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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 사흘 만에 재판없이 처형 … “소신 말하려면 목숨 내놔야”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이 2013년 12월 8일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출당조치를 받은 직후 체포당하고 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과 김격식 국방위원(앞줄 오른쪽부터)이 고개를 돌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뒷 모습 군관 왼쪽은 최근 숙청당한 것으로 파악된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조선중앙TV 캡처]

지난달 30일 평양 북부 순안구역 강건종합군관학교 사격장. 14.5㎜ 고사총의 총신 4개가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향했다. 66세인 그는 남측 국방부 장관에 해당하며 북한에서 황병서 총정치국장 다음인 군 서열 2위다. 현 부장의 가족을 포함한 참관인들은 “고개를 숙이지도 말고 눈물을 보이지도 말라”는 북한 당국의 지시에 따라 총살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국가정보원이 입수한 복수의 첩보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모습이다. 국정원은 13일 현 부장이 “체포 사흘 만에 숙청됐다”고 확인했다. 다만 처형됐는지 여부에 대해선 “첩보상으론 그렇지만 아직 단정할 순 없다”고 했다. 숙청된 시점인 지난달 30일 이후 최근(5월 5~11일)까지도 조선중앙TV에 현 부장을 삭제하지 않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영상물이 방영됐기 때문이다. 정보 당국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29일 국정원이 국회 정보위에서 15인 처형 사실을 알린 뒤 북한 당국이 체제 내부의 문제가 과도하게 노출되는 것을 우려해 입단속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 부장이 처형됐다는 복수의 상세 첩보가 다양한 경로로 정보 당국에 입수됐다고도 했다. 처형된 게 사실일 경우 ‘(노동)당 정치국 결정’이나 재판도 진행하지 않아 즉결 처형에 가깝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북한 역대 정권에서 이렇게 속전속결로 고위급 인사가 처형된 사례는 없다고 정보 당국은 설명했다. 현 부장은 올해에만 김 위원장의 공개 활동을 14회 수행해 북한 고위급 중에서도 4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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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엔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해 러시아 국방장관을 면담한 일도 있다. 국정원 관계자는 “김정은의 독단성이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공포통치의 정도가 높아지고 있으며 간부들 사이에서도 내심 김정은의 지도력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 시대 처형 방식은 잔인성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총살한 뒤 화염방사기로 시신을 태운다는 증언도 다수 나왔다고 한다. 처형을 지켜본 참관자들 사이에선 “똑똑히 하라우, 고사총 앞에 서보겠는가”라고 자조 섞인 말을 하거나 “다음 처형 때는 미사일이 나오지 않겠나”라는 말도 한다고 정보 당국은 전했다. 정보 당국에 입수된 2014년 북한 내부 문건엔 반역자들에 대해 “불줄기로 태우고 탱크로 짓뭉개 흔적을 없애 버리는 것이 군대와 인민의 외침”이라는 내용이 나온다.

 가족에게까지 고통이 대물림되는 것도 김정은 시대 처형의 새로운 모습이다. 출판·영상물에서 이름·사진이 삭제되는 ‘흔적 지우기’ 작업이 진행됨과 동시에 가족에겐 연좌제를 적용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하거나 지방으로 추방하고 혁명화 교육을 받도록 하는 처벌이 내려진다.

 국정원 관계자는 “‘김정은에게 소신 있게 의견을 제시하려면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며 “간부들이 눈치보기·몸사리기로 ‘제 살 궁리’에 몰두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처형으로 인한 공포심 때문에 김정은 정권의 기반은 여전히 확고하다고 한다.

 현 부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정은을 후계자로 지목한 시점부터 승승장구했다. 2011년 5월과 8월 김정일의 중국 방문과 군부대 방문 때 신뢰를 얻어 2012년 총참모장(차수)으로 승진했다.

김정일이 김정은의 군부 내 세습기반 구축 및 세대교체를 염두에 두고 발탁한 것으로 국정원은 분석했다. 그러나 2013년 5월 전방 5군단장(상장)으로 좌천된 뒤 이듬해인 지난해 인민무력부장(대장)으로 복귀하는 부침 많은 인생이었다. 북한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원회 위원 자리에도 앉아 김정은을 밀착 수행했다. 현 부장이 지난달 러시아를 방문하는 등 북한 내 ‘대러 전문가’로 통했다는 점도 정보 당국이 주목하는 점 중 하나다. 대중 전문가인 장성택 처형에 이어 전문가인 현 부장을 숙청한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다.

 그러나 복수의 정보당국 관계자들과 안보 전문가들에 따르면 술을 좋아하고 인간관계가 넓은 그가 김정은의 통치 방식에 불만을 보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는 “현 부장이 (감시가 엄중한 상황임에도) 총대를 메고 사적인 자리에서 불만을 얘기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당국이 감시망을 좁혀오는 과정에서 지난달 24~25일 김정은이 주재한 조선인민군 제5차 훈련일꾼대회에서 김 위원장 오른쪽에 앉아 조는 듯한 모습이 포착돼 ‘불경죄’의 빌미를 제공했다. 서강대 김영수(북한정치) 교수는 “현 부장은 김정은에게 충복이었다”며 “북한 체제가 폭풍 전야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이와 관련해 북한이 도발에 더 적극 나설 가능성을 우려했다. 김정은에게 잘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이기 위한 ‘실적’을 쌓기 위해 대남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해 북한이 강경 입장을 보이고 실제로 13일 저녁 서해 NLL 인근에서 포사격 훈련을 시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정원 관계자는 “북한이 더욱 적극적으로 도발에 나설 수 있어 우려된다”고 전했다.

전수진 기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위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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