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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구 칼럼]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역사의 마디마디

이홍구
전 국무총리·본사 고문
오늘로 1965년 한·일수교 50주년을 맞는다. 두 달 후면 해방과 분단 70년을 맞는 광복절이다. 이러한 역사의 마디를 맞을 때마다 과거를 돌아보며 동시에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높은 안목이 아쉬워진다.

반세기 전 한·일수교는 양국관계의 정상화와 한국 경제의 산업화에 크게 기여했다. 다만 그러한 획기적인 관계회복이 동서냉전의 와중에서, 그리고 한국 정치가 겪었던 진통 속에서 이루어지면서 거기에 이른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인식을 소홀히 넘긴 아쉬움을 남겼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으로 막을 내린 제국주의 시대의 성격과, 특히 일본 군국주의가 자아낸 한·일 관계의 파탄에 대한 인식이나 반성 없이 손쉽게 양국 관계를 ‘정상화’한다고 생각했다면 이는 역사의 엄중함을 간과한 처사였다고 지적될 수밖에 없다.

1868년 메이지 유신이란 총체적 국가개조로 동양에선 유일하게 근대화와 서양화에 성공한 일본은 19세기 말 중국, 20세기 초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제국주의 시대 열강의 반열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서구 제국주의의 식민지 쟁탈 관행을 답습하며 300년 전 임진왜란 때 품었던 대륙진출의 꿈을 실현하려는 듯 1910년 한국을 강제병합한 후 일본제국의 팽창 다이내믹스는 1931년 만주와 중국 침공으로 이어져 결국 2차 대전으로 질주하게 된다. 그러나 2차 대전 패전 후 일본 군국주의의 잘못된 침략정책을 1931년 이른바 만주사변 이후의 현상으로 치부하며 강제병합과는 분리하려는 역사인식이 일본에서 팽배했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서울대 이태진 명예교수가 도쿄(東京)대 초청강의에서 상세히 지적했다.
 
 근래 일본에선 과거사에 대한 진지한 반성이 진행되는 가운데도 1931년 만주사변 이후의 중국 침략과 그 이전에 이루어진 한국 강제병합을 분리하려는 경향이 또다시 나타나고 있다. 일본에서 중국 대륙으로 진출하려면 한반도를 거쳐 갈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이치를 애써 외면하려는 시도는 한·일 관계 정상화에도 원천적 걸림돌이 되고 있다. 35년에 걸친 식민통치 시대는 제국주의 시대의 팽창정책이 낳은 예외적 기간이며 한·일 국교 정상화는 양국간 수천 년에 걸친 오랜 국제관계가 정상화 또는 복원된 것임을 50주년을 맞는 이번 기회에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2차 대전 종전 50주년이 되던 1995년, 무라야마 총리는 한국에 대한 식민통치와 중국 침략을 일본 제국주의의 잘못으로 일괄 사과했다. 이는 일본의 지성과 시민의 양식을 대변한 처사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기에 한국과 일본이, 나아가서 한·중·일이 함께 새로운 아시아 시대를 만들어 가자는 건설적 구상과 설계가 계속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지난 주말 서울국제포럼과 일본세계평화연구소 공동연구팀이 제출한 ‘한·일 관계의 새로운 50년을 향하여’란 보고서에선 상호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한·일 관계가 추구할 구체적 방향을 안보, 경제 및 범지구촌 분야에 걸쳐 제시하고 있다.

안보 분야에서 북한의 위협에 대처할 한·일 안보협력 관계는 상호신뢰가 유지될 때에만 유효한 것으로, 이를 위한 미국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우호적 한·중 관계 유지에 역점을 둘 수밖에 없기에 일본이 불편하게 느낄 수는 있지만, 한국엔 누구보다도 미국이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란 사실이 이를 중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의 군비확장에 대해 본능적인 우려의 반응을 보이는 한국은 미·일동맹으로 일본의 신군국주의 재연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평화를 유지하는 새 국제질서 발전에 이러한 한·미·일 삼각협력관계가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에 대한 세심한 검토가 필요한 이유다.

 한·일 경제협력 분야에서는 압축성장에 이은 장기불황, 저출산과 노령화, 신기술개발 등 공동의 과제에 함께 대응해야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으며, 그러기에 ‘한국·일본 테크놀러지 플랫폼 2025’란 공동프로젝트의 추진 및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등의 조속한 타결도 권고하고 있다. 우호적 경쟁과 협력이란 이웃 간의 창조적 발전관계를 한국과 일본이 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도적 지원, 인간안보, 핵 안보, 에너지와 환경보전 등 전 지구적인 문제 해결에도 한·일 양국이 적극 공헌해야 되겠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과거에 대한 심각한 반성과 성찰이 미래로 향한 공동의 꿈과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오늘과 같은 역사의 마디에서 이를 위한 다짐을 새롭게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홍구 전 총리·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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