g)당 110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하루 뒤인 23일 아시아 시장에서 조금 오르기는 했지만 1100달러 선을 넘어서진 못했다.

미 경제전문 채널인 CNBC는 “금값이 22일까지 10일(거래일 기준) 연속 하락했다”며 “1996년 9월에 13일 연속 떨어진 이후 약 20년만”이라고 전했다. ‘금=안전자산’이란 통념이 틀렸음이 드러났다. 금값은 2011년 9월 온스당 1900.2달러까지 치솟은 뒤 약 4년 만에 40% 넘게 추락했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은 평소 “금의 가격 변동은 정크본드(투기등급 채권)만큼이나 변덕스럽다”고 말했다. 금은 결코 안전자산이 아니란 얘기다.

국내 금관련 투자 상품의 수익률도 엉망이다. 23일 펀드슈퍼마켓에 따르면 금 현물이나 금 관련 지수에 투자하는 펀드들은 최근 한 달 동안 7~19% 하락했다. 신한은행 골드리슈 금상품과 금광업체 주가 인덱스 등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신한BNP 골드증권투자신탁제1호(주식)는 한 달 동안 19.52%나 하락했다. 미래에셋 인덱스로골드특별자산자투자신탁(금-재간접형), 이스트스프링 골드리치특별자산투자신탁(금-파생형), KB스타골드특별자산투자신탁(금-파생형) 등 다른 금 관련 펀드들도 지난 한 달 동안 7.3~8.29% 떨어지는 저조한 실적을 기록했다.

한국은행도 승자는 아니다. 한국은행은 금값이 온스당 1500~1800달러 선을 오르내리던 2012년 금 수십t을 사들였다. 어림잡아 26% 이상 손해를 본 셈이다. 한국은행 서봉국 외자기획 부장은 “결과적으로는 현 시점에서 손실을 보았지만 장기 보유하기 위해 금을 사들였기 때문에 전체 (외환보유액 운용) 전략상 큰 영향은 없다”라고 말했다.

이제 관심은 금값의 앞날이다. 톰슨로이터와 블룸버그 통신 등은 23일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금값이 저점에 도달했다고 말할 만한 근거는 거의 없다”고 전했다.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골드먼삭스는 “조만간 금값이 온스당 1000달러 밑으로 떨어진다”고 전망했다. 이달 초만 해도 골드먼삭스는 12개월 평균치가 1050달러라고 예측했다. 한 달도 안 돼 전망치를 크게 낮췄다.

골드먼삭스만 음울하게 금값의 미래를 보는 게 아니다. 유럽의 금융그룹인 ABM암로와 소시에테제네랄도 금값 추가하락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심지어 시카고 소재 RJO 선물의 필 스트레이블 선임 시장 전략가는 블룸버그에 "금값 하락 흐름이 가팔라지는 국면"이라면서 "온스당 1080 달러 선이 무너지면 하락 국면에서 금을 샀던 투자자까지 등을 돌릴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요즘 금값 하락은 미국 통화정책 변화 조짐과 맞물려 있다. CNBC는 이날 전문가의 말을 빌려 “현재 상품(원자재?농산물) 시장에서 달러가 왕”이라고 묘사했다.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올해 안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면서 상품 투자자들이 금 등을 달러로 바꾸려해서다.
이런 달러 선호 현상은 역사적으로 익숙한 풍경이다. 실질 금값은 1980년 1월 사상 최고 수준에 올랐다. 하지만 폴 볼커 당시 Fed 의장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리자 폭락했다. 1994년 당시 Fed 의장인 앨런 그린스펀이 돈 줄을 조였을 때도 비슷했다.

월가의 투자 이론가인 고(故) 피터 번스타인은 생전에 “금값은 개인 투자자의 매입이나 지정학적인 불안보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크게 올랐다”고 전했다. 반대로 인플레 가능성이 낮아질 조짐만 보여도 금값은 가파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시그널이 바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조짐이다. 번스타인은 "한번 떨어진 금값은 상당기간 동면에 들어가곤 했다"고 덧붙였다. 금값이 다시 눈에 띄게 오르기까지는 적잖은 세월이 걸린다는 얘기다.

강남규·박진석·김경진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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